사실 이 수업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다.
어떻게 수업을 할 것이냐?
본과 2학년 130명이 한꺼번에 듣는 대형강의인데,
2시간.
"나쁜 소식 전하기'를 어떻게, 무슨 내용으로 전달해야 할까?
내용이 너무 뻔하다는 생각
지루한 강의가 될 거라는 생각
강의로 치면 20분이면 충분한거 아닌가
이런 주제가 강의로 해결될 문제인가, 실전에 임하면서 배우는게 아닌가...싶은 생각을 하다가
그래, 실전에 임하게 해보자
그래서 3명의 학생을 선발하였다. 최강동아리라는 세란극회에서 3명의 학생이 선발되었다.
지난주 저녁을 같이 먹으며 토론했었다.
환자의 경과를 철저히 의사의 관점에서 이 환자를 case presentation 하듯이 학생들에게 보고해주었다. 그들의 연기가 기대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연기를 어떻게 하든, 나는 어떻게 수업을 운영해 나갈 수 있을까?
역할극이라는 형식을 도입해 보기로 했지만, 사실 내가 해 본 적도, 참여해 본 적도, 관심있게 공부해 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수업을 꾸려가지?
궁리끝에 아는 정신과 선배를 찾아 쪽집게 강의를 들었다. 바로 어제밤에. 바쁜 그에게 간청해서 겨우 시간을 허락받았다.
어제밤 쪽집게 강의를 들은 대로
강의를 듣는 학생들을 세개의 조를 나누고 내가 설정한 세개의 장면을 각각 관찰할 것을 부탁하였다. 조별로 역할극을 보며 논평하게 하였다. 그것에 대한 다른 조의 의견도 들었다. 학생들의 질문과 논평,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서 실재 그 환자를 진료한 나는 어떻게 결정하고 환자랑 이야기하였는지, 연기를 한 배우들은 극을 통해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돌아가면서 이야기하였다.
학생들에게 미리 종이 한장씩을 나눠주고
내가 관찰한 것
feedback을 하면서 느낀 것
이 역할극을 통해 새롭게 배운 것
이렇게 써보라고 하였다.
학생들의 feedback을 담은 종이를 회수해서 방으로 돌아와 읽어보니
굳이 딱딱한 강의가 아니고
굳이 선생이 가르치지 않았도
학생들은 역할극을 통해 볼 것 다 보고 배울 것 다 배운 것 같다.
학생의 피드백을 보면서 내가 놀랐던 것은
학생들이 가장 많이 남긴 코멘트,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결심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환자의 질문에 두리뭉실 대답하고 적당히 둘러대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사를 보는게 답답했었던 것이다.
환자에게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치료의 목적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의사.
환자에게 정확한 예후를 설명하고, 환자의 언어로 이해하게 설명하려면 훨씬 정확히 의학적 지식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세세한 부분까지 알고 싶어하는 환자들의 질문에 잘 설명하고 대응하려면
의사로서 더 열심히 공부해야 겠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겠지...
학습동기 제대로 부여된 것 같다.
학생들의 코멘트 like this
의사는 어렵다. 아는게 힘이다.
냉정함도 유지해야 하고 인간적인 면도 가져야 하는 의사, 너무 어려운 직업이다.
재발한게 의사의 잘못도 아닌데, 재발을 고하는 의사의 모습이 너무 죄인같았다.
의사의 역할은 단순히 질병을 진단, 치료하는 것 이상으로 더 많은 일을 포함하고 있고 인간적인 공감전달능력이 필요하다.
환자가 꼭 살려달라고 말할 때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가.
암은 재발되기 쉬운데 완치될 수 있다고 말하면 안되는거 아닌가
재발을 처음 진단받은 환자에게 '오늘밤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상황이 너무 충격적이다.
잘못하면 뒷날 발생할 일을 감당하지 못할까봐 재발이나 나쁜 쪽의 예후를 너무 많이 설명하다보면 방어적인 진료를 하게 된다는 나의 코멘트에 대해 '환자도 그런 정보를 알 권리가 있으며, 그런 설명을 하고 계신 교수님들도 계신데 그걸 방어적이라고 말하는 나의 설명은 과하다' 지적도 있었다.
조기유방암 환자가
저 완치될 수 있나요? 라고 물으면
난 완치될 수 있다고 말한다.
2기초이면 5년 생존율은 82-85% 라는 의학적 통계를 10명에 8.5명 생존한다고 돌려 표현하며.
생존율보다 재발율은 그것보다 더 높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긴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수술로 눈에 보이는 병을 제거했고 눈에 보이지 않게 암세포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추가적인 항암치료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항암치료를 하더라도 치료저항적인 암세포가 남아있다가 나중에 10억개가 넘게 모이면 비로소 눈에 드러나 재발이라고 진단하게 되는 것이다.
내과 해리슨에 의하면
수술 후 항암치료를 하는 것이 의학적으로 입증된 암은 유방암, 대장암, 육종, 골육종 이렇게 4가지이다. 최근 위암데이터도 나왔지만, 아직 교과서에 등재되지는 않았다. 우리는 이런 암종이 아닌 다른 암의 경우에도 수술 후 항암치료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관행에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복잡한 의학적 지식들, 수많은 임상연구를 통해 축적된 지식의 형성, 이러한 지식의 관행화 되기까지를 환자가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러한 정보 중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환자와의 공감을 위해 사실을 설명해야 한다.
내가 왜 이런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받더라 하더라도 한계는 무엇인지,
본인 스스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환자가 자신의 치료과정에 대해 설명을 듣고 이해를 하려면 최소한 30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에게 내가 말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바로 그건
난 이런 환자를 5분에 한명씩 보고 있다는 것. 단 5분.
5분의 시간을 초과하면, 다른 환자의 진료가 지연되고,
나는 매일 1-2시간씩 외래가 지연되고 있는 형편이라
다른 환자들에게 너무 미안하다는 것,
그런 미안함을 줄여보려고 매일 다음날 외래를 미리 준비하고 오더도 다 내놓는다는 것.
그래서 정작 의사인 나는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있다는 것.
그러므로 환자 한명마다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한장 한장 학생들의 피드백을 보다보니
학생들에게 더 하고 싶은 말도 있고
내 생각이 잘 전달되지 않았다는 안타까움도 하고
나의 의견도 편협한 또 하나의 의견이 될 수 있다는 반성도 하게 되고 그렇다.
중요한 것은
130여명의 학생들이 한명도 졸지 않고 이런 주제를 가지고 함께 몰입하여 고민했다는 것이다.
환자, 보호자, 의사의 역할을 돌아가면서 수행한 세명의 학생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좀더 환자의 마음을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제한된 진료시간에 환자에게 설명을 잘 하고 좋은 의사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고민하게 되어서 좋았다고 한다.
2주 후
오늘 했던 같은 사례를 가지고
같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번에는 medical perspective에 입각하여 종양학 학생강의가 있다.
학생들은 암환자의 경과, 치료, 예후 등에 대해 예전에 비해 훨씬 더 촉수가 예민해져서 수업을 들을 것이다.
medical 한 것과 non-medical 한 것이 같이 공존하는 것.
그 지점이 의사와 환자가 만나는 지점이라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좋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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