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동료와의 대화

슬기엄마 2011. 10. 8. 15:36


우리과 강사선생님과 점심을 먹었다.
어떻게 지내는지 서로 간략보고.
레지던트들 얘기.
과 돌아가는 얘기.
우리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 하는 얘기.
그런 얘기를 나누다가
유방암 치료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수술 전 유방암 환자에 대한 임상연구를 계획한다면
어떤 약제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지
그런 약제에 대한 선행 연구는 어느 정도 되어 있는지
나라면 어떤 약제 조합으로, 어떤 기전에 입각해서 근거있는 연구가 가능할 것인지
그런 얘기를 하다가 그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연다.

그는
수많은 신약들이 개발되어 있고
유방암은 그런 신약개발의 선두주자 역할을 해 오고 있는데
매일 쏟아져 나오는 동물실험, 1상연구, 2상연구의 결과들 가운데
과연 연구자의 선택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단지 자신의 연구적 관심을 충족시키기위해
혹은 업적을 쌓기 위해
임상연구가 진행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가능성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을 제시하였다.

임상연구는
윤리적으로 환자에게 해가 없어야 하고
기존 연구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통해 새로운 치료방법의 이득이 높아야 할 것이며
현실적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조건이 까다롭지 않아야 한다.
좋은 약제를 선정하는 문제 - 가장 중요하면서도 의학적 지식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문제
환자에게 검사나 약제를 제공하는 문제 - 돈 문제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관리해야 하는 문제 - 인력문제, 돈문제
또한 신뢰성있는 연구결과를 위해서는 연구 참여자 수가 많아야 하는 문제 - 타기관과의 협력문제

이런 요인들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한다.

그런 고민을 하면서
공부를 하고 
토론하면서
서로가 내세우는 논리가 갖는 한계를 지적하여
의미있는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아카데미아의 역할이자 사명이 아닐까. (좀 거창해졌다...)

그의 고민에 200% 동의하지만
나 역시 아직 그런 고민에 대답할만한 충분한 역량이 없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역량은 부족한데
해야 할 다른 일들도 많고...
이런 고민을 하고 실천에 옮기기 위해 노력하는 것.
뱁새가 황새를 쫒아가다가 가랭이 찢어질 것 같다는 느낌에 도달한다.

그래도
행복하였던 것은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커피 한잔 손에 들고
서로 유사한 관심으로 focus를 맞추어 논쟁을 벌이는 가을 오후.
지난 일주일간 충분히 지친 나에게
그는 새로운 자극과 활력소를 제공해 주었다.

혼자 무림의 세계로 나가
온갖 어려움을 스스로의 힘으로 꿋꿋히 헤쳐나가는 수많은 선배님들을 볼 때마다
대학 안에 있으면서 보호받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직은 보호받고 있는 나의 위치에 감사하며
잡일들을 잠시 접고
그와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연구들이 얼마나 있는지
우리에게는 어떤 breakthrough point가 가능한지 공부해 봐야겠다.

공부하는 즐거움이 아무리 크다 해도
노는 즐거움만 못하다는 누군가의 말에 100% 공감하지만
내가 늘 고민하는 환자들의 문제,
더 나은 치료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는지를 동료와 토론하는 즐거움도 매우 크다.
왠지 아무것도 안했는데 뿌듯한 마음이 드는 주말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