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입원환자 명단을 보며 드는 생각

슬기엄마 2011. 10. 5. 21:30

명단을 보니
특별히 검사나 항암치료 하지 않고 그냥 있는 분들이 좀 계시네

 

3차 의료기관에
입원을 한다는 것은

외래에서 진료가 진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환자 상태가 복잡할 때

입원을 통해 훨씬 빠르고 효율적인 루트가 가능할 때

외래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과 저 과를 돌아다니며 진료를 받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상태가 않좋을 때 정도이다.

 

대개의 진료수익성은

외래에서 필요한 검사를 다하고

입원을 해서는 수술이나 단기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퇴원하는 것이

3차 의료기관의 운영방침 상 유리하다.

병상회전율, 턴오버가 빨리 되어야 하는 것이다.

환자를 위해서도 단기 입원, 조기 퇴원이 갖는 장점이 많다.

그러나 병원 입장에서는 수익성을 고려하여 외래 중심의 진료를 선호하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암환자는 이상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항암치료를 한 후, 못 먹고 힘들 때 생리식염수만 2-3일 맞아도 컨디션이 회복될 수 있다.

병원에 오지 않고 항암치료와 관련한 합병증을 참다가 증상이 악화되고 나서 입원하면
환자가 너무 진이 빠져서 다음 항암치료를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생리식염수를 맞으면 되는 간단한 상황은

꼭 대학병원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제공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집이 지방이면 첫 항암치료를 받은 환자들에게 소견서를 써 주고, 간단한 문제는 서울까지 올라오느라 힘 빼지 말고 암환자를 진료하는 인근 병원으로 가셔서 도움을 받으시라고 말씀드린다.

그런데 그런 나의 의도와는 달리 소견서를 찾아들고 간 병원에서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의사간, 병원간 협력 시스템이 그리 긴밀하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열이 나서 다른 병원에서 아주 강한 항생제를 쓰고 왔지만

내가 보기에 이것은 감염에 의한 열이 아니라, 종양의 활성도 때문에 나는 열인 것 같다. 항생제를 끊고 경과관찰 했더니 별 변화가 없다. 환자 상태가 나쁘지도 않다. 항생제를 끊었다. 이것은 내가 이 환자를 처음부터 쭉 봐왔기 때문에 결정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몇번 외래를 왔다갔다 하면서 먹는 약, 붙이는 약으로 통증을 조절해보려고 했는데 잘 조절이 되지 않아 주사 진통제를 써야 하는 환자. 입원해서 싸디 싼 주사 진통제를 시작했다.

항암제만 맞으면 심하게 구토하고 점막염이 심해서 아무것도 못 먹는 환자. 입원해서 단순 영양제와 수액을 처방하였고 이틀만에 많이 좋아졌다.

이들에게는 피검사나 영상검사를 별로 할 필요가 없다.

그냥 필요한 보존적 조치를 잘 해주면 환자가 좋아진다.

 

그런데 그렇게 환자들이 필요할 때마다 마음놓고 입원을 할 수 있으려면, 사실 퇴원도 빨리 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암환자들은 항상 겁이 난다. 집에 가면 괜찮을까? 그래서 집에 가서 경과보자는 말, 동네 병원가서 몇일 더 보면 좋아질 것 같으니, 우리병원에서는 퇴원했으면 좋겠다는 말, 이런 말을 하면 매우 섭섭해하고 속상해한다. 자기에 대한 치료를 포기한 거냐며


호스피스 케어를 받아야 하는 환자는 더 수익성이 떨어진다. 검사를 최소화하고 약도 꼭 필요한 것만 쓴다. 검사나 현재 당장 필요한 약이 아닌 것은 환자를 위해 시행하지 않는게 좋다. 그런데 호스피스 케어를 받는다고 해도 환자의 수명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입원기간이 의외로 길어지기도 한다. 환자는 섭섭하겠지만, 대략 난감이다.

 

우리 병원은 때때로 주치의에게 성적표(!)를 보내 해당 의사의 수익성을 체크하고 병원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상대적으로 내가 어느 정도의 수익성을 내고 있는지 알려준다. 입원기간이 길어지면 해당 환자의 장기입원을 알리고 퇴원을 푸쉬하는 알람을 보낸다. 그래도 주치의의 판단 하에 반드시 필요한 입원이라고 생각하면 그 이상까지 푸쉬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다른 병원보다 우리 병원은 암환자가 쉽게 입원할 수 있는 병원에 속한다. 환자들이 이런 사정까지는 알지 모르겠지만그래서 나는 우리 병원에게 감사하게 생각한다.

 

최근 몇일 경계심을 풀고 환자들을 입원시켰더니, 에고, 갑자기 환자가 많아졌다. 입원환자가 많아지면 여하간 매일 고민거리가 많아 진다. 면담도 많아지고

내일도 면담이 몇건 잡혀 있구나. 치료를 그만하는게 좋겠다는 말도 해야 한다. 어려운 말이다. 나의 이런 의학적인 판단과 의사로서의 심정을 환자와 가족들이 이해하려면 우리는 1시간이 넘게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어쩌면 이건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심성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삶과 죽음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철학적인 문제를 1시간 안에 다 논의한다는 게 가당치도 않다. 그래서 환자를 대하는 데에는 state of art 와 같은 기술이 필요하다.


이런 일을 지치지 않고 하려면 

나도 비실비실하지 않고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환자를 진료할 수 있어야겠다.

항상 최상의 컨디션에서 환자를 봐야, 타당한 판단과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게 된다.

외래 전에는 꼭 배를 채우고 잠도 자 두어야 한다. 그러니까 오늘 할일은 일단 미루고 잠 좀 자볼까? 내일도 오전 외래 한타임에 60명이 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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