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 8번이 무사히 넘어가는 것 같다.
오늘 그 마지막 항암치료를 받고 가셨다.
환자의 피부는 나보다 백만배 좋다.
항상 단정하고 예쁘게 화장하고 외래에 오는 그녀.
가끔은 동생과
가끔은 남편과 함께 외래에 오신다.
초콜렛을 좋아한다고 남편이 슬쩍 흘려준 이야기가 기억나서
초콜렛 한개를 드렸다.
그리고 몇일 있다가 열이 나서 한번 입원하였다.
다행히 합병증없이 항생제 치료, 백혈구 촉진제를 맞고 금방 퇴원하셨다.
내가 드린 초콜렛 때문에 열이 났나?
오늘 남편이 왕으로 큰 초콜렛 한봉지를 선물해 주고 가셨다.
남편은 살갑게 구는 다정한 스타일도 아닌 것 같다. 그냥 주고 가셨다. 커피랑 초콜렛.
그 마음이 더 정겹다.
사진이 좋아지면 축하한다고
컨디션이 좀 않좋은거 같으면 힘내시라고
초콜렛을 한개씩 환자분께 드리면
몇배로 더 많이 초콜렛을 사다 주신다. 되로 드리면 말로 보답해주신다.
그래서 내 진료실엔 초콜렛이 많다.
그 마음처럼 따뜻하고 풍요로운 진료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현실은 썰렁하다.
시뻘겋게 충혈되어 퀭해진 눈,
뭐가 더덕더덕 나서 쥐어뜯은 흔적이 있는 나의 험악한 얼굴,
외래를 지연시키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시계를 보는 나,
그런 내 눈치를 보는 환자들.
오늘도 중간에 병원장 간담회가 있어서 외래를 득달같이 보다가 중간에 끊고 회의에 다녀왔다.
회의가 다 끝나기도 전에 또 외래시간에 맞추어 나왔다.
그런 나를 보며
환자들이 늘 미안해한다.
환자를 미안하게 만드는 의사, 아주 예의가 없구나.
우리 병원 환자수가 어떻고
신환 발생율이 어떻고
다른 병원과 비교해서 뭐가 문제고
진료 수익율이 어떻고
...
...
진료면 진료
연구면 연구
교육이면 교육
그 모든 것이 부담으로 다가온다.
일단
무조건
환자에게는 최선을 다해야지.
그리고 남은 에너지로 다음 일을 해야지.
못하면 할 수 없고...
하지만 환자를 보는 일은 그렇게 내버려 둘 수 없는 일이니까.
Cortisol level 0
바닥에 떨어진 나의 에너지를 끌어올려주는 초콜렛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오늘도 하느님께 감사하며 금요일 저녁을 마무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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