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유전성 유방암을 가진 엄마가...

아침 회진을 거의 마칠 무렵 서른살이 미처 안된, 어느 유방암 환자의 딸이 날 찾아와 조용히 얘기좀 했으면 한다고 한다. 엄마는 얼마전 유방암과 난소암을 진단받고 수술, 항암치료를 마쳤는데, 배 안에 농양이 생겨 항생제 치료를 받고 계신다. 환자가 유방암을 발견한 계기는 환자의 여자 형제 두명이 유방암 진단을 받은 후 한명은 돌아가셨고 한명은 수술을 받은 상태인지라 평소 유방암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갖고 자가검진을 열심히 하다가 만져지는 것을 발견하여 유방암을 진단받게 되었다. 환자의 이모도 유방암과 난소암을 동시에 진단받고 돌아가셨다. 가족력이 하도 강력하다보니 이 딸도 어디선가 정보를 찾아보고 유전자 검사를 하게 되었나 보다. 엄마 몰래 자기가 유전자 검사를 해 봤는데 엄마랑 같은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

저보다 더 힘든 환자에게

환자의 경과기록을 보다보면 환자와 깊은 대화를 통해 환자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고 환자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여러 임상과 예를 들면 정신과, 방사선종양학과 뿐만 아니라 병동 간호사, 사회복지팀, 호스피스팀 등의 기록을 보면 알수 있다. 나는 기록을 보고 알게 된 사실에 대해 알고 있다는 티를 내지는 않는다. 다만 그 모든 분들께 조용히 감사드린다. 그들에 대한 환자의 반응도 내가 아는 모습과 다른 경우가 있다. 좋아지지 않는 병 때문에 환자가 많이 힘들어 하는 것 같고 최근 항암치료에 대한 반응도 없어서 내심 힘들게 호스피스 얘기를 꺼냈다. 제가 환자분 치료를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전 환자의 컨디션을 보고, 가능한 유용한 약이 있으면 항암치료에 도전해 볼거에요. 그런..

입원했으나 좋아지지 않는...

환자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입원한 후 좋아지기는 커녕 점점 더 나빠지는 환자들이 있다. 요즘 입원 분위기 왜 이러지? 자궁경부암 할머니는 최근 1-2주일 사이에 한쪽 팔, 다리에 힘이 빠지는 증상이 생겼는데, 외래날짜가 얼마 안남았으니 그때 말해야하지 하고 외래날 맞춰서 오셨다. 다른 만성질환이 많아 가능하면 입원을 싫어하신다. 당일로 왕 푸쉬를 해서 MRI를 찍었다. 오른쪽 뇌로 전이된 종양이 보인다. 감마나이프를 했지만, 마비된 왼쪽 팔, 다리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다 평소 치료 의지가 엄청 강하신 분이었는데, 왜 병원에 빨리 오시지 않았을까? 집이 전라도 저 먼 곳에 있어서 그랬을까? 누워있는 사람은 지금 당장은 제아무리 컨디션이 좋아 보여도 금방 컨디션이 쇠한다. 폐렴도 ..

임상연구, 별로 관심없었는데...

누구는 뇌로 전이되고, 누구는 뼈로 전이되는지 아직 잘 모른다. 특정 장기로 전이되는 경향이 있는 유전자가 있다는 정도가 알려져 있지만 그걸 실재 임상환자를 대상으로 검사하기에는 아직 연구는 초보단계이다. 설령 검사를 해서 결과를 얻었다 해도, 그걸 예방하기 위해 어떤 치료를 해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의학의 수준에서는... 난소암 복막전이. 소장, 대장을 감싸고 있는 복막. 거기에 전이가 되면 장 운동이 원할하지 않다.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잘 안되고 자칫 가스가 차서 배가 빵빵해서 횡경막을 치밀어 올리니 밥을 조금만 먹어도 숨이 차다. 대변도 잘 못 본다. 병이 잘 조절되지 않으면 복막에 있는 암세포가 복수를 만들어낸다. 복수를 빼 주면 일시적으로 편안하지만, 체내 전해질이나 알부..

하루 종일 가슴이 철렁

그저께 밤부터 가만히 앉아있는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 자꾸 반복해서 들었다. 1초 정도. 그리고 다시 금방 괜찮아진다. 어제는 그 증상이 1분에 한번씩 오는 것 같았다. 맥박을 짚어보는데 규칙적이다. 아주 불편한 증상은 아닌데 반복적으로 오니까 계속 신경이 쓰인다. 일시적으로 부정맥이 온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아무리 짚어봐도 맥박은 규칙적으로 잘 뛴다. 평소보다 맥박이 좀 빠른걸 보니 좀 피곤해서 그런걸까? 심전도 찍어봐야하나? 일찍 집에 왔다. 잠을 많이 자고 나면 괜찮을까 싶어서. 밤에도 계속 증상이 반복된다. 슬기아버님께 실토했다. 자꾸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거 같아. 그래? 집에 있는 PPI 먹어봐. 먹고나서 1시간 정도 지나니 증상이 없어졌다. GERD (역류성 식도염) 였구나. 슬기아버님이..

온열치료 받을래요

항암치료 너무 힘들었어요. 다시는 못 받겠어요. 온열치료 받으면 부작용도 없고 편안하게 치료받을 수 있대요. 자연 항암제를 쓰면서요. 저 온열치료 받을 수 있게 소견서 써주세요. CT도 복사해 오래요. 자연 항암제? 무슨 말이지? 20대초반. 환자의 엄마가 나보다 한두살 많은 정도로 젊다. 이 가족에 사연이 많은 것 같은데 나를 처음 만난 그들은 아직 마음의 문을 열기 어려운가 보다. 사정은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수술 후 항암치료를 3번 받고 골수기능이 회복되지 않아 항암치료를 두달째 못하던 중에 자꾸 기침이 나오고 허리가 아팠다고 한다. 폐렴인줄 알고 우리 병원에 왔다가, 조직검사를 할 필요도 없이 명확한 유방암 전이상태라는 것을 알 게 되었다. 유방암을 진단받고 수술한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았다. ..

명상 프로그램 시작!

본격적으로, 대대적으로 시작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암환자를 대상으로 명상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정말 도움이 될지 등을 타진해 왔습니다. 그리고 다음달 시범적으로 명상 프로그램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대상은 주사 항암치료를 받지 않는 전이성 암환자입니다. 먹는 항암제를 드시는 분이나 항암치료를 하지 않고 경과관찰하는 분들이 대상이 됩니다. 그리고 스테로이드를 드시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합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02-2228-8182 안수림 간호사에게 전화하셔서 신청하시면 됩니다. 아직 정확한 날짜는 못 잡았는데요 신청하시는 환자분들의 상황을 점검하고 11월 중순경 시작하려고 합니다. 비용은 무료입니다. 매주 1회. 한번에 1시간 30분에서 2시간. 6주 혹은 8주 프로그램이 될 것입니..

나쁜소식전하기 - 수업후기

사실 이 수업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다. 어떻게 수업을 할 것이냐? 본과 2학년 130명이 한꺼번에 듣는 대형강의인데, 2시간. "나쁜 소식 전하기'를 어떻게, 무슨 내용으로 전달해야 할까? 내용이 너무 뻔하다는 생각 지루한 강의가 될 거라는 생각 강의로 치면 20분이면 충분한거 아닌가 이런 주제가 강의로 해결될 문제인가, 실전에 임하면서 배우는게 아닌가...싶은 생각을 하다가 그래, 실전에 임하게 해보자 그래서 3명의 학생을 선발하였다. 최강동아리라는 세란극회에서 3명의 학생이 선발되었다. 지난주 저녁을 같이 먹으며 토론했었다. 환자의 경과를 철저히 의사의 관점에서 이 환자를 case presentation 하듯이 학생들에게 보고해주었다. 그들의 연기가 기대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연기를 어떻게..

환자의 편지

아줌마끼리라 그럴까? 편지를 건네는 환자들이 많다. 한장 빼곡히 치료 받으며 궁금한 사항을 적어 온 메모도 있고 치료 과정 중 마음의 변화과정, 갈등, 고통, 의사에 대한 고마움, 병원에 대한 불만 이런 내용을 담은 편지도 있다. 난 책상서랍 하나를 비워 그런 환자들의 메모와 편지를 모아둔다. 20년전 고등학교 졸업한 이후 처음으로 편지지를 사서 손편지를 써본다는 환자의 편지를 받았다. 6번의 항암치료 후 수술을 받고 퇴원하면서 외래를 들르셨다. 막막했던 진단의 순간, 몸보다 마음이 힘들었는데, 그래도 시간은 갔다며 시작하는 그녀의 편지. 20년을 쉬지 않고 일했는데 유방암을 진단받고 자신의 모든 과거, 열정, 업적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았는데 힘들게 고비를 넘기며 치료를 받고 나서 생각해보니 얻..

병실을 옮깁시다

그녀는 자신이 곧 죽을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날짜가 거듭될수록 불평이 줄어든다. 우리는 그날이 곧 다가올거라는 걸 알지만 서로 입밖에 내지 않았다. 급격하게 나빠지는 병. 지난 금요일 환자를 퇴원시키고 싶었다. 하루라도 집에서 아이들과 지내게 하고 싶었지만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는 것 같다. 나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항암치료를 하는 문제에 대해 상의하였다. 문헌에 보고된 반응율은 10% 내외. 그러나 환자는 치료를 해보겠다고 한다. 아직 아이들이 어리니까 하루라도 더 살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겠지... 컨디션이 그럭저럭 괜찮으니까 해보자.... 그리고 주말을 보냈다. 주말 사이에 얼굴이 더 퉁퉁 붓는다. 항암제를 투여한지 몇일 안되니까 좀 경과를 봐야겠지만, 약이 안듣고 있다는 느낌이 온다. 오늘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