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크록스와 발 맛사지

67세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 허셉틴으로 치료하며 꽤 오랜 기간동안 병이 좋아지고 있었는데 1년 남짓 치료하다보니 다시 저항성이 생기면서 병이 나빠졌다. 허셉틴에 저항성을 보이면 다음으로 HER2를 막는 약은 타이거브. 이 약은 반드시 젤로다랑 같이 쓰도록 규정되어 있다. 타이커브와 젤로다를 같이 쓰는 용법은 독성이 겹친다. 손발 피부가 벗겨지고 손톱발톱이 들뜨면서 갈라진다. 설사도 자주 하고 하고 입안 점막이 벗겨지면서 구내염이 발생한다. 이러한 독성은 두 약제 공히 나타날 수 있는 독성이라, 사실 별로 좋은 조합이 아니다. 독성이 겹치는 용법은 환자들이 약을 수용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그러나 아직까지 타이커브와 조합해서 쓸 수 있는 약으로 입증된 약은 젤로다 뿐이다. 그러니까 유방암은 좋..

진료실의 쪽지

지연시키지 않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시계보며 외래를 보고 있는데 간호사가 슬쩍 내 책상으로 쪽지를 밀어 놓는다. 정자체로 또박또박 쓴 보호자 편지다. 선생님, 저는 *** 환자의 아들 *** 입니다. 금일 CT 결과를 말씀해주실 때 결과가 좋지 않으면 어머니에게 직접 너무 나쁘게 얘기하지 마시고 나중에 어머니 안계실 때 저에게 따로 말씀해주시면 안될까요? 어머니께서 쉽게 포기할 가능성이 있으셔서요. 번거로우시겠지만 부탁드립니다. 이런 편지를 받으면 두가지 생각이 든다. 한가지. 자식이나 보호자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되므로, 가능하면 이들의 입장을 반영해서 진료하도록 하자. 다른 한가지. 치료받고 살고 죽는건 다 환자 목숨인데 누구보다도 환자가 가장 정확한 지식을 알고 자기 치료를 결정해야 하지 않나? ..

탁솔의 짜증

느닷없이 짜증이 솟구칠 때가 있다. 내가 여유로운 마음일 때는 그런 짜증을 잘 콘트롤할 수 있는데 내가 여유없고 힘들고 지칠 때는 그런 짜증을 잘 콘트롤 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면 "평소에 괜찮다가 느닷없이 쟤 왜 저래?" 라고 말하지만 사실 평소에도 괜찮지 않았다. 다만 가면쓰고 괜찮은 척 하면서 살아온 것이다. 나에게 그런 여유로운 마음이 없어지니 이제 짜증나고 모든 것이 울컥한다. 그렇게 울컥하는 환자 여러분. 탁솔 때문입니다. 너무 울컥하지 마세요. 다 탁솔 때문이니까 모든 핑계를 탁솔로 댑시다. 탁솔은 자꾸 몸이 아프고 손발이 저려서 디게 짜증납니다. 잘 견디다가도 자꾸 아프고 손발 저리면 짜증납니다. 외래 들어오는 환자의 표정이 굳어져 있습니다. 정신과 보자고 제가 말해도 너무 서..

나를 놀라게 하는 환자들

손주혁 선생님이 연수를 가신 후 이어받은 환자들은 사실상 나에게는 모두 신환이나 마찬가지다. 손주혁 선생님은 처음부터 환자를 진료하셨기 때문에 병력을 거의 다 알고 계시지만 나는 과거 병력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일일히 예전 사진, 치료반응, 병이 있던 곳, 좋아진 곳, 나빠진 곳 이런 사항들을 외래전날밤 파악해야 했다. 그래서 지난 한달 매일밤 엄청나게 환자 파악, 정리를 하느라 고3처럼 지냈다. 그리고 이제 한달이 지나가니, 슬슬 환자들에 대한 파악이 되어가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고 한시름 놓게도 된다. 그래도 3개월에 한번씩 사진만 찍으며 경과관찰하는 환자들이 외래에 오고 있기 때문에 아직은 매일, 다음날 외래 명단을 보고 점검해야 한다. 그렇게 경과관찰 중인 환자를 파악하다보면 한번도 본적이 없는 ..

거칠어진 손을 보며

먹는 항암제 젤로타, 에스원, 타이커브... 주사약이 아니고 먹는 약이라고 해서 훨씬 수월할 줄 알았다. 왠지 항암제 합병증도 덜할 것 같고 병원도 자주 않와도 될 것 같고 일상생활에도 지장이 별로 없을 거라고 기대했다.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입안도 자주 헐고 약간 소화도 안되는 것 같고 얼굴도 거뭇거뭇해진다. 무엇보다도 손이 문제다. 피부 색이 시커멓게 되는 것이 보기 않좋기도 하지만 손발이 자꾸 허물이 벗어지니까 물일 하기도 불편하고 사소한 집안일도 여러가지로 힘들다. 물일이라는 걸 피할 수가 없다보니 허물이 벗어지면서 생긴 작은 상처도 잘 낫지 않는다. 손톱 모양도 변형되고 얇아져서 자꾸 부러지고 찢어진다. 거칠어진 손톱, 허물벗어 거칠어진 손으로 뭔가를 만지기도 두렵다...

진료실 초콜렛 바구니

진료실에 초콜렛을 갖다 놓았다. 유방암 치료 받는 엄마들이 처음에는 겁도 나고 병원에 오는 일도 끔찍하고 그래서인지 애들을 데리고 오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병원다니며 항암치료받는 일이 익숙해지니까 애기들을 데리고 온다. 그런 애기들을 위해서 진료실에 초콜렛을 사 놨다. 애기들 오면 줄려고. 진료 기다리는 시간도 지루하고 아프고 힘든 엄마는 잘 놀아주지도 않고 애기들은 얼마나 더 재미없겠는가 싶어서 사 놓고 애들 들어오면 진료 전에 애들한테 초콜렛부터 준다. 애기들 욕심은 대단해서 그 작은 손에 다 쥘 수도 없는 초콜렛을 한웅큼 쥐고 놓지 않는다. 이런 욕심꾸러기들. 대개의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한개를 까먹는다. 그리고 기분이 좋아지나보다. 엄마따라 병원 가는 길, 가면 초콜렛이라도 하나 얻어먹는다고..

CT에 누워

2년전 나는 항문 근처의 통증이 반복되어 간단히 직장경으로 들여다 봤더니 모양이 않좋아 보이는 직장 폴립이 발견되었다.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대장내시경과 CT를 찍기로 하였다. 장 점막 자체를 관찰하는데는 CT보다 대장내시경이 더 좋지만 폴립이 암일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CT도 같이 찍기로 했다. 대장내시경을 하기 위해 전날부터 음식을 조절하고 콜라이트를 먹어 장에 있는 변을 다 배출시켜야 했다. 오전 회진을 돌고 대장내시경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회진 시간 내내 배가 아팠다. 중간에 화장실도 다녀와야 했다.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콜라이트를 먹으라고 해서, 회진 끝나고도 한두잔 더 마시고 화장실을 몇번 더 다녀온 끝에 겨우 맑은 물이 나와서 내시경을 하러 갔다. CT를 찍으려고 갔더니 풍차바지를 주면..

학생 강의

9월 10월에는 강의가 4개 예정되어 있다. 의대 강의는 다른 대학처럼 교수 한명이 한학기 강의를 다 하는게 아니기 때문에 정작 교실에서 하는 강의실 강의는 1년에 한번 정도. 강의실 강의는 늘상 있는 실습 학생에 대한 교육과 또 느낌이 다르다. 학생 때는 엄청나게 많은 수업을 듣고 지식을 머리 속에 채워가야 한다. 지식에 대한 민감도도 떨어지고 왜 중요한지 생각할 여유도 없이 그저 다 외운다. 그렇지만 그렇게 몽땅 외우는 것의 파워는 엄청나다. 여러가지 교육제도의 변화나 개선점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고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창의성을 살릴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대교육은 기본적으로 엄청난 지식에 대한 암기를 기본으로 깔고 시작하기 마련이다. 난 그것이 그리..

치질의 아픔

98년 슬기 낳고 나서 치질이 생겼다. 여자들은 애 낳을 때 치질이 많이 생긴다고 한다. 이놈의 치질은 나왔다 들어갔다 하기 때문에 평소엔 아무렇지도 않아서 모르고 살지만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계속 앉아 있을 때, 힘든 일이 겹칠 때, 스트레스 많이 쌓일 때 바깥 세상으로 나온다. 그놈이 나오는 걸 느낄 정도면 좀 심각하다. 그리고 치질은 변비와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난 그래서 변비에 무지하게 예민하다.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 치질과 변비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있다. 사실 처음 항암제 부작용 설명할 때 치질과 변비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빈도나 심각성 면에서 더 자주 발생하는 증상을 주로 설명하다보니까 그런것 같다. 그래서 예상치 못하고 이들 증상이 발생하면 거의 울상이 되어 허리를 똑바로 못..

명절연휴, 에너지 재충전!

마지막 항암치료를 받는 날. 그동안 감사합니다. 저한테 감사할일 있나요. 고생은 환자가 다 했는데요. 수고하셨어요. 이제 잘 지내세요. 이제 선생님 외래는 안 오나요? 네, 외과 외래 다니시면 되요. 무슨 일 있으면 와도 되죠? 그럼요. 그렇지만 무슨 일 있으면 안되죠. 불안해서요... 치료를 다 끝냈는데 불안하다 하신다. 그동안은 병원 다니는 싸이클에 맞춰서 혹은 그 생활리듬에 의지하며 살았는데 이제 자기 스스로 일상생활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불안하신가 보다. 그동안은 블로그에 들어가보지 않았어요. 그런 글 읽고 싶지 않았어요. 걱정이 더 많이 생길 것 같아서요. 그런데 치료를 마친다고 생각하니까 뭐라도 의지할게 없을까 싶어서 어제 들어가봤는데요... 마음이 더 심란해지네요. 네 많은 분들이 그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