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Stock- dale’s Paradox

환자는 항상 좋아질 수 있다고 믿고 치료한다. 의사는 환자의 희망을 꺾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환자를 격려하며 치료를 시작한다. 환자는 통계는 통계고, 나는 다를 것이라고 믿고 치료한다. 의사는 예외가 있을 수도 있지만 확률적 통계는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치료한다. 스톡 데일의 패러독스라는 말이 있다. 베트남전쟁 당시 8년간이나 포로수용소에 갇혔던 미 해군 3성 장군인 스톡데일의 경험담에서 유래된 말이다. 같이 수용되었던 동료들은 모두 죽었는데 그만이 살아남았다. 동료들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힘을 믿고,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나갈 수 있을거야, 그런데 못 나가면 다음 부활절이 되면 나갈 수 있을거야,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고 다음 기회를 기다리며 수용소 생활을 견뎠다. 그러나 좌절의 경험이 반복되면..

유쾌한 그녀들

같은 날 나란히 외래에 오는 그녀들이 있다. 그녀들은 비슷한 병기에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유방암 타입으로 수술받았다. 지금은 허셉틴 유지요법을 받고 있다. 그들은 수술을 마치자 각자의 스타일에 맞게 운동을 시작하였다. 한명은 등산과 복근 만들기를 위해 윗몸일으키기 하루 150개에 도전하였고 한명은 경락마사지에 이어 헬스와 PT를 시작하였다. PT를 시작한 그녀는 항암치료하면서 살이 많이 쪘다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돈을 더 얹어주고 헬스보다는 더 타이트한 일정으로 근육만들기 체력운동을 시작하였다. 4개월이 지난 지금 매월 1kg씩 감량에 성공하여 지금은 언뜻 봐도 뒤태가 달라졌다. 얼굴도 브이라인이 되었다. 피부도 좋아진 것 같다는 나의 찬사에 그녀는 '마사지도 받았어요' 라며 살짝 귀띔을 하고 진료..

사진 찍어도 되요?

나의 첫 대학시절, 스무살 풋풋한 나이. 그때 나의 꿈은 사진을 찍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Portrait (인물사진)를 찍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진작가 최민식의 사진집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시장에서, 버스에서, 길거리에서, 논밭에서 우리의 일상을 포착하였다. 사람의 얼굴, 표정을 통해 시대를 상징하였다. 나도 그렇게 사진으로 사람의 얼굴을 담고 그것으로 시대를 표현하는 사진찍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삶의 리얼리즘을 담은 사진도 찍고 싶었다. 그래서 항상 50mm 단렌즈 니콘 카메라를 매고 다녔다. 화장실 갈 때도 카메라를 매고 갔다. 삶의 한 순간이라도 내가 원하는 순간이 다가왔을 때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때 내가 가장 찍고 싶었던 것은 학생들이었다. 미래의 희망. 그들을 통..

완전히 믿는다는 것 - 닥터쇼핑

의사의 전문성에 대한 사회적인 믿음과 권위가 떨어져서 그런걸까? 환자의 소비자 주권의식이 높아져서 그런걸까? 의사의 판단을 믿지 못하고 이 병원 저 병원 여러 곳을 다니는 환자들이 있다. 다른 의사의 의견을 듣는게 필요할 때가 있다. 그것을 의사들끼리는 Second opinion (2차적 자문 정도로 번역하면 될까?) 을 구한다고 한다. 질병의 세계는 환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의학적인 진단이 딱 떨어지지 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의술은 예술이라고 비유되기도 한다) '조직검사해서 암세포가 나오면 암이다' 이렇게 진단하는게 사실 가장 쉽다. (그러므로 암이 아닌 병은 진단이 더 애매하고 복잡한 경우가 많다.) 조직검사를 한번 해서 암이 안나오면 그게 진짜 암이 아니냐, 영상학적으로는 암인것 같은데, 정말 ..

즐겨찾기

나의 블로그는 2011년 3월 1일 오픈하였다. 나는 블로그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그냥 매일 글을 써서 올리는 것 밖에 하지 못한다. 그 글을 쓰면서 듣는 음악도 같이 올리고 사진도 올리고 뭐 그런 짓도 곰살궂게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른다. 내가 체크할 수 있는 기능은 방문건수하고 방문 경로 정도. 8월들어 블로그 방문건수는 하루 평균 200건이 넘는다. 300건이 넘는 날도 가끔 있다. 방문경로는 페이스북을 통해 들어오는 친구들. 그리고 검색엔진에 키워드를 쳐서 들어오는 사람들, 헬스로그에서 연결되어 들어오는 사람들 정도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내 환자들이 가장 많이 방분하고 계신것 같다. 나의 원래 목표를 달성한 것 같아 흐뭇하다. 젊은 엄마와 딸이 ..

맑은 가을의 시작

다음주면 추석이다. 추석 준비를 슬슬 시작해야 한다. 장보는 엄마도 도와야 하고 인사를 해야할 곳은 없는지 챙겨보기도 해야 하고... 오늘은 농협 하나로마트에 갔다. 싱싱한 농수산물을 사기에는 하나로마트가 좋다. 내가 사는 일산에는 하나로마트 옆에 대규모 화훼공판장도 있다. 장을 보고 화훼공판장에도 들렀다. 내가 좋아하는 작은 국화꽃 화분이 한개에 2000원. 참 싸다. 국화꽃 4개, 다른거 2개 6개를 샀는데 13000원밖에 안들었다. 병원에 와서 방청소를 하고 화분 놓을 자리를 잡는다. 맑은 가을 하늘, 햇빛, 그리고 국화꽃. 때가 되니, 소박하지만 예쁜 꽃을 피우는 국화꽃을 보며 사소한 일에 얼그러져있는 나의 마음을 다시 곱게 펴본다. 힘든 일만 생각하고 문제점만 파헤치고 속상해하며 몸과 마음이 지..

환자가 나를 위로해주다

토요일 회진 여유롭게 회진을 돈다. 평소에는 오전 9시에 외래가 시작되기 때문에, 바람처럼 회진을 돌아야 한다. 사실 입원한 암환자 회진은 그렇게 바람처럼 도는게 좋지 않다. 환자가 표현하는 증상, 불편함 등에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 목소리에 귀기울이는게 필요하다. 그렇지만 현실은 현실. 일단 아침 회진을 빨리 돌아야, 레지던트도 오더 정리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일처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검사 푸쉬도 하고 결과도 챙기고 그래야 오후 일을 하기 전에 레지던트도 밥 먹을 틈이 있다. 충분한 면담이 필요한 환자는 오후에 따로 본다. 가족들이 모일 수 있는 저녁 시간에 환자의 상태에 대해 설명해야 할 때도 많다. 오늘은 천천히 회진을 돌았다. 환자 질문에 설명도 충분히 해 주었다..

시작부터 씩씩한 그대, 당신은 모범환자 4호.

일단 유방암이라고 진단이 되면 유방을 샅샅이 뒤지고 그 다음으로 겨드랑이, 쇄골근처의 림프절로 전이가 되었는지를 초음파로 검사한다. 의심이 되면 주위 림프절에서도 조직검사를 한다. 림프절 음성이라고 판단되면, 유방에 대한 수술을 한다. 이중 일부 환자들은 수술 전 영상학적 병기는 아주 낮은 것이라 판단하고 수술했지만 막상 수술을 하고 보니 주위 림프절에서 악성세포가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림프절 전이가 확인되면 병기가 올라간다. 겨드랑이 림프절이 양성(즉 악성세포가 발견되면)일 경우 유방암 치료제의 양대산맥-아드라이마이신과 탁센-을 모두 투여하는 것이 재발율을 낮춘다는 연구결과가 여러 차례 입증되어 항암치료 횟수가 8회로 늘어난다. 수술이 잘못되서가 아니라 원래 이런 경우가 많다. 그래도 뭔가 처음..

학생의 편지

실습나온 학생에게 편지를 받았다. 이번주 월요일 실습 첫날, 실습 돌면서 만나는 입원환자들, 외래 참관하면서 보게 되는 환자들, 그리고 종양내과 의사로서 느끼는 나의 소소한 감정들을 기록한 블로그를 보고 한주간 종양내과 실습을 돌며 느낀 점을 써달라고 했다. 오전 외래가 끝나고 편지를 주자 마자 도망가버렸다. 뒷감당이 안될 것 같다며... 과연 우리 학생은 무엇을 제일 크게 느꼈을까? 학생은 자기 삼촌 얘기로 글을 시작했다. 정기 건강검진을 받는 몇년간 건강에 이상이 없다고 들었는데 어느날 문득 폐암 4기를 진단받으셨다. 목소리가 나오지않고 숨이 차서... 건강검진에서 큰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은지 몇달 안되었는데 수술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갑자기 진행된 폐암. 증상이 갑자기 악화되어 별 치료도 받지 못..

환자의 제안

내 환자 중에 좀 지위가 높으신 공무원이 있다. 사실 무슨 일을 하시는지는 잘 모른다. 암튼 좀 높다고 들었는데 직급을 까먹었다. 3급이라고 했던가? 그 분은 수술하기 전 항암치료를 하시는데 항암제를 잘 견디는 편이라 직장을 쉬지 않고 계속 근무중이시다. 직장에서도 본인이 항암치료 중인지 모른다고 하신다. 항암제는 금요일 밤에 입원해서 늦게 항암제 맞고 주말에 가신다. 그리고 월요일은 정상 출근을 하신다. 딱히 병을 숨기려고 했던 건 아니고 괜히 이사람 저사람 아는 척 하면 말하기도 귀찮고, 특별 대접 받기도 싫고 그럭저럭 치료 견딜만하니까 말 안하고 지낸다 하신다. 나중에 수술하고 나면 얘기할거라고 하셨다. 너무 씩씩하시다. 항암치료 중에 큰 발표도 하셨다. 지방자치단체도 무슨 큰 사업같은 걸 잘 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