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여성으로, 아내로, 엄마로 항암치료 받기

대한민국 아줌마, 항암치료 힘든거 참을 수 있다. 입덧도 해보고 출산도 해봤으니까 토하는 거나 아픈거 다 견딜만 하다. 딸 생리대를 사면서, 난 언제 생리를 하게 될까? 다시 할 수는 있을까? 서글퍼진다. 이제 생리도 안하는 그런 여자가 된걸까? 남편이랑도 멀어지겠지? 호르몬제 드시면서 생긴 관절염 때문에 아쿠아로빅을 권했더니 수영장에 못가겠어요. 아직 자신없어요. 수영복도 잘 안맞아요. 가발 벗는것도 부끄러워요. 손톱 색깔이 변하고 이상한 무늬가 생겼다. 항암제 부작용 전혀 없이 잘 지내고 있는 것에 대한 훈장이라고 생각하라고 했더니 대번에 획 돌아앉는다. 고3짜리 딸은 12시 넘어야 들어오는데 자기는 피곤해서 10시면 잔다고, 그래서 애 얼굴 볼 일이 없다고. 그게 무슨 훈장이냐고 토라져서 나가신다...

사망선언

오늘 아침에 환자 한분이 돌아가셨다. 돌아가실 것을 예상하고 있던 터라 별로 놀라지는 않았다. 회진 갔더니 이미 돌아가신 상태였는데 내가 화가 난건 돌아가신지 한시간이 넘었는데 아직 라인 정리도 안되있고 폴리도 안빼고 관도 다 안빼서 정리가 안된 상태였다는 점이다. 인턴 혼자 뭔가를 하고 있는데 엊그제 term change가 되어서 그런지 하는 모양이 영 불안하다. 가족들이 옆에서 계속 그걸 보고 있다. 가족분들을 다 나가게 하고 간호사를 불렀다. 인턴선생님에게도 얘기했다. 환자가 힘들게 치료받다가 돌아가셨는데 빨리 정리를 해서 가족들이 장례 준비를 하도록 도와 드려야한다, 시신에서 라인 정리 같은 걸 하는 걸 가족이 직접 지켜보고 있는건 별로 않좋으니 잠시 나가 계시라고 해야 한다 정리되면 병실로 들어..

그러니까 제가 궁금한건요...

8년만에 재발한 유방암. 오른쪽 폐 조금하고, 뼈에 여기저기 재발했다. 나하고는 처음 만났다. 이전 치료기록을 점검하였다. 재발 직후 했던 6번의 항암치료는 반응은 좋았지만 독성이 심해 항암제를 계속 쓰기가 어려워서 호르몬제로 바꿔서 유지한지 6개월. 오른쪽 다리가 갑자기 아파서 입원하였다. 원래 병이 있던 자리인데, 이번에 찍은 뼈사진 상 조영제 섭취 정도가 증가하였다. 그렇지만 그것 자체만으로 암이 나빠졌다고 보지 않는다. 다른 임상적인 상황과 비교해야 한다. 통증이 있는 부위 MRI를 찍었다. 뼈전이는 크게 두가지가 있는데 osteolytic vs osteoblastic 이렇게 구분된다. osteolytic은 골용해성이라고 번역하는데 암세포 때문에 뼈 성문이 녹아버려서 뼈가 약해지고 골절도 생기기가..

굴절된 렌즈

어렸을 때부터 성당을 다녔고 고3때도 한주 빠짐없이 매주 미사 반주를 하는 착한 성장기를 거쳤건만 대학 입학한 후부터는 성당도 안다니고 기도 전혀 안하고 냉담하며 살았다. 의사가 된 다음, 어쩔 수 없이 혹은 필연적으로 하느님의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의사라 하더라도 할 수 없는게 훨씬 더 많다는 걸 깨닫게 되었으니까. 사회생활, 조직생활 하면서 세상의 모순과 잘못들을 알게 되었으니까. 그걸 알면서도 그냥 묵인하고 지지부진 사는게 나라는 게 부끄러우니까. 그러나 달라진게 있다면, 여전히 믿음은 창호지 수준이고 특별히 성경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지만 가끔 환자를 위해 화살기도를 한다는 것 정도. 주님, 저는 능력이 별로 안되니까, 하느님이 좀 봐주셔야 할 것 같아요. 부탁드립니다. 이정도. 주일미사도..

99세에 시집을!

우리병원 간암클리닉 한광협 선생님이 간암클리닉 성원들에게 보내신 메일인데 좋은 글이라고 최혜진 선생님이 나에게 메일을 첨부해 주셨다. 일본 할머니가 99세에 낸 시집이 소개되었다. 할머니는 지금 100세. 백년 인생이 기구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할머니도 인생 굴곡 많으셨던 것 같다. 제목은 '약해지지마' 퇴근하는 길에 홍익서점에 들러 사봐야겠다. 인상적인 몇 구절. 비밀 나, 죽고싶다고 생각한 적이 몇번이나 있었어. 하지만 시를 짓기 시작하고 많은 이들의 격려를 받아 지금은 우는 소리 하지 않아 아흔 여덟에도 사랑은 하는거야. 꿈도 많아 구름도 타보고 싶은 걸. 나에게 뚝뚝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멈추질 않네. 아무리 괴롭고 슬픈 일이 있어도 끙끙 앓고만 있으면 안돼. 과감하게 수도꼭지를 비틀어..

전화하지 마세요

난 명함이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이 블로그를 소개하는 '한쪽가슴으로 사랑하기' 명함인데 메일 주소랑 블로그 주소 정보만 기재되어 있다. 또 하나는 병원 명함인데, 거기는 핸드폰 번호랑 방 사무실 전화번호같은 사적인 정보도 기재되어 있다. 외래에서 첫 만남을 갖는 신환 환자들에게는 블로그 명함을 주고 궁금한거 있으면 들어가서 보라고 한다. 요즘 블로그 명함이 다 떨어져서 병원 명함밖에 없으니 환자들에게 명함을 안 주고 있었다. 진료를 하다가 우울해보이고 힘들어보이는 환자 보호자없이 다니는 할머니인데 이럴땐 어떻게 저럴떈 어떻게 설명해도 잘 못알아 먹을 때, Cr 높을 때 Heart function 안좋을때 70세 넘었는데 보호자 지지그룹이 약해보일 때 그렇게 불안불안해보이는 환자들에게는 병원명함을 드리..

내 생애 봄날은

올 초 항암치료를 시작하는 환자들을 위해 설명서와 다이어리를 만들었다. 내가 봐도 럭셔리한 다이어리의 제일 앞장은 다음과 같은 글로 시작된다. 항암치료를 시작하는 당신께 난생 처음 항암치료를 시작하는 당신, 혹은 재발이 되어서 다시 항암치료를 받게 된 당신. 지금 마음속에 자리잡은 두려움은 항암치료 자체보다는 치료 이후 내 삶은 과연 어떻게 될까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항암 치료 과정에서 발생하기 마련인 어려움, 혹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이 다이어리에 기록하고 저희 의료진과 상의해 주십시오. 이 다이어리는 항암 치료 중인 당신의 하루하루를 의료진과 함께 공유하고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무기가 될 것입니다. 아무 문제없이, 무사히 항암치료가 진행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꿋꿋..

환자 마음 이해하기

항암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말하는 환자들. 그 맥락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내가 보기엔 아직 효과적인 약제도 남아있고 환자 전신상태도 그리 나쁘지 않은데 항암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면 환자랑 충분히 잘 얘기해보고 그 속마음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의사가 전이성/진행성 암환자에게 항암치료를 하는 것이 필요할지, 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더 나을지를 결정하는 과정이 의외로 주관적일 수 있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고 연구도 많이 되어 있다. 직계가족이 없으신 K씨. 혼자 씩씩하게 치료를 잘 받으러 다니신다고 생각했다. 본인이 중요한 결정을 다 하시고 입원도 싫어하셔서 늘 외래에서 치료받았다. 병이 좀 나빠져서 외래를 왔다갔다 하기에 약간의 도움이 필요한 정도라고 생각했다. 숨이 차니까 좀 천..

스트레스 관리법

영어공부에 왕도가 없듯이 스트레스 관리에도 정답은 없을 것이다. 우린 자신이 처한 상황의 문제점을 분석하며 스트레스의 구조적 원인을 찾아보지만 - 그리고 난 그런 분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 사실 구조가 바뀌어도 내 내면에서 스트레스를 생성/가중시키는 원인이 있다는 걸 잊으면 안된다. 나도 고백하건데 굳이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는 문제까지도 스트레스를 만들어서 받는 측면이 있다. 결국 성격머리. 그러니까 성격머리를 고처먹지 않으면 스트레스는 영원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 나이 먹어서 성격머리가 그리 쉽게 고쳐지겠나? 성격머리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 그럼 다른 해법을 찾아야 한다. 모든 해법은 100% 만족스럽지 않다. 이것저것 조합해서 가능하면 스트레스를 덜 받고 덜 느끼고 distress 보다는 ..

외래 지연 죄송합니다!

외래시간이 예정보다 지연되면 EMR에서 자동으로 시간이 카운트되어 원장님께 보고됩니다. 다달이 통계도 나오는거 같습니다. 평균 몇분 지연되는지 의사별로 다 계산됩니다. 곧 외래 지연시간 넘버 3 안에 들게 될 것 같습니다. 경고 메일 대상자입니다. 이번주부터 손선생님의 외래가 없고, 제가 유방암 외래를 다 봅니다. 그래서 낯선 환자들과의 첫 만남들이 많습니다. 손 선생님이 오래 보셨다는 것은 그만큼 병력이 길기 때문에 사실 전날 환자 파악하느라고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언제 무슨약 쓰고 어디가 좋아졌고 그러다가 언제 어디가 나빠졌고 무슨 약 부작용으로 고생했고... 무슨 치료 하다가 열났고 중환자실 갔다 왔고.... CT와 각종 검사결과, 의무기록, 입원했으면 입원기록 등등을 챙겨보고 다음날 외래를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