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의사도 자기 분야 아니면 환자랑 똑 같다

모르는 번호에서 전화가 왔다. 우리병원 타과 교수님. 우리병원 트레이닝 출신의 누구랑 어떤 관계가 있는 누구의 부인인데 유방암으로 수술을 받으셨다 한다. 지금 항암치료를 해야하는 거야? c-erb 라는 걸 유전자 검사한다는데 그게 무슨 말이야? 그 검사 꼭 해야 하는거야? 그거 해서 나오면 어떻게 되는거야? 그거랑 항암치료랑 관계가 있는거야? 설명을 드렸는데 영 이해 못하시겠다는 눈치다. 환자가 누군지, 수술 후 상태가 어떤지 정보를 모르고 대답을 한다는게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 관련 되시는 당사자분이 직접 전화하시는게 좋을 것 같다고 핸드폰 번호를 알려드렸다. 그래 고마워. 근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네. 유방암은 뭐가 그렇게 복잡해? 누군가에게 청탁 전화가 왔다. 치아 뿌리가 어떻고 저떻고 어떻게..

유비무환이라지만...

비가 오면 환자가 없다. 유비무환. 그리고 비 개고 나면 환자가 많이 온다. 우후죽순. 의사들끼리는 그렇게 말한다. 비가 오면 마음 속으로 오늘 한나절은 좀 편하게 지나가겠구나 알아차리고 생리시계가 알아서 반응한다. 어제 오늘처럼 비가 왕창 온 다음날, 오늘 오후 외래가 있었는데 한분의 환자도 빠짐없이 모두 외래에 오셨다. 그리고 몇분 더 오셨다. 다들 묵묵히 항암치료도 받고 항암치료 후 백혈구 수치 확인받고 가고 영양제도 맞고 가고 검사 결과도 듣고 가셨다. 토해서 힘드신 분은 항구토제 주사도 맞고 수액도 맞으셨다. 늘 그렇듯이... 길이 통제되었다는 부근에 사시는 분들께 여쭤본다. "이 비를 뚫고, 길도 막혀있다는데, 어떻게 오셨어요?" "새벽같이 출발해서 막혀있는 곳을 돌아돌아 왔죠." 마음이 짠했..

윤서맘님께

약자를 잘 아시는거 같으니 약자로 말씀드리죠. AC #4 à T #4 이렇게 하는 것, 현재 우리나라에서 수술 후 보조요법으로 T를 쓰는 것은 겨드랑이 임프절 전이가 있을 때 보험으로 가능합니다. 그러나 겨드랑이 임프절 전이가 없는데도 삼중음성유방암 환자들에게는 T를 권하기도 합니다. 이후 항호르몬제나 허셉틴 등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다른 옵션이 없기 때문에 TAC #6 으로 하는게 좋지 않겠냐 하는게 유방암을 치료하는 종양내과 의사들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때 T는 보험이 안됩니다. TAC #6 은 그 자체의 독성(호중구 감소증)으로 인해 예방적으로 (즉 백혈구 수치가 정상일 때부터) 백혈구 촉진제를 쓰도록 되어있는 레지멘인데 -임상연구로 수차례 입증하였음 - 백혈구 수치가 정상일 때는 약값이 보험이..

언니가 최고!

나이 40 즈음의 내 나이 또래 환자들, 언니 혹은 동생이랑 같이 자매끼리 외래에 오시는 분들이 많다. 언니 동생 각각 다 결혼해서 자기 가족이 있지만 치료받고 병원 다니는 과정을 함께 해준다. 40이 넘었으니 집에 돌봐야 할 갓난쟁이 애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아이들도 커서 엄마가 시종일관 붙어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니 투병생활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줄 만 하다. 사실 남편은 직장생활을 한다는 핑계도 있지만 환자가 뭐가 힘든지 눈치도 잘 못챌 뿐더러 빠릿빠릿 몸을 움직여서 환자를 위해 뭔가를 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잘 못한다. 남자가 그렇다... 쯧쯧 환자는 누군가 나를 위해서 입에 혀처럼 마음에 꼭 맞게 뭔가를 해주기를 바라지만 그걸 입밖에 내는 건 자존심도 상하고 내가 직접 쿨하게 알아서 해..

기분전환

사실 치료 중엔 뭘 해도 몸 상태가 썩 좋질 않습니다. 왜 이런 증상이 생기는지 어떻게 하면 예방/치료할 수 있는지 공부도 해보고 인터넷으로 자료도 찾아보고 외래에 와서 저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뭔가 이해하고, 납득하고, 극복해보려고 하지만 사실 딱히 신통치 않으실거에요. 치료받는 과정 중엔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일들에 대해 그러려니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없어도 그냥 받아들이는게 좋을 때도 있어요. 의사 선생님 스타일에 따라서는 환자들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자세히 해주지 않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래도 치료 잘 받고 잘 나아서 건강하게 지내시는 분들도 아주 많아요. 즉 의사의 설명이, 친절이, 환자의 상태를 결정하지는 않는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전 그래도 가능하면 환자들의 마음을, 심정을, 이해를 돕고 ..

흐린 날씨 흐린 마음

인간은 확실히 날씨의 영향을 받는다. 몸도 마음도. 정확한 메카니즘은 모르지만 분명 무슨 인과관계가 있긴 있을 것 같다. 햇빛, 바람, 습도 등의 요인들이 내 몸과 마음에 미세한 변화를 미치는 것이 분명하다. 과학적인 기전이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관절염 환자들은 비가 오기 전날이면 관절 내 윤활액과 관절들이 기압의 변화를 미세하게 감지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관절염이 더 심하다고 하지 않던가. 요즘같이 흐린 날이 계속 되니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더 많아진다. 통증이 심해지고 조절되지 않으면 자꾸 자신이 아픈 사람이라는 걸 떠올리게 되고 그래서 비관스럽고 우울해지기 마련이다. 특히 뼈로 전이된 환자들은 욱씬거리는 뼈통증이 조절되지 않으면 특히 더 힘들어한다. 유방암 뼈전이는 비교적 예후가 좋다. 4기..

주치의가 바뀔 때 환자들의 마음

"다음 진료부터는 이수현 선생님이 봐 주실 겁니다." "왜요?" "제가 2년동안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수현 선생님, 아시죠? 작년 한해동안 저랑 같이 유방암 환자 진료를 해 오셨던 분이니 환자분도 잘 봐주실거에요." "선생님 다녀 오시면 다시 선생님께 진료볼 수 있는거죠?" "그럼요." "그런데 제가 그때까지 살아있을 수 있을까요?" "..." 환자들이 손 선생님과의 마지막 진료 때 나누는 대화이다. 유방암 환자들은 특히나 주치의에 대한 의존성이 높다. 왜냐하면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하면 좋아진다는 걸 경험해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즉 유방암은 항암제 반응성이 좋은 편이라 한두번의 항암치료만으로도 크기가 줄고, 폐전이로 인해 계속 고생하던 기침도 멈추는 등 증상이 호전되는 걸 경험해 본..

그레이 헤어

항암치료, 수술을 마치고 1년간 허셉틴을 맞으러 오는 분들이 있다. 수술 후 보조요법으로 허셉틴이 인정된게 2년이 안된다. 허셉틴은 3주간격으로 맞기 때문에 환자를 3주간격으로 꼬박꼬박 만나게 된다. 그렇지 않은 환자들은 수술/항암치료가 끝나고 나서 6개월 간격으로 외래를 보기 때문에 3주간격으로 만날 때처럼 치료 후 환자에게 발생하는 미세한 변화를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3주간격으로 환자를 보니까 조금씩 조금씩 신체적으로 회복되어 가는 과정 심리적인 변화 그런 것들이 눈에 띈다. 그중 내가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40대 후반 50대 초반 환자들의 새로난 머리카락 칼라이다. 새로난 머리카락의 색깔은 새치처럼 하얗지도 않고 칙칙한 블랙도 아니고 멋진 그레이 톤이다. 흰색 회색 약간 검은 색 이..

모범환자 2호

젊은 엄마. 처음 진단받았을 무렵 그녀의 병은 아주 험했다. 양쪽 유방과 간. 그리고... 올 초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병이 깊어서 그랬는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피로함과 피곤함으로 환자가 힘들어 했었다. 그리고 병을 진단받고 놀라서, 병에 질려서, 착한 그녀와 그녀 남편은 나에게 아무런 질문도 하지 못했다. 항암치료를 시작하고도 나는 그녀를 집에 보낼 수 없었다. 치료 후 간 기능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데 그러면 위험해질 것 같아서 몇일 더 경과관찰하여 괜찮은지 보고 퇴원을 시킬 정도였다. 그리고 매주 요법으로 치료를 시작하였다. 용량을 적게, 자주 맞는게 그녀에게 안전하고 효과적일 것 같았다. 다행히!!! 빠른 속도로 병이 좋아지고 있다. 지금 이시간까지도 계속. 그녀는 퇴원 후 매일같이 내가 준..

가글 레시피

항암치료 중에는 입안 점막이 헤지면서 구내염이 잘 온다. 구내염이 오면 입맛도 떨어지고 먹는 양이 줄면서 몸과 마음이 고달파지기 시작한다. 심한 경우 입안에 궤양이 생겨 푹 파이기도 한다. 매우 아프다. 백혈구 수치가 떨어져있다면 구내염 때문에도 열이 날 수가 있다. 입안에는 기본적으로 수많은 잡균들이 서식하고 있기 때문에 점막 말고도 잇몸질환, 충치 등의 문제가 겹쳐서 통증이 심하게 오는 수도 있다. 그런 염증이 막상 오고나서보다는 구내염이 오기 전에, 멀쩡할 때, 가글을 하는 것이 좋다. 즉 항암치료를 시작하자 마자 가글을 열심히 하고 하루 4회 이상, 식후 3번과 잠자기전. 그리고 가글을 하고 나면 물로 헹구지 마시도록. 백혈구 수치가 떨어지는 항암치료 후 10일을 전후해서는 하루 6-8회 정도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