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환자들에게 죄송한 마음

여러모로 무리가 많은 월요일 외래였다. 이유가 다 있었다. 그 이유를 밝힐수는 없지만... 오늘 외래오신 분들, 나를 많이 원망하셨을 것 같다. 그래서 이번주부터 목요일 외래를 신설하기로 했다. 월화수목금 외래를 열어서 환자를 분산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사실 목요일 하루는 나에게 외래가 없는 날이라 밀린 일도 하고 여러 회의나 모임도 하고 그랬는데, 그냥 다 포기하기로 했다. 월요일은 오후, 화수목은 오전, 금요일은 오전오후, 토요일은 2주에 한번 이정도 외래를 열면 오늘처럼 몰리지는 않겠지? 외래를 자주 열면 여는 만큼, 나의 모든 정신이 환자에게 쏠리기 때문에, 공부하는 시간, 연구하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나는 끝까지 욕심을 부릴려고 했었는데, 그냥 이제 연구는 당분간 접으려고 한다. 환자..

4기 환자에 대한 중환자실 치료

어제 그제, 이틀 사이에 3명의 환자가 인공삽관을 하고 중환자실을 갔다. 한명은 심폐소생술도 했다. 마침 중환자실 자리가 있어서 다행이다. 환자를 보내놓고 나니, 중환자실에서 날 욕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4기 환자에게 이렇게까지 공격적으로 치료를 하는게 맞는건가요? 나를 비난할 것 같다. 나도 평소에 전이성 암환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극적인 치료가 반드시 옳은 건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난 왜 중환자실을 보냈을까? 유방암의 특징일지도 모르겠다. 유방암의 세부 유형 중에는 아주 공격적이고 무슨 치료를 해도 약이 듣지 않고 진행이 빠른 타입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다른 암에 비해 4기가 된 후에도 오래 살고, 약도 많고, 환자들 컨디션도 좋다. 그리고 중환자실 치료를 잘 견디고 ..

주말의 병동

가운을 안 입고 병동을 돌아다니면 난 아줌마 자체다. 회진 때는 착한 환자로 침대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던 환자들이 저녁식사 후 병동 여기저기서 도란도란 다른 환자와, 다른 보호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자기는 병실의 화분이라며 항상 밝게 웃는 환자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다. 뭔 일 있으세요? 속상해서 좀 울었어요. 왜요? 또 열나서 그래요? 아니에요. 나 때문에 운건 아니에요. 옆에 있는 언니가 너무 아파서 힘들어 하는게 안타까워요. 전 저 때문에는 울지 않아요. 우리 아들 생각하면 난 절대 울 수 없어요. 가운을 안 입고 이야기를 나누니까 평소에 안 하던 얘기를 풀어놓는다. 전이성 난소암 환자, 유방암과는 달리 난소암은 항암치료의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다. 이번이 마지막 치료가 아닐까 생각하고 항..

레지던트들과의 치맥

휴가간 전공의를 대신해서 내 환자를 봐준 레지던트와 병동 대박 드레싱, 중환 keep 하느라 떡치고 있는 인턴 선생님과 함께 점심 때 치맥을 하였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둘 다 모두 나이가 많았다. 내가 동기들보다 8년 나이가 많은데 이들도 만만치 않았다. 난 원래 레지던트들과 벼라별 뒷 담화를 공유하며 친하게 지내는 편인데 올해는 호칭이 교수님이 되어서 그런지 이들은 날 어려워하는 것 같다. 회진돌 때, 일을 지시할 때, 별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하면서 레지던트를 괴롭히는 윗 사람이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부담없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존재의 본질과 무관하게 우리의 관계는 격식이 있어 서먹서먹하다. 그래도 맥주 한잔 정도에 약간의 긴장감은 풀어질 정도로, 자기 얘기를 할 수는 있게 되었다. 내가 편입제도를 통..

사진촬영

2014년에 문을 열 예정인 연세암센터 홍보자료를 위해 여러 종류의 리플렛을 만들고 있나본데 내가 그런 일을 하고 있다. 난 사실 종교적인 심성이 강하지 않고 신실하지도 않다. 우리 병원은 기독교 병원이니 기독교 신자들에게 보다 적극적인 치료네트워크로 자리잡겠다는 내용으로 교회용 리플렛을 만드라는 오더를 받았다. 환자랑 같이 사진 찍고 리플렛 문구 작성하라는... 자신의 얼굴이 인쇄되고 널리 홍보용으로 쓰이는 리플렛용 사진촬영을 허락하기가 쉽지 않은데 어떤 분께 부탁을 드려야하나 나는 내심 몇일간 고민했다. 처음으로 대장암 간전이 복수를 진단받은 환자. 배가 잔뜩 부르고 숨이 차서 오셨다. 알부민 수치가 2가 안되서 온몸이 퉁퉁 부어있고, 복수가 늑막으로 넘어가서 숨이 차 제대로 누워있지도 못하고 안절부..

왜 이제사 오셨어요....

2006년 전이성유방암을 진단받고 6번 항암치료를 했다. 항암제 반응은 좋았으나 독성이 심해서 6번까지만 항암치료를 하고 중단하였다. 그리고 좀 쉬다가 사진을 찍었더니 약간 나빠지는 것 같아서 호르몬제를 복용하셨다. 2년동안 호르몬약 하나로 병이 진행되지 않고 안정적이었는데 또 조금 나빠졌다. 호르몬제를 바꿔서 드셨다.또 그렇게 2년이 지났다. 환자는 항호르몬제 만으로 4년을 잘 버티셨다. 환자는 호르몬제를 드시다가 작년말부터 병원에 안 오셨다. 오늘 남편분이 외래에 오셨다. 지금 다른 병원에 입원했는데 다시 오고 싶다고. 간략하게 상태를 여쭤보니 많이 않좋은 것 같았다. 다행히 자리가 있어서 입원장을 드렸다. 오후에 환자가 입원하자마자 체크한 산소포화도가 88%다. 산소공급은 마스크로 10 리터이상. ..

호스피스 병원에 대한 나의 몽상들

200-300병상 정도 규모의 작은 병원을 지어서 돈걱정 안하고 환자만 진료하면 되는 그런 병원을 운영할 수만 있다면... (절대 없겠지만) 암환자만 진료하는 병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응급시술이나 첨단 장비를 이용한 검사는 세브란스병원같이 큰 병원과 연계하여 비록 작은 병원이지만 신속하게 연계하여 큰 병원 못지 않은 의료서비스가 제공되고 수액 맞는 보존적 치료, 편하게 쉴 수 있는 쉼터같은, 집같은 보살핌을 주는 그런 병원을 운영하고 싶다. (수익율 백퍼센트 마이너스. 돈 걱정 안하고 보험삭감 걱정 안하고 입퇴원 푸쉬없고...이건 거의 공상수준임) 이 병원에서는 환자가 입원하면 세장의 카드를 준다. 한장은 타로점 카드 한장은 음악다방 티켓 한장은 캐리커쳐 티켓 1> 타로점 카드 나는 예전부터 타로점을 배..

무사고 무지연 외래를 위한 노하우

1. 당연히 예습한다. 예습하면서 사진 미리 다 본다. 사진보다가 미리 영상의학과 담당 선생님께 메일 보낸다. 임상적으로 이러저러 한데, 사진은 어떻게 보이나요? 영상의학과 선생님들, 친절하게 답장 잘 해주신다. 감사합니다. 2. 환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안부를 물어봐야 한다. (잘 알고 있는 환자라면) 어떠셨어요? 지난번에 손발 저린것 때문에 약을 드렸는데, 좀 나아지셨나요? (투약 반응 확인) 혹은 아드님 결혼은 무사히 잘 치르셨나요? (정서적 지지) (잘 모르는 환자라면 EMR 화면이 뜰때까지 기다려야 함) 잘 지내셨어요? 컨디션 괜찮으시죠? (막연한 질문) 3. 예습을 통해 병이 나빠지고 있는 상태를 확인한 경우라면, 앞 환자들을 신속히 보고 이 환자를 위한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4...

우리는 small mind!

 갑자기 머리가 아프면서 몇번 토했다. 하지에 반점이 생겼다. 오마이갓, 환자는 눈시울이 벌게져서 외래로 뛰어오셨다. 그녀를 보는 나도 가슴이 덜컥. HER2 양성으로 수술 후 허셉틴 유지 치료를 받고 있다. 환자가 머리 한번 아프다고 해서 뇌 MRI를 찍는 것이 의학적으로 적절한가? 대답은 확실하지 않다. 과도한 검사를 불신하는 나, 그러나 당일 검사실에 부탁하여 MRI를 찍게 하였다. 오후 늦게 사진을 찍고 간 그녀 대신 나는 밤에 가슴 졸이며 사진을 열어본다. 이때 마우스를 움직이는 오른쪽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오 하느님, 깨끗하군요. 감사합니다. 그래도 공식판독을 기다려봐야지. 어제 검사하고 간 환자가 오늘 왔다. MRI 결과는 정상입니다. 특별한 문제가 없네요. 하지에 멍든것 같은 반점에 대..

태도도 중요하지만

설명하는 의사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태도는 중요하다. 그런데 태도가 본질일까? 중환자실 들어간지 한달이 넘었는데 어제 나온 환자. 다른 과에서 진료하다가 협진을 통해 내가 진료를 이어받은 환자이다. 중환자실 있을 때 전과를 받았다. 치료 가능성이 너무너무 낮고, 의식도 뚜렷하지 않은 상태에서 환자의 뇌에 방사선치료가 시작되었다. 뇌의 아랫부분, 뇌신경이 나오는 부분에 종양이 있어서 의식과 호흡이 좋지 않았는데, 여러 우여곡절끝에 치료가 시작된 상태에서 나는 이 환자의 주치의가 되었다. 보호자들은 한달 이상된 병원 생활에 이미 지쳐있었고 환자는 병원에 올 때 걸어 들어왔는데 치료가 늦어져서 중환자실에 들어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환자를 보지 않았던 초반 한달 사이에 뭔가 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