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하루

오늘 나의 하루 6시 - 7시 오전회진 전 EMR 리뷰 7시 - 9시 오전회진 9시 - 11시 30분 외래 11시 30분-12시 30분 종양전문 간호교육 : 부인암 12시 30분 - 1시 미쳐 못본 오전외래. 항암제주사실 방문 1시 - 1시 30분 레지던트 저널발표 1시30분 - 3시 학생 케이스 발표 참관 3시 - 4시 연구간호사 미팅, 임상연구 서류 정리 4시 - 5시 영어공부 잠시 PAUSE 6시 - 7시 랩미팅 7시 - 8시 등산 잠시 PAUSE 9시 - 10시 입원환자 치료계획 설명, 임상연구 설명 지금은 오늘의 2번째 PAUSE Time 이다. 하루에 받는 전화, 메일, 연락, 미팅. 정신 못차리고 슝슝 지나간다. 이 와중에 EMR 보면서 환자 빵꾸 나는거 없는지 입원환자를 챙긴다. 레지던트랑..

쿨한 아가씨!

나는 아직 연륜이 짧아서인지 누군가를 한번 보고 척 알아차리는 그런 천리안은 없다. 그래서 처음 환자를 만났을 때의 인상이 이후 전개될 우리 관계에 결정적이지 않다. 한번 봐서는 잘 모르겠다. 몇번 만나보고 이얘기 저얘기 해봐야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다. 전이성 유방암 환자들은 한번 인연이 맺어지면 오래 갈 사람들이지만 조기 유방암 환자들은 4번에서 8번 정도의 항암치료를 하는 날, 드물게 그 사이 소소하게 문제가 생길 때 만나고, 이후 추적관찰은 외과에서 하게 되니까 긴 인연이 아닌 경우가 많다. 사실 수술한 유방암 환자들은 무슨 문제가 생겨도 저절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자기 힘으로 다 이겨내기 때문에 내가 크게 신경 안써도 다 좋아진다. 이제 갓 30을 넘긴 아가씨. 키 크고 날씬하고..

정말 고마워요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지금이 네 인생 최고의 시기 아니냐고. 그 말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본다. 나에게 가장 의미있는 일은 뭘까. 지금은 나에게 정말 최고의 시기일까. 지금을 사는 나에게 행복이란 뭘까. 매일 밤 늦게까지 병원에서 환자차트를 보며 가슴을 쥐어 뜯으며 일하는 나에게 이 하루하루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집에는 가서 잠만 자고 오고 병원-집-병원-집 집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나,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나빠지는 환자가 많은 외래. 상태가 나빠서 입원한 병동 입원 환자들, 검사 결과도 좋지 않고 상태도 계속 나빠지는 환자 우후죽순. 오늘은 아주 슬프다. 책상에는 읽지도 못하고 먼지 쌓인 채 누렇게 바래가는 논문들. 미처 처리하지 못한 메일로 꽉찬 전자메일함. 보관 기한이 지나 지워져가는..

병원을 옮기려는 환자의 차트를 정리하며

외래를 예습하다가 외래 간호사가 '진료메모'칸-이 환자가 왜 오는지를 간략하게 적어놓는 칸-을 보니 전원 차트복사 라고 쓰여있는 환자가 있었다. 삼중음성유방암이시다. 수술한지 2년이 채 안되서 재발이 되었다. 재발 후 항암치료를 4번 했는데 간이 조금 나빠져서 약을 바꾸었다. 항암치료를 3번 했는데 또 간이 더 나빠져서 약을 바꾸었다. 그리고 또 약을 바꾸어서 치료했는데 2번만에 또 나빠졌다. 삼중음성 유방암이라고 해서 다른 유방암에 비해 약제선택을 다르게 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은 없지만, 재발 후 첫 약제반응이 좋지 않은 삼중음성유방암은 다른 약으로 바꾸어 써도 잘 듣지 않는다. 호르몬 양성 환자는 두가지 약제가 아닌 한가지 약제로 치료해도 효과가 좋고, 때론 먹는 항호르몬 치료만으로도 몇년씩 안정적으..

비타민, 오메가3 먹어도 되나요?

주말동안 학회가 있었다. 올 6월 미국암학회에서 발표된 주요 논문과 의미있는 연구들을 리뷰하고 공부하는 학회였다. 유방암 폐암 위암 대장암 ... 각종 주요 암종의 최신 지견을 이틀간에 걸쳐 요약정리하는 시간.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석했다. 그중 한 세션에서 항암제의 효능과 관련된 것은 아니나, 암 생존자나, 치료 중인 환자를 지지/지원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대한 연구도 소개되었다. 예를 들면 요가는 폐경기 증상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는 통계적으로 의미있게 보고 되었다. 아마씨는 유방암 환자에게 증상개선이나 삶의 질, 생존율 향상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 되었고 통계적으로 확실하게 negative data임이 보고되었다. 암의 재발을 막기 위해 암의 치유를 위해 환자의..

마지막 가시는 길

환자들은 밤에 나빠진다. 암환자는 마지막이 가까와지면 예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예상치 못하게 나빠지는 경우도 가끔 있다. 대개 밤에 당직 레지던트가 그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임종이 예상되면 미리 인계를 잘 해서 환자에 관한 상황을 잘 전달하고 이것저것 불필요한 검사를 하기보다는 통증을 조절하고 환자를 주무시게 한다든지 하는 환자가 힘들지 않게 하는 조치를 해 주는게 더 낫다. 뇌출혈 직후 토하면서 흡입성 폐렴으로 갑자기 숨 쉬기 어려워서 일단 인공삽관을 하고 중환자실에도 갔었다. 안정적으로 유지되는데 이렇게 계속 시간이 가겠다 싶었다. 가족들도 조만간 돌아가실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환자를 중환자실에 계속 혼자 있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환자를 깨우고 가족들이랑 눈이라도 맞추고 지내다가 가족들 ..

나도 우리 병원이 불편한데

호흡곤란과 가슴 통증으로 외래에 온 환자. 5년만에 유방암이 재발했는데 양쪽 늑막에 악성 흉수가 고이는 것으로 재발되었다. 다행히 아직 다른 곳에서 전이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흉부외과에서 수술적으로 흉막유착술을 했는데도, 물이 쉽지 마르지 않는다. 항암치료를 하여 효과가 있으면 물이 흡수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아직 물이 많이 차 있는 쪽에 작은 관을 하나 넣어두었다. 물이 많이 고이면 숨쉬는게 힘드니까, 병이 좋아질 때까지 관을 유지하면서 물을 조금씩 빼주는게 환자를 편하게 해주는 방법이다. 아직 약 효과를 기대하기에는 치료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은 좀 기다려봐야 하는 때인데, 환자가 숨쉬기도 힘들고 가슴이 아프다면서 외래에 오셨다. 가슴엑스레이를 찍어 보니 관이 막혔는지 ..

용감한 청춘

멀리 남도 섬에 사는 스무살 젊은이. 4년전에 고환에서 뭔가가 만져져서 수술을 하였다. Embryonal carcinoma (배아상피암). 예후가 좋은 암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3개월만에 처음 찍은 PET 사진에서 전신의 뼈, 양쪽 폐, 온몸의 림프절, 간, 다리 근육 등 전신 여기저기 암이 재발하여 허옇게 조양증강이 되어 있었다. 사진을 보면 헉 소리가 절로 난다. 원발병소는 수술했지만 순식간에 전신전이가 진단된 것이다. 척추에 암세포가 침투하여 골절이 와서 신경증상이 나타나 척추를 바로 세우는 수술부터 하였다. 9번의 항암치료, 다행히 반응이 좋아 자가조혈모세포 이식까지 하였다. 자가조혈모세포 이식을 한다는 것은 자기 조혈모세포를 2번에 걸쳐 추출하고, 아주아주 강한 항암치료를 두 차례 한다음, 모..

뭐니뭐니해도 아픈게 좋아져야

환자와 신뢰 관계를 쌓으려면 의사는 태도도 좋아야 하고, 실력도 좋아야 하고, 설명도 잘 해야 하고, 환자의 말도 잘 들어줘야 하고, 환자의 입장과 편의도 고려해서 진료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환자가 지금 가장 불편한 문제를 해결해서 불편한 몸 상태가 개선되어야 의사를 신뢰하게 되는 것 같다. 레지던트 2년차 시절. 환자는 이비인후과 의사선생님이었다. 전이성 방광암으로 미국 유수의 대학병원에서 온갖 종류의 항암제, 신약으로 치료를 다 받으셨지만, 결국 병은 나빠지고 한국에 오셔서 우리 병원에 다니며 보존적 치료만 하고 계셨다. 아프면 진통제, 힘들면 영양제... 오랜 병으로 삐쩍 말랐지만 잘 생긴 의사선생님, 인물이 훤칠하다. 입퇴원을 반복하지만 본인의 힘든 증상이 잘 해결되지 ..

혈압약 당뇨약 고지혈증약, 다 드리지는 못하겠어요

선생님, 혈압약하고 고지혈증약도 같이 한달치 주세요 오늘 혈압 잰 종이 좀 보여주실래요? 안 쟀는데... 한번 재고 오실래요? 네 그러는 동안 최근 콜레스테롤 검사결과를 찾는다. 정상. 고지혈증약의 보험기준은 나름 까다로워서 수많은 과거병력과 언제 수치가 올랐었는지 이런걸 다 따져야 하는데 외래에서 그걸 뒤져볼 시간이 없다. 삭감을 각오하고 그냥 처방해 드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대개는 설명을 한다. 환자가 이해를 못하거나 오해를 하는 것 같으면 설명시간이 길어진다. 외래 지연의 원인이 된다. 제가 암을 주로 보는 의사이다 보니까 혈압이나 지질대사 관련 전문지식도 짧고, 부작용에 대해서도 어떻게 모니터링 해야하는지 잘 모릅니다. 이 약을 처음 처방해주신 의사선생님께 가서 약제를 계속 유지해도 되는지, 앞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