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레지던트들과의 치맥

슬기엄마 2011. 8. 20. 15:33

휴가간 전공의를 대신해서
내 환자를 봐준 레지던트와
병동 대박 드레싱, 중환 keep 하느라 떡치고 있는 인턴 선생님과 함께 점심 때 치맥을 하였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둘 다 모두 나이가 많았다.
내가 동기들보다 8년 나이가 많은데
이들도 만만치 않았다.
난 원래 레지던트들과 벼라별 뒷 담화를 공유하며 친하게 지내는 편인데
올해는 호칭이 교수님이 되어서 그런지 이들은 날 어려워하는 것 같다.
회진돌 때, 일을 지시할 때, 별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하면서 레지던트를 괴롭히는 윗 사람이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부담없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존재의 본질과 무관하게
우리의 관계는 격식이 있어 서먹서먹하다.
그래도 맥주 한잔 정도에 약간의 긴장감은 풀어질 정도로, 자기 얘기를 할 수는 있게 되었다.

내가 편입제도를 통해 연대에 입학하던 당시 의료계에 의전원 논의가 본격화되었고
천편일률적인 의대교육의 한계를 타파할 수 있는 가능성있는 대안이라는 점에 무게를 두고
얼마 후 4+4 제도가 도입되었다.
이제는 제법 나이많은 의대생들이 눈에 띈다.
명문대 공대를 졸업하고 좋은 회사를 다니다가 관두고 의대로 편입, 의전원을 통해 의대에 입학한 학생들이 많다. 나 또한 예과 출신이 아니고 여차저차한 우여곡절끝에 늙은 아줌마 의대생이 된 사람으로서 나처럼 늦게 들어온 의대생들, 나이많은 레지던트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이들을 지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제도 변화만으로 더 나은 내일을 약속하지는 않는다.
이들이 좋은 대학에서 배경학문으로 공부한 재료공학, 생화학, 양자역학 등의 우수한 학점이
예과를 마친 학생보다, 혹은 그것과 무관하게, 의사로서의 삶에 보다 폭넓은 경험과 지식을 제공해주지 않는다. 지금 시스템으로서는 자신의 과거 장점을 살릴 길이 마땅치 않다.
중요한 것은 예과생이든, 4+4로 입학한 의전원 생이든,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선배가 후배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나는 이들에게 어떤 선생님이 되어 본을 보일 것인가
하는 소프트웨어의 본질에 달려있다.
물론 나도 편입한 사람으로서
내가 사회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사회학을 공부하지 않은 의사에 비해 좀더 나은 뭔가를 생산할 수 있는 주체가 되고 싶다. 그것이 나의 입학을 허락해 준 연세의대의 취지에 합당하고, 그 의지에 보답할 수 있는 생산물이 될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의 의과대학 교육과정은 그렇게 성장하기 어렵다.
오히려 평균적으로는 나이가 한두살 많은 것은 젊은 사람들에 비해 여러모로 떨어지는게 병원 생활의 실상이다.

이들은 치맥타임을 통해 조금 속내를 드러내보였다.
과를 정해야 하는 인턴, 내과 내 세부분과를 정해야 하는 2년차 레지던트.
그들에게 좋은 선배가 되어주고 싶다.
치맥 하면서 후배들은 솔직하게 고민을 털어놓고 선배인 나는 이러저러한 제안도 해줄 수 있는 선배.
조금 친해진 기분으로 커피까지 한잔씩 하고 병원으로 돌아왔다.

돌아온지 얼마안되
함께 점심을 먹은 레지던트에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 환자 saturation이 70%인데요, intubation할까요?
우리는 함께 떡치며 환자를 봤다. 조금 친해진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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