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전화하지 마세요

슬기엄마 2011. 8. 12. 21:17

난 명함이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이 블로그를 소개하는 '한쪽가슴으로 사랑하기' 명함인데
메일 주소랑 블로그 주소 정보만 기재되어 있다.
또 하나는 병원 명함인데,
거기는 핸드폰 번호랑 방 사무실 전화번호같은 사적인 정보도 기재되어 있다.
외래에서 첫 만남을 갖는 신환 환자들에게는
블로그 명함을 주고
궁금한거 있으면 들어가서 보라고 한다.
요즘 블로그 명함이 다 떨어져서 병원 명함밖에 없으니 환자들에게 명함을 안 주고 있었다.

진료를 하다가
우울해보이고 힘들어보이는 환자
보호자없이 다니는 할머니인데 이럴땐 어떻게 저럴떈 어떻게 설명해도 잘 못알아 먹을 때,
Cr 높을 때
Heart function 안좋을때
70세 넘었는데 보호자 지지그룹이 약해보일 때
그렇게 불안불안해보이는 환자들에게는 병원명함을 드리면서
힘들 때는 밤에 전화하라고 말씀드린다. 낮에는 전화를 잘 못받으니까 밤에 하시라고.

지난 4월에
항암치료 2번 하고 나서 우울증이 온 젊은 환자가 있었다.
우울하고 힘들 때 전화하라고 명함도 주고
정신과도 연결시켜 드리고
치료 끝나면 다 좋아지는 거라고 격려도 해 드리고
외래도 1주일에 한번씩 방문하게 하면서
나름 정성을 다해 진료했던 조기유방암 환자가
자살을 했었다.
항암치료를 하다가 자살하는 환자들이 1년에 몇명씩 꼭 있다.
그중에서도 조기유방암, 현재 병 없고 치료만 마치면 잘 살 수있는 환자들이
자살을 하게 되면
한동안 환자보는게 무서워지고 자신도 없고 충격에서 헤어나오기 어렵다.
그들에게 어떤 SOS system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나 개인의 힘으로 어떻게 돌파구를 못찾고 있는 수준이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내가 당신을 지지하고 있으니 힘들 때 연락하라고 명함을 드린다.

놀랍게도 명함을 받은 환자들은 거의 전화하지 않는다.
그냥 혼자 고생하면서 응급실도 왔다 가고
나름으로 고생 다 하고 와서 외래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얘기한다.
전화하시지 그랬어요? 하면
뭐 항암치료라는게 그렇죠. 뭐. 괜찮아요. 선생님도 바쁜데요 뭐.

블로그 명함이 떨어졌는데 새로 찍을 시간이 없어서 있는 병원 명함을 드린다.
'전화하지는 마시구요 거기 블로그 주소로 들어와서 유방암 공부하세요.
 궁금한거 있으면 메일 보내시구요'
그러면 환자들은 빵터진다.
명함 줘서 고맙다고.
자기도 열심히 치료받겠다고 결심을 밝히고 나간다.
정신과 면담도 하겠다고.

종양내과 코디네이터도 있고 외래 전화상담 번호도 있다.
그런 번호들은 공식적으로 환자들이 전화해서 다이렉트로 상담받을 수 있는 전화들이다.
환자들은 그 전화를 많이 이용한다. 나에게 전화 안하고.

환자들에게는 여러 모로 지지자가 필요하다.
항암치료는 정말 힘들고
암을 치료받는 과정은 여러 모로 힘들다.
오늘 100명이 넘는 환자를 봤지만 그들을 다 진료하고 나면 오히려 지치지 않는다.
삶은 투쟁의 연속이다.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이게 내 일이니까
나도 이들을 이렇게 진료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걸 감사히 여기고
프로답게 진료하는 의사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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