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손주보니까 우울증약 안먹어도 잠이 잘 와

68세 할머니. 유방암 수술 후 2기말로 진단받으셨다. 수술 --> 항암치료 8번 --> 방사선치료 한달반 --> 허셉틴 1년 호르몬 5년의 치료일정을 진행중이시다. 이 풀코스를 다 견디시기 힘들거라 생각했는데 할머니는 혼자 병원 다니고 항암치료 하면서도 꿋꿋하게 온갖 부작용을 견뎌내셨다. 댁이 경기도 남쪽이신데, 매일 방사선치료도 왔다갔다 하면서 받으셨다. 그리고 지금은 허셉틴을 반년정도 하신 상태. 연세가 있으셔서 그런지 호르몬 치료에 대한 부작용은 별로 없으시다. 거의 모범환자 수준이셨다. 늘 혼자 병원에 오시던 할머니가 따님과 함께 오셨다. 처음 뵙는 따님 표정에는 걱정과 불안 가득. 할머니도 더이상 예전처럼 자신 만만하고 용감씩씩한 표정이 아니다. "오늘은 두분이 같이 오셨네요. 따님은 첨 뵙는..

외래 대기실 풍경

제일 많이 하는 얘기 : 먹는 얘기 그거 먹어봤수? 지난 주 생로병사 봤어? 브로컬리가 그렇게 몸에 좋대. 그거 말고 무슨 무슨 음식이 면역력 올리는데는 그만이래. 닭발 먹으면 백혈구 수치 않떨어진대. 누가 그거 먹고 병원에서 치료포기했는데 지금 완치됬대. 홍삼은 도대체 먹어도 되는거야 안되는거야? 이수현선생님이 블루베리는 먹어도 된다고 했대. 그 다음으로 많이 하는 얘기 : 부작용 관리법 손발 저린데는 뭐뭐뭐 하면 좋아. 호르몬제 그거 먹는거 너무 힘들지 않아? 아주 짜증나 죽겠어. 항암제 맞고 속 않좋을 때는 이렇게 하면 좀 덜하대. 피부 까매지니까 밖에 나갈 때 꼭 화장해야 되. 뼈주사 맞으면 그날 밤은 왜 그렇게 힘들어? 그래? 나는 괜찮던데... 백혈구 촉진제 그거 안맞으면 안되나? 나는 자꾸 ..

동료와의 대화

우리과 강사선생님과 점심을 먹었다. 어떻게 지내는지 서로 간략보고. 레지던트들 얘기. 과 돌아가는 얘기. 우리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 하는 얘기. 그런 얘기를 나누다가 유방암 치료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수술 전 유방암 환자에 대한 임상연구를 계획한다면 어떤 약제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지 그런 약제에 대한 선행 연구는 어느 정도 되어 있는지 나라면 어떤 약제 조합으로, 어떤 기전에 입각해서 근거있는 연구가 가능할 것인지 그런 얘기를 하다가 그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연다. 그는 수많은 신약들이 개발되어 있고 유방암은 그런 신약개발의 선두주자 역할을 해 오고 있는데 매일 쏟아져 나오는 동물실험, 1상연구, 2상연구의 결과들 가운데 과연 연구자의 선택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단지 자신의 연구적 관심을 ..

장기입원 할머니

70살을 넘기신 할머니. 내가 할머니를 처음 만났던 지난 7월에는 할머니 몸집이 좋으셨다. 그런데 그때는 통증도 심하고 요로감염이 겹쳐있어 열도 나고 컨디션이 아주 않좋으셨다. 오래된 당뇨로 자꾸 요로감염이 오시는 것 같았다. 그렇게 열이 나고 힘들고 혈당 조절도 안되는 상태에서 나는 할머니를 처음 만났다. PET-CT를 찍으니 난소암이 재발한 상태. 주요 장기는 아직 괜찮고 목 주위, 사타구니 주위 림프절에 주로 재발이 되어 있으며 일부 허리, 골반뼈에 전이가 확인되었다. 아직 쓸만한 항암제가 남아있고 난소암은 항암제에 반응하여 치료가 잘 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나는 할머니 연세가 좀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항암치료를 해봐야겠다는 욕심을 버릴 수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요로감염. 일단 열이 떨어지고..

학생들은 과연...

본과 2학년. 순수한 때다. 예과 때 막무가내로 놀던 습성을 벗어던지고 빡세게 공부하는 걸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2학년. 갑작스럽게 생활 패턴이 바뀌어 여러모로 힘들어하던 1학년 때와는 달리 이제 공부하는 것도 제법 틀이 잡히고 의학적인 지식도 꽤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게 말랑말랑한 뇌를 가진 2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하여 '나쁜 소식 전하기'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게 되었다. 다음주 금요일. 나는 실재로 지금 내가 진료하는 환자의 사례를 약간 변형하여 토론 케이스를 준비하였다. 엑스레이, CT, 피검사, 지금 쓰고 있는 약.... 환자의 질병 경과에 대해 의사의 입장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와 의사로서 암환자를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가 하는 원칙에 맞추어서 사례를 준비하였다. 그런데 의학적 상태와 독립..

의사의 블로그 글쓰기와 환자의 프라이버시

블러그를 처음 만들 때부터 누군가가 지적했었다. 의사가 쓰는 병이야기, 환자이야기라면 결국 그 이야기의 대상이 되는 환자가 있다는 소리인데, 정작 그 대상이 자신을 소재로 글 쓰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개인의 사생활 침해가 될 수 있다. 나에게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할거냐고 물었었다. 아~~~ 복잡한 문제, 그런거 생각해 본 적 없는데... 그냥 솔직하게 쓰면 되지 뭐. 내 수준은 그정도. 외래진료를 하면서 환자들의 외모, 몸짓, 선택하는 단어 그런 한 찰나와 같은 순간에 나는 뭔가의 이야기거리를 엮어낸다. 그 이야기는 그 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몇번 두고두고 생각해보고 산에 오를 때 밥을 먹을 때 그럴 때 몇번 곱씹어 생각해본다. 그 찰나는 어떤 의미로 엮여지는 것일까? 원칙대로 하면 그렇게 이야기..

입원환자 명단을 보며 드는 생각

명단을 보니 특별히 검사나 항암치료 하지 않고 그냥 있는 분들이 좀 계시네… 3차 의료기관에 입원을 한다는 것은 외래에서 진료가 진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환자 상태가 복잡할 때 입원을 통해 훨씬 빠르고 효율적인 루트가 가능할 때 외래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과 저 과를 돌아다니며 진료를 받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상태가 않좋을 때 정도이다. 대개의 진료수익성은 외래에서 필요한 검사를 다하고 입원을 해서는 수술이나 단기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퇴원하는 것이 3차 의료기관의 운영방침 상 유리하다. 병상회전율, 턴오버가 빨리 되어야 하는 것이다. 환자를 위해서도 단기 입원, 조기 퇴원이 갖는 장점이 많다. 그러나 병원 입장에서는 수익성을 고려하여 외래 중심의 진료를 선호하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보험회사

난 보험회사에서 직원이 외래에 와서 소견서나 진단서를 요청하면 기분이 별로 않 좋아진다. 내가 과민하게 반응하는 걸까? 물론 환자에게는 내색안한다. 환자는 어떻게든 혜택을 봐야 하니까. 기분이 안 좋은 이유 1. 진단서를 쓰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다음 환자의 진료가 지연된다. 보험회사마다 요청하는 항목이 다르다. 중심정맥삽입술을 한 날짜를 정확히 기입하라 외래 내원한 날짜나 입원 날짜를 일일히 다 기록하라 (통원치료확인서, 입퇴원확인서 이렇게 사실을 확인하는 기록지로 대체하지 않고 직접 날짜를 쓰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차트를 다 열어봐야 한다. 외래 컴퓨터가 다소 느리기 때문에 차트 열고 닫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귀찮지만 환자를 위해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걸 날짜 확인하고 일일히 기록하는 ..

환자의 전시회

아직 30이 안된 나이. 미술공부하러 유학까지 다녀왔다. 귀국해서 이미 전시회도 한번 열어 정식으로 데뷔를 한 상태이다. 이제 막 한국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계획하고 있는데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1기. 종양의 크기가 1cm도 되지 않는 조기유방암이다. 아직까지 0.5cm- 1cm 정도되는 작은 크기의 유방암에서 항암치료를 할 것이냐의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핫 이슈이다. 즉 위험도가 높지 않은데 과도한 항암치료가 환자에게 해를 줄 수도 있다는 주장, 아니면 유방암의 장기적인 경과를 고려했을 때 항암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여전히 수많은 임상연구를 통해 적절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한번에 3000불이 넘는 유전자검사를 통해 위험도를 예측하려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일곱자리 숫자들

우리병원 환자 ID는 일곱자리 숫자로 되어 있다. 일주일 동안 외래를 보면서 뭔가 더 고민이 필요한 환자는 수첩에 환자 ID를 적어둔다. 뭐를 더 고민하려고 했는지 그때그때 메모를 해놔야 하는데, 외래 중에는 시간이 없어서 ID 만 적는 경우가 많다. 주말에는 그런 번호를 모아서 다시 EMR로 환자 리뷰를 한다. 전자메일로 원내 다른 과 선생님들에게 메일도 보내놓고 EMR도 다시 정리하고. 그리고 해결되면 번호를 지운다. 때론 뭐가 문제라고 생각했는지 그게 생각이 잘 안날 때도 있다. 그러면 EMR에 메모를 추가로 해 둔다. 다음번 외래 때 환자랑 상의해야 하니까. 큰일이다. 기억력의 쇠퇴. 그렇게 환자 리뷰를 다시 하다보면 몇가지 대목에서 감동을 받는다. 감동1. 메일을 보내면 선생님들이 답장을 잘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