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김치

그녀는 유방암 수술 후 3년만에 폐로 전이가 되었다. 폐로 전이된 병변을 확인하기 위해 조직검사를 했었는데 그때는 폐 병변이 작았다. 그런데 그 때 무슨 연유에서 였는지 치료를 받지 않고 퇴원하였다. 그 뒤로 우리 병원에 안 오셨다. 그 후 1년이 넘게 시간이 지났는데 자꾸 기침하는 증상이 생겨서 다시 병원에 오셨다. 그리고 다시 찍은 CT에서 폐전이가 진행된 것이 명확하여 추가적인 조직검사 없이 나에게 협진 의뢰가 되었다. 환자에게 아주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하는 임상연구가 있어서 설명을 드렸는데 무조건 하지 않으시겠다고 했다. 그리고 항암치료도 받지 않으시려고 했다. 나는 설득에 설득을 거듭하여 겨우 승낙(!)을 받고 일반 항암치료를 시작하였다. 매번 단순 폐 엑스레이만 찍어도 병이 호전되고 있음을 ..

용감한 청춘의 주인공을 만나다

지난 8월에 환자 엄마만 만났었다. 집이 저 멀리 남쪽 지방에 있어 병원 왔다갔다 하는데 시간 많이 걸린다. 일본 유학 준비로 바쁜 환자는 검사만 해놓고 결과는 엄마에게 확인시킨다. 자기는 자기 할일 하느라 바쁘단다. 뇌에도 뼈에도 폐에도 전이가 되어 있는 상태이고 오늘 찍은 PET-CT에서도 아직 병이 남아 있다. 다만 1년 넘는 시간 동안 병이 더 이상 진행하지 않고 멈춰있다. 항암치료 중에도 일본으로 배낭여행가고 척추 전이가 있는데도 겨울이면 스노우 보드를 타고 다녔다는 그. 유학가기전에 얼굴이라도 봐야 할 것 같아 오늘 꼭 보기로 했다. 고2때 처음 배아상피암이라는 희귀한 암을 진단받은 그. 진단 받은 후 항암치료 받느라 2년 가까이 공부 하나도 못하고 수능을 봤다. 치료 중에도 병은 계속 진행하..

수술 후 HER2 양성 유방암을 진단받으신 분께

수술을 하면 조직검사 결과에서 HER2 양성 여부를 검사하게 됩니다. HER2 양성 여부에 따라 수술 후 항암약제를 결정할 때 표적치료를 추가로 할 것인지 말것인지를 결정하기 때문에 HER2 검사는 매우 중요합니다. 간단한 검사결과로 양성이 진단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비싼 유전자 검사를 추가로 해야만 양성인지 여부가 정확하게 진단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현재 HER2 양성 유방암 환자 중 겨드랑이 림프절 양성이거나 유방암의 크기가 1cm이 넘을 때 표적치료제인 허셉틴을 1년간 투여하는 것이 재발율을 낮추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여러 차례 대규모 임상연구로 입증되어 2009년 9월부터 우리나라에서 보험으로 치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2월 중순부터 새로운 임상연구가 개시됩니다. HER2 양성인 환자에서 ..

닥치고 진료

좋게 보면 문제의식이 날카롭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고 나쁘게 보면 쓸데없이 예민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난 평소 주위 상황을 분석적으로 살피는 편이라 일상적으로 마음이 별로 편지 않고 뭔가를 궁싯거리며 지낸다. 좋은게 좋은거니까 물 흐르는 대로 아둥바둥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살아야 한다고 마음을 고쳐먹지만 실상 성격머리는 예민한 편에 속한다. 그래서 분노도 많고 욱하기도 잘 하고 그만큼 반성할 일도 많다. 나와 달리 그는 뚝심있고 별로 말도 없고 한번 뜻을 정하면 흔들림없고 한결같이 그 길을 간다. 무쇠같다. 냉철하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다. 정도를 지키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시한다. 원칙에 어긋나는 걸 혐오한다. 그렇다고 아주 현실성이 떨어지는 샌님은 아닌 것 같다. 여러모로 내가 갖추지 못한 미..

미국식 토요일 진료

토요일 진료는 일반진료라 유방암 환자 뿐만 아니라 다른 교수님 환자들도 본다. 응급실 갈 정도는 아닌데 뭔가 불편한 증상이 생겨서, 약이 떨어져서, 수액을 맞으려고, 직장인인데 토요일밖에 시간이 안되서, 기타 등등의 이유로 오신다. 혈관 육종으로 수술한지 7년이 지난 29세 여자 환자. 2004년 기록을 보니 무시무시한 혈관 수술을 했다. 중환자실에도 오래 계셨다. 지금은 완치되었다. 육종은 병의 특성상 이렇게 오랫동안 재발하지 않으면 재발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녀는 속도 자꾸 더부룩하고, 유방에서도 뭔가 만져지는 것 같고, 몸도 붓는 것 같고, 쉽게 피곤하고, 뭔가 비특이적인 증상이 생겨서 불안해서 지난 주 중에 내 외래에 오셨다. 그날 각종 검사를 다 하고 오늘 결과를 보러 오셨다. 유방..

되로 주고 말로 받았어요

항암치료 8번이 무사히 넘어가는 것 같다. 오늘 그 마지막 항암치료를 받고 가셨다. 환자의 피부는 나보다 백만배 좋다. 항상 단정하고 예쁘게 화장하고 외래에 오는 그녀. 가끔은 동생과 가끔은 남편과 함께 외래에 오신다. 초콜렛을 좋아한다고 남편이 슬쩍 흘려준 이야기가 기억나서 초콜렛 한개를 드렸다. 그리고 몇일 있다가 열이 나서 한번 입원하였다. 다행히 합병증없이 항생제 치료, 백혈구 촉진제를 맞고 금방 퇴원하셨다. 내가 드린 초콜렛 때문에 열이 났나? 오늘 남편이 왕으로 큰 초콜렛 한봉지를 선물해 주고 가셨다. 남편은 살갑게 구는 다정한 스타일도 아닌 것 같다. 그냥 주고 가셨다. 커피랑 초콜렛. 그 마음이 더 정겹다. 사진이 좋아지면 축하한다고 컨디션이 좀 않좋은거 같으면 힘내시라고 초콜렛을 한개씩 ..

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환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

항호르몬 치료제에 신약을 더한 임상연구에 참여했던 70대 할머니. 내가 보기에 할머니는 신약을 병용요법으로 투여하여 톡톡히 도움을 받으셨다고 생각된다. 항암치료를 하기에는 초반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다. 연세도 꽤 많으시다. 그러나 항호르몬제 단독으로 치료하기에 재발된 초반의 병변은 다소 험악하였다. 그렇게 험악했던 재발부위가 이제 거의 흔적만 남아있다. 치료 후반부로 올수록 병합한 신약의 독성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 그 약은 중단하고 항호르몬제만 유지하고 계신다. 임상연구로 치료한지 2년이 지났다. 국제적 규모의 임상연구라 항호르몬제도 계속 지원이 되고 있다. 2달에 한번 찍는 CT도 비용이 제공되고 있다. 임상약을 빼고 투여하더라도 치료적 지원이 계속 되도록 본사와 여러 차례 나의 의견을 문서로 전..

복습하는 환자 - 모범환자 6호

환자에게 설명을 할 때 진료실 메모지에 그림을 그린다. 동그랗게 유방암 세포를 그리고 핵과 세포 표면에 ER PR HER2를 그려서 +, - 그런 기호에 따라 유방암 성질이 다르다는 둥 3주 간격으로 백혈구 수치가 떨어졌다가 회복되기를 반복한다는 그래프를 그리기도 하고 전이된 곳이 어딘지 그림으로 그릴 때가 있다. 별로 정돈되지 않은 글씨체로 찍찍 갈겨쓰고 그림도 사실 대충 그리는 셈이다. 설명을 마치고 나면 그 설명 용지를 달라고 하여 가지고 가는 환자들이 있다. 그럴 때면 늘, 아~~~글씨좀 잘 쓸걸... 하면서도 설명에 몰입하기 때문에 그림이나 글씨는 엉망이다. 지난주에 항암치료를 시작한 환자가 외래에 왔길래 수첩검사를 하였다. 아침 저녁 체온도 재고 계시고 새로 발생한 증상도 적어 두었고 (평소 ..

기분 좋을 때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바로 입원한 환자. 폐렴 뿐만 아니라 패혈증, 급격한 신장기능저하, 부정맥, 혈액 응고수치이상, 전해질이상 등 온갖 합병증이 동반되어 조마조마 중환자실에서 치료하다가 다행히 조금씩 호전되어 엊그제 일반 병실로 옮겼다. 수술 후 항암치료를 3번 받고 나서 생긴 일이다. 곱고 예쁜 분이었는데 엄청 고생하셨다. 온갖 라인이 주렁주렁, 소변줄 끼운 상태에서 설사하느라 화장실 다니기도 힘들고. 암튼 고생 많이 하고 계신다. 많이 좋아지고 있는데 열이 하루 세번 비정기적으로 치솟는다. 균 때문인지 약 때문인지 다른 요인 때문인지 감별이 어려운 상태에서 감염내과의 답변을 기다릴 시간이 없어 고심끝에 그냥 내가 항생제를 바꾸었다. 아침에 항생제를 바꾸었는데 저녁에 열이 또 났다. 하루는 더 지켜보..

겉으로는 쿨 해 보였던 그녀

수술 후 금방 재발하였다. 현재 계속 재발 중이다. 처음 항암제로 4주기까지 약효가 유지되었던 것이 치료 효과의 전부다. 피부로 재발한다. 뽀글뽀글 병이 피부를 뚫고 올라온다. 항암제를 바꿔서 치료를 하고 있는 중에도 항암제에 굴하지 않고 계속 진행하고 있다. 나보다 나이가 약간 많은 그녀. 중립적인 표정으로 객관적인 표정으로 선생님 이번에는 이쪽으로 병이 나오고 있어요. 이쪽 피부가 좀 더 빨게 진것 같아요. 그렇게 나에게 보고해준다. 굳이 CT를 찍지 않아도 약효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매번 외래에서 윗옷을 걷어 붙이고 병변 주위를 샅샅이 살핀다. 마음 속으로 한숨 가득. 내가 낙심한 표정을 지어도 그녀의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좋은 약으로 치료해주세요. 그저 날 기다린다. 아바스틴은 우리나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