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에 환자 엄마만 만났었다.
집이 저 멀리 남쪽 지방에 있어
병원 왔다갔다 하는데 시간 많이 걸린다.
일본 유학 준비로 바쁜 환자는 검사만 해놓고 결과는 엄마에게 확인시킨다. 자기는 자기 할일 하느라 바쁘단다.
뇌에도
뼈에도
폐에도
전이가 되어 있는 상태이고
오늘 찍은 PET-CT에서도 아직 병이 남아 있다.
다만 1년 넘는 시간 동안 병이 더 이상 진행하지 않고 멈춰있다.
항암치료 중에도 일본으로 배낭여행가고
척추 전이가 있는데도 겨울이면 스노우 보드를 타고 다녔다는 그.
유학가기전에 얼굴이라도 봐야 할 것 같아 오늘 꼭 보기로 했다.
고2때 처음 배아상피암이라는 희귀한 암을 진단받은 그.
진단 받은 후 항암치료 받느라 2년 가까이 공부 하나도 못하고 수능을 봤다.
치료 중에도 병은 계속 진행하고 뇌수술하고 척추에 방사선치료하고 이식하고 별별 치료를 다 받는 중에 수능을 봤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자기 또래 아이들이 밟는 과정을 다 밟고 싶었고
대학 생활도 해 보고 싶었단다.
전문대학에 합격했다.
일본 유학도
사실 오늘 한 검사 결과에 따라 진짜 갈 수 있을지 여부가 결정되고
3개월에 한번씩 하는 검사도 6개월에 한번 해도 될지를 판가름 하기로 했었다.
다행히 오늘 한 뇌 MRI도 괜찮고, PET-CT에서도 전신적인 병의 변화가 없이 안정적이다.
6개월 후 다시 검사하기로 했다.
아직 학교를 정한 것도
전공을 정확히 결정한 것도 아니다.
다만 그는 그의 미래를 위해 도전하려고 한다.
젊음의 특권.
두려움없는 미래를 향한 도전.
그는 자신에 대한 나의 관심이 부담스러운 것 같다.
정작 자기 스스로에 대한 그의 평가는 냉철하다.
별로 열심히 살지 못했다고
그래서 후회가 많다고
남에게 내세울만한 거 없다고
그래서 아직 결정된 것은 없지만
새롭게 출발하고, 열심히 살고 싶다고 한다.
젊음을 걸고 열심히 살고 싶다고.
아직 미래가 결정되지 않아
걱정도 많고
용기 백배도 아닌
그냥 평범한 젊은이 그 자체다.
엄마는 말한다.
전이가 되고
치료가 어려웠지만
한번도 포기하거나 절망한 적 없다고.
항암치료 중에도 가족끼리 즐거운 일 많았다고.
그런데 그런 엄마와 아들 주위의 시선은
오히려 그들을 격리하는, 거리를 두는 것 같아 그게 부담스러웠다고.
암환자라면 뭔가 더 힘들어해야 할 것 같고, 즐거워하면 안될 것 같은 타인의 시선이 힘들었다고 한다.
뇌 수술한 자리에서 머리카락이 나지 않아 그는 그냥 맨머리로 다닌다.
지금의 자신 모습 그대로 인정한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다 해보고 싶어요.'
용감하고도 쿨한 나의 젊은 환자.
감히 난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괜찮을 거라고 믿는다.
뭐든 그를 위해 해 주고 싶었다. 내가 뭐 해줄게 없을까 물었더니 그는 씩 웃으며
학교 오늘 결석했으니 결석한 이유를 증명할 수 있는 진단서나 한장 써달라며 진료실을 나간다.
내가 그에게 부탁한다.
내 딸 슬기는 중 2인데 혼자 일본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다음 외래 때는 슬기를 위해 따끈따끈한 일본 정보 많이 가지고 와 달라고 부탁했다.
* 용감한 청춘에 대한 글은 지난 8월말에 작성한 바 있습니다. 글 목록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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