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 좀 다셔보려고
뭣 좀 먹으려고만 하면
그거 몸에 않좋다 암치료 받고 그렇게 나쁜 음식 먹으면 안된다
이거 먹으면 면역이 좋아진다니 한번 먹어봐라
떡볶이 한개만 집어먹어도
커피 한 잔 마시려고 해도
생크림 케익 한 조각 먹으려고 해도
주위에서 난리입니다.
암환자는 그런 거 먹으면 안된다고.
우리나라에는 왜 이리 몸에 좋은 음식이 많은지, 주위에서 이것저것 선물해주고, 좋다는 음식 알려주고, 아주 관심들이 지대합니다.
그런데 정작 나는 그런 관심을 받으면
나에게 신경을 써주는구나 고맙다 그런 생각이 들기보다는
다들 왜 이렇게 나를 특별대접 하는거야?
자기 일 아니니까 너무 쉽게 말하는거 아니야?
그들이 던지는 한두마디의 격려조차 짜증이 납니다.
가족도
직장 내 동료도
나에게 동정의 눈빛을 보내는거 같고
괜히 내 눈치 보는거 같고
내 일상에서의 능력은 암 진단받기 이전보다 훨씬 더 떨어지는 것 같아 위축되는데
내 눈에도 내 결함이 눈에 보이는데
그런 나에게 아무도 뭐라 지적도 안 하고
특별대접받고 있다는게 부담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정작 나는 내 일을 제대로 못 해 내고 있다는 생각에 움츠러들고 있습니다.
항암제 때문일까, 인지 능력도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기억력도 나빠지고 일처리에 명민하지 않습니다.
정서적으로도 취약해져서 자꾸 짜증이 나고, 울분이 솟구치고, 세상에 나 홀로 외로이 있는 것 같고,
내 편은 아무도 없는 것 같고...
힘든 치료를 다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돌아온 일상은 왠지 예전같지 않고 힘이 듭니다.
그것이 우리의 일상입니다.
인간 관계도 생각보다 쿨 하지 않고
나의 능력에는 늘 한계가 보이고
자꾸 어긋나고
진심이 제대로 전달되지도 않고
그래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 바로 구질구질한 우리의 일상입니다.
지금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권하지만은 않겠습니다.
다만 '직면'하여 맞닥뜨리는 것이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때론 용기백배, 때론 좌절, 그렇게 좌충우돌 하는 것이 우리의 삶 아닐까요?
다만 우리에게는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나만의 내면세계를 갖는 탈출구가 필요합니다.
그 탈출구는
절친한 친구와의 수다일 수도 있겠고,
한권씩 차근차근 책을 사서 읽고 기록하는 나만의 독서일기가 될 수도 있겠고,
혼자 고즈넉히 즐기는 티 타임이나 등산, 산책 등 취미생활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탈출구를 만들어 놓고
마음이 답답하고 갈등이 많아지면 그리로 도망가세요.
그곳에는
당위와 의무감, 딱딱한 원칙들이 아닌
적당히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이 함께 하는 공간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나만이 도망갈 수 있는 탈출구를 만들어 놓았다면
자, 이제 이 구질구질한 일상, 내가 치료받으면서 그렇게도 그리워했던 일상으로 복귀하는 겁니다.
잘 하실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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