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병원에서
유방암을 진단받고,
항암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나를 처음 만나는 환자들은 대략 공부를 많이 하고 온다.
인터넷도 찾아보고 아는 사람들한테 얘기도 듣고 해서
대략 각오를 하고 오시는 것 같다.
그래서 왠만하면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이미 말라버린 걸까?...
마음속으로 눈물을 꾹국 참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쭈욱 설명을 하면 고이는 눈물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시는 것도 알고 있다. 난그냥 모른척 한다.
그런데
오늘
줄줄 흐르는 눈물을 감당하지 못한 채
내 설명을 제대로 듣지도 못하고 울기만 하는 환자분이 있었다.
지병이 없어서 병원이라고는 처음인데
암이라는 엄청난 병을 진단받고 경황이 없으신가보다.
겨드랑이 림프절 양성, 종양크기는 대략 2cm, 충분히 좋은 결과를 기대해볼만하다.
10분이면 항암제 주입 끝나는데
치료를 시작하지 않고 입원하시기로 했다.
그냥 무작정 항암치료 하면 안될거 같았다.
심리적 충격이 큰 상태에서 의학적인 이유로만 항암치료를 시작하면 안될거 같았다.
요행히 당일 입원이 가능하셔서 오전에 외래보고 오후에 입원하셨다.
오후에 병동을 찾았다.
사진을 보여드리려고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본인 사진 볼 수 있겠어요?
보시겠다고 한다.
유방에만 병이 있는 줄 알았는데, 0.6cm 겨드랑이 림프절이 발견되었고, 세포검사에서 악성세포가 발견되었다. 병기는 그리 높지 않을 것 같고 종양의 생물학적 특징도 그리 공격적인 타입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가벼운데 환자는 눈물이 줄줄.
따로 면담을 하였다.
마음이 약해지신것 같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렇지만 사실적인 정보를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가족이 아무도 동석하지 않았다는게 좀 걸렸다.
최초 설명시에 가족이 함께 설명을 듣는게 좋은데...
그게 환자나 가족에게 도움이 되는데....
그래도 그냥 했다.
설명 내내 눈물 지으시던 환자, 내 설명이 끝나니 더 이상 울지 않으신다.
그럼 내일 항암치료 해도 괜찮으시겠어요?
네.
잘 하실 수 있죠?
네.
더 궁금하신 거 있어요?
아니오.
제 설명 잘 기억했다가 내일 아침에 또 질문하셔요.
인생은 내 것이고, 항암치료 내가 받는 것이고,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어요. 마음 단단히 먹고 치료합시다.
네.
환자는 50대 초반.
내가 이렇게 말씀드릴 군번이 되나? 좀더 공손하게 했어야 했나?
나쁜 소식 전하기
종양내과의사는 매일 환자들에게 나쁜 소식을 전하는게 일이다.
내가 소모되지 않고 성의를 다하는 노하우를 획득하는게 관건이다.
환자에게 sympathy가 아니라 empathy를 줄 수 있으려면
나도 지금보다 더 strong 해질 필요가 있다.
난
그래도
이 환자가 눈물을 거두었다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문제 생기면 선생님이랑 상의할께요.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사시다가
병원이라는 곳, 의사라는 사람과 소통하려니 어려움이 많으시겠지. 문제가 생기면 나랑 상의하겠다고 말씀해주시니 감사하다. 이제 좀 학습이 되신것 같다. 보람있다.
그런데
솔직히 매일 이렇게 몇명씩 면담하고 나면
나도 기운이 후달린다.
그래서 내가 소모되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치맥을 매일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 조기유방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상으로 복귀하라 그 구질구질한 일상으로! (2) | 2011.10.31 |
---|---|
목욕탕 가도 되요? (2) | 2011.10.28 |
유전성 유방암을 가진 엄마가... (0) | 2011.10.18 |
손주보니까 우울증약 안먹어도 잠이 잘 와 (2) | 2011.10.10 |
환자의 전시회 (6) | 2011.1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