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아흔이 넘은 우리 엄마도 정정하신데

슬기엄마 2013. 3. 5. 21:27

 

전이성 유방암을 진단받으신 62세 여자 환자.

최초 항암치료에 반응이 아주 좋았는데

어느 순간 저항성이 생겼는지

다시 유방의 혹이 커지기 시작하였다.

원칙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전이성 유방암임에도 불구하고 유방에 대한 수술을 하셨다.

여전히 뼈에 병이 남아있지만 그만그만하게 병이 잘 조절되고 있다.

그렇게 지내신지 어언 1년이 지나가고 있다.

 

이 사람이 너무 무리하는 거 같아요.

 

함께 외래에 다니시는 남편이 걱정어린 한마디 말씀을 하신다.

 

제가 암환자인지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아요.

 

그게 좋은 거에요. 계속 그렇게 사세요.

근데 혈당이 좀 높은 거 같아요.

혈당 조절 잘 하시는게 좋아요. 우리 병을 조절하는 데에도 혈당조절이 중요해요.

 

요즘 들어 소화가 잘 안되는거 같아요.

아흔이 넘은 우리 엄마보다 소화력이 떨어지는거 같아요.

 

기계가 낡아서 그래요. ㅎㅎ

엄마를 본받으세요. ㅎㅎ

 

그러게요. 엄마보다 내가 더 골골거리는 거 같아요.

 

콜레스테롤도 올라가는거 같아요. 신경 좀 써야 겠어요.

 

아유, 난 왜 이렇게 비실비실하죠? 운동을 게을리 해서 그런가봐요.

 

맞아요. 운동 열심히 하는게 만병 퇴치의 지름길이에요. 우리 환자분 기계가 엄마 기계보다 더 낡은 거 같아요.

 

우리 엄마는 아직도 정정하신데, 이제 60을 갓 넘긴 내가 훨씬 더 비실비실해요.

앞으로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조절하는 거에 좀 신경 좀 써야겠어요.

 

 

병원에 항암치료 하러 오면서 환자는 남편이 운전해 주는 차에서 내내 졸다 오셨다. 외래에 들어서시는데 졸다 깨서 오셔서 정신이 없으시다.

긴장감이 없다.

그녀에게 항암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병원 일정은 큰 부담이 아니다. 의사라 오라고 하니까 와서 주는 약 맞고 가시는 형국이다. 항암치료 평가 사진을 찍어도 별 부담을 안 느끼신다. 그만큼 안정적인 병변으로 잘 유지되고 있기 떄문이다. 그녀에게 지금의 치료가 참 잘 맞는 것 같다. 그것은 나의 탁월한 선택이 아니라, 가이드라인에 맞게 치료한 것일 뿐이다. 환자 컨디션이 좋으면 난 순식간에 명의가 된다.

 

전이성 유방암 환자가

별로 힘들지 않게 병원 다니며

당신 나이 또래 일반 환자들처럼 혈당 걱정, 콜레스테롤 걱정, 헐압 걱정을 하면서

별로 아픈 곳 없는 자기 몸을 탓하며

고민하신다.

그녀의 그런 고민이 행복해 보인다.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에요.

 

그럼요, 선생님 고마워요.

 

제가 한거 없어요.

그냥 지금 치료에 약이 잘 맞는 거 같아요.

약에 감사해야죠.

 

같은 약으로 치료해도

그녀처럼 편하게 아무일 없이 잘 지내시는 분이 있고

같은 약으로 치료해도

힘들고 고달프고 약의 각종 부작용으로 고생하는 분이 있다.

 

의학적으로 약제 반응성, 민감성의 차이를 갖게 되는 것에는 유전자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차이가 있다면 그 다음 치료 전략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 것인가? 아쉽게도 아직 그 답에 대해서는 많은 것이 증명되어 있지 않다.

 

전이성 유방암이라도

편하게 치료받고

약의 독성으로 고생하지 않고

내가 암환자라는 사실을 잊고 지낼 수 있을 정도로 컨디션이 유지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좋은 약을 개발한 연구자에게 감사할 뿐이다.

 

내가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구구절절 병의 경과와 예후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도, 환자가 의학적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돕지 않아도

 

병만 잘 조절되면

환자는 나에게 더 이상의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내가 좀 퉁명스러워도, 내가 좀 설명을 안해줘도, 외래에서 별 말을 안해도, 환자는 불만이 없다.

 

병의 병태생리에 맞는 약을 잘 쓰고, 그 약이 잘 들으면

너무나도 많은 소소한 문제들이 힘들지 않게 해결된다.

의료사회학을 공부한 나로서 생물학적 원리와 치료 원칙에 무릎을 꿇는 순간이다.

그래도 괜찮다.

 

환자는 게으르고 경각심없는 태도로 항암제를 맞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아흔이 넘는 엄마처럼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그녀의 바램이 꼭 이루어 질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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