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몸무게가 늘지 않는 할머니

슬기엄마 2013. 3. 14. 06:04


한달 사이에 몸무게가 8kg 이나 줄었다.

재발한 유방암이 표준 치료에 별로 반응하지 않고 나빠지기만 할 때도 

할머니는 몸무게가 줄지 않았었다.

벌겋게 부은 유방에서 진물이 나서 꽤 오랜 기간 방사선 치료를 할 때도 

할머니 컨디션은 좋았다.

몇가지 표준 치료 약제의 실패 이후, 임상연구로 치료를 시작한지 8개월, 처음으로 할머니 병이 좋아지고 있는 참이다.

CT 상으로 보이는 병은 많아 좋아졌다. 객관적인 지표상 드물게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최근 몸무게가 급격히 감소하였다.

70이 다 된 노인이 한달 사이에 몸무게가 8kg 이나 빠지니 

당연히 기운이 없다.

기운이 없으니 기분도 울적하다.

병이 나빠지고 유방에서 진물이 흘러 매일 옷을 적셔도 

우울해하지 않고 열심히 치료받던 할머니가 요즘은 치료의 의욕도 없고 힘들어하신다.


4기 암환자에서 몸무게 감소는 유방암 치료가 잘 되지 않을 때 나타나는 싸인일 때가 있어서 영 신경이 쓰인다. 

왜 몸무게가 줄고 있을까?

최근 CT를 다시 리뷰해 본다. 피검사 결과도 챙겨본다. 

갑상선 호르몬 검사와 코티졸 검사도 해 보았지만 괜찮다.



아무래도 원인은 할아버지 때문인 것 같다.

항상 병원을 함께 다니고, 할머니 유방 상처 드레싱도 할아버지가 해 주셨다. 할아버지는 상처전문 간호사에게 교육을 받아 당신이 할머니 상처 치료를 담당하셨다.

매번 외래에는 종이쪽지에 필요한 약을 적어오셨다. 

그리고 외래에 오시면 지난 3주 동안 있었던 소소한 일을 상세히 보고해 주셨다.

내가 할머니에게 경과를 질문하고 할머니가 답을 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며 할머니가 틀리게 답하는 걸 보면 꼬장꼬장하게 참견하며 그게 아니라 사실은 이런 거라고 다시 설명해주셨다.

항암제를 맞고 설사를 하면 약 먹는 시간을 꼬박꼬박 맞춰서 로페라마이드를 챙겨주셨다. 

내가 지시한 대로 약을 드실 수 있게 기록하고 체크하며, 의사가 지시한 대로 치료받을 수 있게 옆에서 꼼꼼하게 간병하시던 분이다. 

내 앞에서 할머니랑 티격대격 싸우시기도 한다. 두 분은 그렇게 다정한 커플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위한 최고의 간병인이었다.


그러던 할아버지가 

지난 달부터 병원에 못 오고 계신다.

폐결핵에 걸리셨는데 늑막에 물도 생기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 

할아버지도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신다고 한다.

 

그래서 할머니는 요즘 딸과 함께 우리 병원에 오고 계신다. 


할머니는 약 먹는게 정확치 않다. 설사를 하는데 약을 제대로 못 드시니 자꾸 탈수가 생긴다. 노인네가 한번 탈수로 몸져 눕고 나면 2-3kg 씩 몸무게가 쑥쑥 빠진다. 딸은 아침 저녁으로 엄마를 찾아 간병인 노릇을 하지만, 하루 종일 함께 지내던 할아버지만큼 간병을 잘 못하는 것 같다. 할머니 약 드시는 것도 할아버지만큼 못 챙기시는 것 같다.


다행히 유방 상처는 많이 좋아져서 진물도 많이 줄었다. 드레싱을 매일 안하셔도 될 정도다. 할머니가 직접 하신다. 당신 스스로 상처 소독을 하시려니 아프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어려우신가 보다. 유방을 보니 피부가 다시 벌겋게 될려고 짓무를 것 같은 모양이다.


할아버지가 안계신 것이 할머지 컨디션을 나빠지게 하는게 분명한 것 같다. 


병원을 함께 다니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커플이 꽤 있다.

자기 힘을 다해 서로를 지켜주는 존재이다. 


이들을 보면

노부부의 사랑을 논하기 보다

평생을 함께 한 배우자에 대한 예의와 인간에 대한 우애를 배우게 된다.

존재 자체가 힘이 되는 관계.


존재의 부재가

할머니를 힘들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