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나 너무 좋아한 걸까?

슬기엄마 2013. 2. 21. 21:18

 

진료실 들어서는 그녀 얼굴 표정이 환하다.

몇개월 전 마음의 고통이 온데 간데 없어 보인다.

이번에 찍은 사진 결과도 좋다.

뼈전이가 있기는 하지만 병변이 별로 넓지 않고 안정적으로 유지되기를 몇년째.

 

안색이 좋으시네요. 피부도 좋아졌어요. ㅎㅎ

 

나의 추임새 한방에 그녀가 입을 연다.

 

우리 딸이 이번에 한림대 의대 갔어요.

 

그녀가 겪었던 지난 몇개월 간의 마음의 고통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하나뿐인 그녀의 딸이 대학입학, 그것도 의대에 갔다는 사실에 너무나 기뻤다.

의대라서 그런거냐 속물적이라 비난해도 나는 너무 기뻤다.

 

거봐요. 그때 괜히 고민한거 였잖아요.

할 놈은 다 해요. 부모가 필요없어요. 괜한 잔소리에 불과한 거에요.

 

그러게요.

지가 다 알아서 하고 있었나봐요. 학원도 별로 못 보내줬는데...

 

엄마가 아프면 애들이 금방 철들어서 더 성숙해 지는 걸지도 몰라요. 이제 한숨 놨겠네요.

딸은 뭐하고 지내요?

 

엄마를 위해 좋은 약을 개발하고 싶대요.

 

순간 내 마음이 얼어버리는 것 같다.

딸은 엄마를 위해 공부했을지도 모른다.

좋은 약으로 엄마를 치료해주고 싶어서 의대에 갔을지도 모른다.

 

의대 들어가기 전에 책 많이 읽으라고 하세요.

 

뚱딴지같은 말로 대화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엄마도 오래 살거니까 마음 단단히 먹고 딸 도와주세요.

딸 덕 좀 볼려면 오래 살아야죠.

 

어려운 살림,

삶의 끝도 알 수 없고 인생의 계획을 세우기 어려운 엄마는

훌쩍 커버린 딸의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도 기쁠 것 같다.

대학에도 갔으니 이제 내가 죽어도 내 딸은 잘 살겠구나. 그런 마음 아니었을까.

그녀에게는 딸이 최고일까? 그런 것 같다.

의대에 가서 더 그런 걸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난 솔직히 그녀의 딸이 의대에 갔다고 하니까 기뻤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 일처럼 기뻤다.

그녀도 새로 취직을 했다고 했다. 딸이 의대간 것 보다 더 기뻤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우울하지 않을 것 같다.

치료도 잘 받으실 것 같다.

마음이 흐뭇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