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차라리 무관심으로

슬기엄마 2012. 9. 26. 13:00

 

 

명절날 일하지 마세요. 일하면 팔 부으니까.

일 하면 쉽게 피로해지니까 일하지 마세요.

 

어떻게 한국 여자가 명절날 일을 안할 수 있겠어요.

 

내가 해 놓고도 부질없는 말이다.

 

오른쪽 유방암을 수술한 환자.

오른손잡이인 환자는 나도 모르게 손을 쓰게 되고 림프부종이 자꾸 재발한다.

우리집에서 차례를 지내지 않아도 이것저것 일이 많고 부산해 지는게 명절인데

한집 살림을 도맡아하는 여인네가 추석날 일을 안하고 어떻게 하루를 보낼 수 있겠는가.

 

겉으로 드러나게 장애가 보이는게 아니니까

아무도 안 알아준다.

나도 내가 유방암 환자라는 걸 별로 티내고 싶지 않다.

못 알아채면 다행이다. 모른척 해주면 고맙다.

다들 처음에는 관심을 가져주는 것 같지만, 결국 남의 일이라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사실 시들해지기만 하면 다행이다.

관심이랍시고 이것저것 간섭이 심하다.

이건 먹지 마라, 이건 하지 마라, 거기 한번 가봐라, 누구는 이렇게 해서 좋아졌다더라,

내가 일일히 반응하기 어려울 정도의 정보를 퍼붓고는

그것이 나에 대한 관심과 사랑인 줄 아는 걸까?

내 반응이 시원치 않으면 섭섭해 한다.

나를 생각해서 그런 말을 해주는 건데, 거기다 대고 뭐라 할 수 없으니 그냥 웃는다.

그렇게 겉으로 웃을 때마다 내 마음은 납덩이를 매단 듯 무겁다.

 

제발 나에게서 관심을 끊어주세요.

차라리 그렇게 외치고 싶다.

 

그러니 명절이라고 자칫 대화시간이 길어지면 화제의 중심으로 내 존재가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가능한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 조용히, 아무일 없는 듯 일하는게 최고다. 그 다음에 팔이 붓든 말든 일단 이번 명절, 식구들이 모이면 발생할 수 있는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는게 중요하다.

 

꽤 먼 친척까지 모이고 보면

암환자 한두명 있기 마련이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 흔한 병이다.

암환자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미소를 보내는 법,

그에게 부담주지 않고 잘 대해주는 법,

그런 걸 가족과 친지들에게 교육하는게 필요하다.

 

어떻게 말을 거는게 좋을지 모르겠어요.

그를 어떻게 대하는게 자연스러운 건지 모르겠어요.

 

주변인들도 어쩔 줄 몰라한다.

 

말 한마디를 할 때도

어떻게 말을 건네는게 환자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지, 혹은 환자 마음에 부담이 되지 않는지,

티 안나게 환자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에는 뭐가 있는지,

그런 교육이 필요하다.

 

명절날 시댁친정 다 가지말고 영화관 가세요. 그날 하루 휴가 받으세요.

 

환자가 활짝 웃는다.

그래 볼까요?

 

그녀에겐 고요한 휴식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