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슬기엄마 2012. 9. 13. 23:04

 

 

수술받고 항암치료도 마치고 지금은 항 호르몬제만 드시고 있는 분입니다.

정기적으로 찍는 뼈사진에 약간의 이상이 보여서 MRI 로 정밀검사를 했는데

아직 애매한 상태입니다.

뼈전이 클리닉에서 환자의 증례를 토의하고

일단 전이의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판단, 일단 경과관찰 하기로 했습니다.

정밀 검사를 하고 환자가 얼마나 불안해 할까 걱정이 되었는데

나 혼자만의 의견이 아닌 여러 선생님들과 토의하여 내린 결론이

전이 가능성이 높지는 않을 거라고 결론지어져서 내심 기뻐하며 환자 외래방문을 기다렸습니다.

 

 

정작 만난 환자는 뼈전이 여부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다른 걱정이 너무 많아 우울해 보였습니다.

경직된 얼굴 표정.

몇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요즘 많이 우울하신가요? 라고 물었더니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우울한 정도가 아니에요. 죽고 싶어요

하신다.

 

환자가 그렇게 직접적으로, 그리고 심각하게 죽고 싶다는 말을 할 때는

응급상황입니다.

저는 일단 당일로 정신과 외래를 보시도록 안내했습니다.

가능성이 높지는 않아도 항호르몬제 때문에 우울감이 악화될 수 있어서 일단 지금 드시는 항 호르몬제는 당분간 복용을 중단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입원을 하자고 권유하였으나 환자는 단호하게 입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집에 초등학교 다니는 한명뿐인 아들도 있고

당장 내일 일을 나가야 하는데 말도 안된다며 단호하게 거절하시고는 외래진료실을 나가셨습니다.

 

우리 유방암 클리닉의 호프 배영숙 선생님은 다음날 해피콜을 해서 환자의 상태가 괜찮은지 전화로 확인해 주셨습니다. 전화를 하여 환자에게 여러가지 위로의 말씀을 전한 것 같습니다.

 

2주가 지나고 환자가 외래에 왔습니다.

외래에 안 와버릴까봐 조마조마 했는데 다행히 환자가 제시간 맞춰서 외래에 오셨습니다.

지난번의 경직된 분위기가 많이 풀렸습니다.

환자는 조금씩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자기를 챙겨준 간호사 선생님의 전화 한통이 정말 위로가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 뿐인 아들을 위해 자기가 이렇게 널부러져 있을 수는 없다고 결심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류병원은 다르다고...

 

일류 병원은 다르다며 감사함을 표하는 환자분 앞에서 저는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한게 없어서요.

우리 배영숙 선생님의 마음 씀씀이 한번이 환자를 감동시키고 절망에 빠진 환자가 힘을 내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러한 개인의 노력이 모여 일류병원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녀는

많이 힘들고 지금 우울하지만 우울증은 아닌것 같습니다.

 

2주 뒤에 다시 만나기로 했습니다.

제가 비록 정신과 의사는 아니지만

환자에게

지금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와 격려를 보태드리고 싶습니다.

다시 항호르몬제를 처방하며, 이거 먹고 다시 우울해지는 것 같으면 정해진 날짜보다 앞당겨서 외래에 오시도록 설명드렸습니다.

 

환자를 잘 진료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약처방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노력과 애정이 있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