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치료적 궁합

슬기엄마 2012. 9. 8. 16:46

 

 

토요일인데

유방암 초진환자가 왔다.

보통 초진환자는 평일에 와야 필요한 검사도 하고

혹시 다른 과 진료가 필요하면 같이 봐야 하기 때문에 일정을 맞추려면 평일 진료가 좋다.

그래서 토요일에는 유방암 초진환자 진료를 잘 받지 않는데

오늘 환자가 지정해서 예약을 했다고 한다.

 

아들과 함께 온 엄마.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나서

수술 후 항암치료를 임상연구로 하자는 말씀을 들으셨다는데

그 설명을 듣고 나서

그걸 꼭 해야 하나 부담이 되어 다른 의사의 의견을 들으러 오셨다고 한다.

환자 본인은 암이라는 진단과 이어지는 수술 등으로 정신이 없어서

의사가 시키는대로 그냥 하겠다고 싸인을 했는데

그리고 왠지 안한다고 하면 불이익을 볼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하겠다고 해놓고는

집에 와서 얘기했더니

남편과 아들이 그런 걸 왜 하냐는 식으로 면박을 줬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 그 아들과 같이 우리병원 외래에 오셨다. 아마 아들이 토요일에 시간이 되었나보다.

진료실에 들어온 아들은 토끼눈을 뜨고 나를 주목한다. 그 시선이 따갑다.

 

임상연구의 의미에 대해서도 이미 설명을 다 들으신 상태다.

내가 이 연구의 의미에 대해 더 설명할 게 없었다.

의학적 배경지식도 다 설명되었고 잘 이해하고 있다.

그 병원에서 연구간호사가 환자 설명을 잘 했음을 알 수 있었다. Pertuzumab에 대해서도 잘 설명한 것 같다.

 

환자가 배경 지식을 다 알고 있어서 내가 굳이 이론적인 설명을 더 할게 없었다.

 

그런데도 환자와 아들은 왠지 불안한 표정, 근심가득한 표정이다.

 

나는 그냥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이거 꼭 하세요. 좋은 연구에요.

환자분께 이득이 많을 거 같아요. 우리 엄마라면 꼭 하라고 할거에요.

표준치료군으로 배정받으면 그냥 지금 하는 허셉틴 치료 받는거구요,

신약군으로 배정되면 이론적으로 치료적 효과가 더 좋을거라고 기대되는 약입니다. 부작용도 심하지 않으니 병행한다고 해서 힘들지도 않아요.'

 

내가 유방암을 진단받은 환자에게 매번 그리는 그림을 그리고 HER2의 의미, 이번 임상연구가 갖는 의미를 그리면서 간략하게 다시 한번 설명해드렸다.

 

'지금 다시 가면, 이랬다 저랬다 한다고 그 병원에서 저 욕하지 않을까요?'

 

'절대 안그럴거에요. 전화해서 담주 월요일이라도 외래 예약 잡으시고 치료 시작하세요.

원래 수술받은 병원에서 예정대로 임상연구로 항암치료 하는게 지금으로서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 같아요. 저희 병원에서도 하는 이 연구를 하고 있지만 일단 치료를 시작한 병원에서 이어서 받으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몇 마디 안했다.

그들은 뭔가 의사로부터 믿음을 얻고 싶었던 것 같다.

자신만을 위해 특별히 신경을 써서 뭔가 설명을 더 해주기를 바랬던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토요일 진료라

나도 부담이 없고

그래서 내 표정도 편안해 보였는지

짧은 대화를 하면서 그들은 나로부터 위안과 믿음을 얻은 것 같다.

그들이 진료실을 나서는데 왠지 들어올 때와는 달리 홀가분한 표정으로 바뀐 것 같다.

 

내 환자들도 가끔은 의견을 들으려 다른 병원에 간다.

그리고 일부는 돌아오기도 하고 일부는 병원을 옮기기도 한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도 궁합이 있는것 같다.

궁합이 맞지 않으면 오랜 기간 치료적 관계를 맺기 어렵다.

 

의사들 사이에도 second opinion 이라 해서,

자기도 잘 모르겠고 토의가 필요하면

원내를 넘어 다른 병원 의사들과도 환자 사례에 대해 의견을 묻고 토론한다.

환자도 그럴 권리가 있다.

 

다만

일단 치료를 시작하면

그 의사를 믿고

성실한 동맹관계를 유지하는게 중요하다.

궁합이 잘 맞아야

오래오래 잘 지낼 수 있으니까.

 

인간 관계가 늘 그렇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