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무엇을 남길까요

슬기엄마 2012. 8. 10. 19:09

 

삼십대 중반의 엄마

그녀에겐 여섯살난 아들이 있다.

그녀는 매년 건강검진을 했었고 매번 아무 이상도 없다고 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4기 위암을 진단받았다.

경황없이 항암치료를 시작했지만 약제 반응이 신통치 않다.

갑자기 복통이 찾아오고 물도 넘기지 못하고 다 토한다.

뱃속에 스텐트라는 것을 넣고 나서야 겨우 물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불과 몇개월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그녀는 아직 분노 단계에 있다.

보통 첫 항암치료의 효과는 최소한 몇개월은 간다고 들었는데 세달도 안되어서 약효가 없어진 것 같다.

바꿔서 다시 쓴 항암제도 효과가 없는지 장폐색이 왔다.

그녀는

나의 미래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대해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우선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뭔가 나의 죽음을 준비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도 갖고 있다.

 

자기에게 시간이 얼마 없는데

자기가 죽고나면 젊은 남편과 아들은 새 아내와 새엄마가 필요할 것이다.

사랑하는 그들에게 내가 잊혀지고 싶지 않아

뭔가 나를 기억할만한 것들을 남기고 싶지만

그렇게 남긴 흔적 때문에 새 아내와 새 엄마를 맞이한 그들에게

자신의 흔적이 방해가 될 것 같아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그녀에게는 이 마음이 가장 힘들다.

 

당신은 남편과 아들에게 소중한 존재라고.

그러니까 그들에게 새 사람이 생겨도

당신은 기억되어야 하고 기억될 수 있는 존재라고.

남편에게 당신은 영원한 사랑이고

아이에게 당신은 영원히 엄마라고.

그러니까 우리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고 좋은 것은 남기자고 약속하였다.

 

우린 미술치료를 선택했다.

치료라는 말이 들어가기는 했지만 꼭 명확한 치료의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호스피스 자원봉사 팀에 이런 미술치료를 전문으로 하시는 선생님이 계셔서 자원봉사를 해 주시기로 했다.

환자가 좋아하는 장르를 찾아 예쁘게 그리고, 멋지게 만들어서 뭔가 작품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남편과 아들에게 선물하기로 했다.

좋은 것을 보고 좋은 것을 만들고 좋은 것을 선물하며

마음을 치유하는 것.

그것이 그녀를 위한 우리 팀의 미션이 될 것이다.

이 생을 떠난다고 해서

다 잊혀지는 것은 아니다. 잊혀져서도 안된다.

사랑이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