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할머니 마음

슬기엄마 2012. 8. 1. 01:38

 

아흔을 바라보시는 할머니

유방암을 진단받고도 한참 있다 오셨다.

초기니까 수술하면 된다고 들으셨는데도 안하신다고 했다.

그리고 또 자식들 성화에 몇달 뒤 다시 검사하셨다.

다행히 여전히 수술가능한 상태. 그래도 할머니는 수술 안하신다고 했다.

 

그러다가 오늘 나를 만났다.

묵주반지를 끼고 있지만 사실 날나리 신자인 내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는데 눈물이 글썽글썽.

 

할머니 무릎 관절염 말고 다른데 불편하신거 없으세요?

혈압 말고는 없어.

아이고, 건강하시네요. 얼른 수술해요. 검사 몇가지 하구요.

...

괜히 자식들한테 오래살고 싶은 할망구 소리 들을까봐, 삶에 연연해한다는 소리 들을까봐 수술 안하실라고 했죠?

응. 나이도 이렇게 많은데 무슨 수술이야. 그냥 죽는게 낫지. 그렇게 생각했어.

근데 오늘 저한테는 왜 오셨어요?

...

할머니, 유방암 오래 살아요. 콱 죽고 끝나는게 아니라 오래오래 가는 병이에요. 그러니까 수술하고 사는 날까지 마음 편안히 사셨으면 해요. 우리 할머니면 전 그렇게 할거에요.

...

...

...

제 말씀대로 하실거죠? 자, 그럼 새끼 손가락으로 약속하고 도장찍으세요.

할머니는 참았던 눈물을 떨어뜨리신다.

그래. 고마워. 나 잘 낫게 해줘.

 

환자는 사실 누구보다 살고 싶다.

우리 모두는 누구나 잘 살고 싶다.

그렇지만 그 마음을 솔직히 드러내기 어려울 때도 있다.

오늘 내가 할머니 마음을 읽은 것 같아 기분 좋다.

 

할머니,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