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펠로우일기

저도 제 목소리를 들으니까 눈물이 나요

슬기엄마 2011. 2. 27. 11:26

저도 제 목소리를 들으니까 눈물이 나요

 

자기 사는 꼴이 심란하고 의기소침해지고 한심할 때가 있다. 딱 내가 요즘 그런 상황인데, 이렇게 총체적인 근본적인 감정 부전상태는 쉽게 사그러지지 않고 사소한 일에도 자꾸 재발하는 것 같다. 암튼 겨울이 되기도 전에 몸과 마음이 움츠러들고 있다. 아침 저녁 회진도는 걸 즐기는 편인 내가 이 회진마저 귀찮게 느껴진다는 것은 병의 중증도가 꽤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제 오후에도 대충 회진을 돌아버려야겠다는 막되먹은 마음으로 병동으로 나갔다.

50대 후반의 아주머니. 2번의 항암치료를 하고 난 지금의 몸무게는 32kg, 극히 드문 감염증으로 쇼크에 빠지기를 수차례, 중환자실도 두세번 왔다갔다 하면서 입원한지 어느덧 4개월이 넘었다. Central line, foley catheter, PTGBD 뭐 이런 갖가지 line들을 수차례 교체하고 아직도 몸 구석구석에 관이 주렁주렁 박혀있고 전해질 불균형으로 하루에도 수차례 혈액검사를 해야 하는 날도 있었다. 기관절개를 한 목구멍으로 가래가 너무 많이 나와서 보호자가 가래흡입기술을 배워서 한시간에 한번씩 가래를 빼야만 했다. 열이 오랫동안 계속 나서 항생제, 항진균제도 장기간 사용하였고, 오랜 병원 생활을 하면서 부신호르몬 부족증이 생겨 스테로이드 호르몬도 상당량 보충해주어야 했다. 한마디로 이 환자의 차트를 보면 한숨이 푹푹 나오는, 끝이 보이지 않는 환자였는데, 언제부터인가 환자가 조금씩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산소도 이틀에 한번씩 1 liter씩 줄여 보고, 열도 안나고, 입으로 먹게 되고, 변도 자연스럽게 보고, 특별히 해준게 없는 것 같은데-이 환자를 담당한 주치의가 이 코멘트를 보면 펄펄 뛰겠지만- 환자가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나보다.

급기야는 어제 tracheostomy tube를 교체하고 seal off 할 수 있는 준비를 시작하였다. 막는 연습을 할 수 있는 관으로 교체한 후 구멍을 손가락으로 막고 환자가 말을 하는 순간, 난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울컥하였다. 환자는 아주 컬컬하고도 구성진 목소리의 경상도 아줌마였나 보다. 아주아주 작아진 몸에서 어찌 그렇게 크고 괄괄한 목소리가 나오는지환자도 자기 목소리를 너무 오랜만에 듣는다며 눈물을 글썽인다.

중환자실 환자나 기관절개 후 소리가 안나와서 의사표현을 못 하는 환자를 볼 때는 몇가지 수신호나 상태가 좋으면 환자와 필담을 통해 그 환자의 의중을 파악해보려고 노력하기는 하지만, 대개는 의사인 내가 일방적으로 설명하고 난 다음 이해하시겠죠? 좀 답답하셔도 참으세요. 지금은 말할 수 없으니까, 말 할 수 있을 때까지 좀만 참으세요라며 자리를 떠나 버린다. 환자가 공중에 팔을 허우적거려도 팔을 잡아주며 대화를 종결해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환자가 말을 못하면 보호자랑 대화를 나누고 나도 모르게 환자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도대체 살아날 것 같지 않던 환자가 시끄럽게 이것저것 불평하는 걸 보니, 마음이 뭉클하다. 의사가 뭘 해줘서 좋아진게 아니라 환자의 생명력이 강인하여 스스로 살아난 것 같다. 남편은 때도 아닌 비싼 딸기를 사서 작게 잘라 환자에게 손으로 먹여준다. 비타민 C가 몸에 좋다면서그리 부유해보이지 않는 이들 부부, 중환자실과 2인실 병실을 왔다갔다 하기를 수차례, 그런 와중에 비싼 약을 많이 써서 병원비도 많이 나왔을텐데, 그저 이들은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의 과제를 수행하고 좋아지기 위해 최선을 노력을 다하고 있다. 수개월을 누워지내던 환자가 막상 일어서려니 몸이 후들거려서 아직 자기 힘으로 걷지를 못한다. 일단 휠체어부터 타면서 병동 바깥 바람을 쐬시고 곧 재활치료를 시작하자고 말하며 나오는데 막되먹은 마음으로 회진을 대충 해치우려고 했던 나 스스로가 부끄럽다.

환자를 보면서 가슴이 뭉클한 상황이 종종 있는데, 난 기관절개술 후 처음으로 말을 할 때가 그렇다. 암환자가 기관절개술을 했다는 건 airway가 위협이 될만큼 중한 상태를 겪었다는 것이고 중환자실에서 죽음의 고비를 넘겼으며, 이를 막을 수 있는 컨디션이 되었다는 건 암이라는 기본 신체 조건을 고려했을 때 환자의 강한 생명력을 상징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두세달 전에도 4기 폐암으로 진단받고 항암치료를 받던 중 심한 폐렴이 생겨 급전폐부전증후군으로 진행, 1달동안 중환자실에 있던 아줌마 환자를 치료한 적이 있었는데, 극적으로 폐렴이 회복되어 절개한 기관을 봉합하고 걸어서 퇴원하였다. 기관을 막고 나는 첫 목소리는 강인한 환자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 소리에 나는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회진을 돌며 교수님께 이 환자가 이렇게까지 좋아질 줄은 몰랐어요.”라며 환자의 첫 발성에 대한 나의 감동을 전해드렸다. 교수님은 본인 주치의 시절, 중환자실에서 6개월 이상 인공호흡기를 떼지 못한 채 입원해 있던 만성폐쇄성폐질환 할머니를 담당하게 되었을 때 밤마다 중환자실에서 차트정리를 하고 오더를 내면서 인공호흡기 모드를 조절하고 매일 조금씩조금씩 환자의 폐기능을 호전시켜 드디어 weaning에 성공시켰던 날의 기쁨을 얘기해주셨다. 다른 호흡기내과 선생님들의 우뢰와 같은 칭찬을 받고 스스로도 우쭐하여 회진 가이딩을 하여 환자 앞에 당도했을 때, 관을 손가락으로 막고 환자가 하는 첫마디, “아니 왜 이렇게 주치의가 환자보러 안오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