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펠로우일기

몸의 병이 마음을 좀먹나보다

슬기엄마 2011. 2. 27. 11:25

몸의 병이 마음을 좀먹나보다

 

오후 회진 돌기전 나는 병원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며 밀린 일을 하고 있었다. 우리과 외래도 아닌 다른 과 외래 근처에서 정처없이 병원을 헤매고 있던 그녀를 만났다. 약간 초점이 흐려진 눈으로 누구라도 건드리면 당장 울어버릴 것 같은 울먹울먹한 표정, 고정되지 않은 시선, 목적없는 느린 발걸음으로 병원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녀는 10년도 더 전에 2기 유방암을 진단받았고 수술,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항호르몬치료를 다 받았으며 최초 진단 7년이 지난 후 병을 잊을만하던 시기에 수술 부위 국소재발을 다시 진단받았다. 재발 부위를 다시 수술할 수 있었고 각도를 조정하여 다시 방사선치료를 받았으며 또다시 항암치료를 받았다. 항암치료 후 장기간 항호르몬치료를 마친 지금은 눈에 보이는 병이 없는 상태에서 최근 2년간 경과관찰 중에 있다. 환자가 강력하게 원하여 6개월이 아닌 3개월에 한번씩 검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지방에 사는 그녀는 검사를 하고 결과를 보러 서울을 왔다갔다 하는게 힘들었는지 입원해서 각종 검사를 받고 결과를 확인한 후 퇴원하기를 수차례, 이번에도 재발여부를 확인하는 검사를 하려고 입원하였고 나는 길고 긴 그녀의 투병기록을 접하게 되었다. 입원한 그녀의 첫 인상은 불안(anxiety).

 

정작 위에서 언급된 지난하고도 긴 치료는 모두 거주지 근처의 대학병원에서 다 받으셨고 10년 이상의 긴 시간동안 그 병원에서 훌륭하게 치료해 주신 것이라 생각할 법한데, 환자는 통상적인 치료를 마치자 마자 3개월에 한번씩 하는 검사를 위해 우리병원에 입원해서 검사하고 퇴원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우리병원에 와서는 각종 이미징 검사만 시행하고 아무 치료도 받지 않은 셈이다. 그런데 처음 간 회진에서도 내 손을 잡으며 너무 고맙다고 말씀하셔서 당황스러웠다.

 

여하간 재발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통상적인 검사를 진행하였고 나는 내심 현재 병이 없는 환자이니 별 신경도 안쓴 채 무심히 환자의 사진들을 검토하였다. 아뿔사! 이번에 찍은 뼈사진에서 왼쪽 갈비뼈와 복장뼈에 강한 시그널이 생긴 것 아닌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들 병변은 악성 재발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악성이라고 확정할 수도 없었고, 뼈의 의심되는 부분을 조직검사로 확정하기에 병변의 크기가 작았다.

 ! 이거 뭐지? 또 재발이야? 재발 맞나? 젠장! 이걸 어떻게 환자한테 설명하지?’ 환자가 정서적으로 안정적이지 않은 것 같은데, 그럴 땐 어떤 방식으로 재발 가능성을 고지하는게 좋을까? , 이 환자 회진은 다른 환자 보고 제일 늦게 가야겠다.’ 난 어제 오후 회진을 돌면서 환자와의 만남을 제일 마지막으로 미루었다. 방문 앞에서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 환자에게 최대한 중립적인 목소리 톤을 유지하면서 검사결과 및 앞으로 계획에 대해 설명하였다. 환자는 자지러지듯 이제 나는 어떻게 하냐며 눈물바람을 시작한다. 나도 감정적으로 부담스럽고 힘든 순간이다. 좋은 소식 아닌거 나도 백번 인정하지만, 이렇게까지 소모적인 반응을 보이면 대응하기 힘들다.

 

내가 진료하는 환자들은 4기로 진단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항암치료를 받고 완치되기 어려운 환자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항암제를 쓰면 치료 반응이 좋다가도 나빠지고, 꽤 오랜 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병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언젠가 재발한다. 작용기전이 다른 항암제로 바꿔서 반응이 좋은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암의 종류에 따라, 다른 약제와의 관계에서 반응율은 천차만별이다. 처음 병을 진단받은 환자에게 4기 이므로 완치가 안된다는 말을 단언적으로 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처음 4기를 진단받았을 때, 항암치료의 한계, 저항성이 생기고 항암 치료 요법을 바꿀 수 밖에 없는 이유, CT 등의 검사를 통해 detection 되지 않더라도 혈관 속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종양 세포들이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어떤 시점에 원격장기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 왜 우리가 4기 암환자 치료기간을 예상하기 어려운지, 언제까지 치료하는게 좋은지, 언제부터는 쉬어도 안심할 수 있는지, 왜 이런 대답을 의사들이 뜸들이며 어렵게 할 수 밖에 없는지, 나는 가능하면 처음에 얘기해주고 싶어한다. 나이가 많던 적던, 앞으로 자신의 인생이 어떤 행보로 진행될 것인가에 대해 정보도 주고,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지도 준비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 그래서 첫 진단, 첫 재발을 고지하는 순간이 발생하면 최소한 30분의 시간을 환자에게 할애하고 설명하고 질문받으며 대화하려고 노력한다. 더 실력과 경험이 쌓이면 그 시간을 줄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환자에게 시간을 쏟는 것을 아까와해서는 안되는 때가 아닐까?

 

나를 보자 환자는 히스테리적인 반응을 보이며 약간 기절할려고 하는 모션까지 취하는 것 아닌가. 나를 끌어안고 볼을 비비며 이제 자기는 어떻게 해야하냐고 눈물을 보인다. 나는 당황해서 환자 손을 끌고 우리 과 외래쪽으로 환자를 데리고 왔다. 비어있는 외래 방을 찾아 환자와 면담을 해야했다. 아직은 확실한 것이 아니며, 검사마다 약간의 결과 해석의 차이가 있으니, 아직으로서는 확실히 말씀드리기 어렵다, 수술이 가능할지, 아니면 경과관찰을 할지, 호르몬수용체 양성, HER2 양성 환자이나 호르몬제는 이미 2세대 항호르몬제까지 다 사용한 상태에서 허셉틴이라는 표적치료제가 아직 남아있는 상태이고 써볼만한 항암제도 아직 많이 남아있다며 아직 진단도 100% 확실하지 않고, 악성재발이 맞다 하더라도 아직 이렇게 대안이 많으니 너무 걱정부터 하지마시라고 그녀에게 설명해야 했다. 마음속으로 그러니 제발 더 이상 히스테리적인 반응은 보이지 말아달라는 나의 심정을 한마디 덧붙여서.

 

말기신장암환자로 더 이상 항암치료를 진행하기 어려울 것 같은 환자가 설사를 주소로 입원하였다. 면역성이 떨어진 그는 증상없이 나는 열의 원인을 찾기 위해 한 가래검사에서 결핵균이 4+로 보고되었고 결핵약을 먹은지 2주가 되었는데도 계속 결핵균이 나오고 있다. 설사 때문에 이약 저약을 쓰다가 이약 저약을 끊어보기도 하고, 원인은 명확치 않기도, 너무 많기도 한 상태에서 Sandostatin을 쓰고 설사가 멈췄다. 그렇지만 비급여를 쓰는게 마음에 걸려 경과를 보다가 Sandostatin을 끊자 다시 설사를 시작하였고, 그렇게 설사를 다시 시작하던 날, 그 환자는 내게 등을 돌린채 몇일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Aphagia가 생긴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의 말문을 열때까지 나는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병의 코스상 당연히 있을 수 밖에 없는 이벤트이고 그런 일이 있고 나면 어떤 증상이 발생해서 힘들 수 밖에 없겠구나 싶은 예상되는 일들이 있다. 의사인 나로서는 당연하지만 환자에게는 절대 당연하지 않으며 청천벽력이다. 지칠대로 지친 환자들은 마음의 문을 닫고 그 문을 열어달라고 두드리는 나도 지쳐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