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어제 밤 나는 초조했다.
14년전 신장이식을 한 그녀. 이십대 후반의 젊은 아가씨가 오빠로 부터 신장을 이식받았다.
그리고 그 이후로 잘 지내셨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다.
그러다가 지난달 유방암 2기로 수술을 받았다.
면역억제제를 평소에 복용하고 있기 때문에
몸의 면역체계가 보통 사람과 다르다. 감염에 아주 취약하다.
항암치료에 대해서 환자는 아주아주 걱정이 많았다. 나를 만난 첫날부터 눈물이 앞선다.
나도 걱정되기는 마찬가지.
현재 콩팥 기능은 정상범위내에 있지만 약간 기능이 약한 편에 속한다.
나는 이식여부를 고려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똑같은 항암제를 선택해서 항암치료를 시작하였다. 아드리아마신과 탁센계열의 항암제를 쓰는 것이 지금 그녀에게 최선을 선택이다. 장기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는 경우 왜 그런지 정확히 기전이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보통 사람에 비해 재발의 위험이 더 높다고 되어 있다. 유방암에 가장 효과적인 약제 두가지를 반드시 쓰는 것이 원칙이다.
학회갔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환자 오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항암치료 2주째. 환자가 너무 힘들고 열이 나고 머리도 아프고 토한다고 한다. 지방에 사시는 분이니, 일단 내가 미리 써드린 소견서를 가지고 인근 병원에 가시라고 했다. 그 병원 의사와 통화를 했는데 일단 항생제는 투여하였지만 백혈구 촉진제는 없다고 한다. 환자에게 일단 항생제를 맞으셨으니 다음날 외래로 오시라고 안심을 시켜 드렸다. 그런데 환자는 밤사이에 너무 힘들어서 근처 국립대병원 응급실을 다시 방문하였다. 그 병원에서 백혈구 촉진제는 맞았지만, 더 이상의 조치는 없는 상태에서 더 힘들어진다고 전화가 왔다. 환자는 첫 비행기를 타고 우리 병원에 왔다. 난 미리 입원장을 내고 자리를 준비해두었다. 환자 상태가 심상치 않아서...
환자가 왔는데 수축기 혈압이 60mmHg이다. 혈관도 않좋고, 콩팥도 걱정되는데, 엄청난 항생제와 수액과 강심제 등이 투여되었다. 어제밤, 환자는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계속 울고 있었다. 이틀만에 나온 피검사 결과에서 cytomegalovirus가 검출되었다. 입안에는 백태가 끼어있다. 콩팥 수치도 서서히 오르기 시작한다. 내과 세미나에 나간 전공의와 통화할 새도 없다. 열병 책을 꺼내 용량감량원칙에 따라 항생제, 항바이러스제, 항진균제 용량감량을 시작한다. 모든 먹는 약은 주사약으로 바꾼다. 칼륨이 낮으니 중심정맥관으로 칼륨도 보충한다. 혈압이 다시 떨어지기 시작하니 다시 강심제 용량을 올린다. 소변량을 체크하고 폐 호흡음을 자꾸 들어본다. 엊그제 지방병원에서 찍었다는 가슴 CT는 괜찮았지만 이삼일이면 환자 상태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는 환자에게 이삼일은 천지차이다. 오늘 내일 사이로 중환자실에 가야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걱정을 하며 아침에 환자에게 가 보았다.
환자가 밤새 잘 잤다고 한다. 그리고 나에게 많이 나아졌다며 웃는다.
아직 총 백혈구가 400개 밖에 안되는데...
환자가 웃음을 보이니 난 눈물이 날 것 같다.
아직 피검사 수치들은 엉망인데, 환자가 웃음을 보이니 나에게는 희망이 생긴다.
아직 중환자실 얘기는 안해도 될 것 같다.
암환자는 온 몸으로 자신의 상태를 의사에게 표현하는 존재다. 자신이 의도한 것이던 그렇지 않던 간에 환자의 증상은 뭔가를 의미한다. 어디가 간지럽고 어디가 불편하고 밥을 잘 먹고 소변을 잘 보고 몸무게가 빠지고 기분이 우울한 것까지도 뭔가를 의미한다. 그래서 암환자를 보는 나는 입보다는 귀를 크게 열고 환자가 뭘 말하는지 잘 들어야 한다. 청진기로 여기저기 소리를 들어봐야 한다. 눈을 크게 뜨고 뭐 이상한 거 없는지 환자의 몸을 샅샅이 뒤져야 한다. 뭔가를 의심하고 시청타촉을 하려면 내 머리속에는 이미 많은 정보들이 들어가있어야 아는만큼 이상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아는 증상보다 모르는 증상을 더 많이 말한다. 그래서 공부도 많이 해야 한다.
나는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이 환자가 이번 주말을 무사히 넘기기를 기도한다.
가물가물해져가는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이식한 환자에 대한 지식을 점검해야겠다.
일주일 후 이시간에는
환자가 웃으며 나에게 인사하고 퇴원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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