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삼중음성유방암 환자분들께

슬기엄마 2011. 4. 4. 23:02

제가 쓴 '한쪽가슴으로 사랑하기' 책을 읽으신 분들
혹은 본인이 삼중음성유방암으로 수술 전 항암치료를 받으시는 분들은
아마도 삼중음성유방암이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대략 아실 겁니다.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으시는 분들은 잘 모르실거에요.
수술을 받으신 분들께는 제가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니까요.

유방암은
다른 암보다 생물학적 특징이 많이 밝혀져 있는 분야이고
최신의 연구, 신약개발 등이 많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유방암 세포 핵 혹은 세포 표면에는 수용체라는게 있는데
크게 ER, PR, HER2로 구분해볼 수 있고
이들 수용체가 모두 없으면 삼중음성유방암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의 특징은
수술 전 항암치료를 하면 기가 막히게 약효가 좋아서
수술을 하고 보니 암세포가 하나도 남지않는 '병리학적 완전관해 (pathologic complete response)' 를 보이는 비율이 높습니다. 좋은 소식이죠!
사실 항암제에 반응이 좋다는 것은 세포 분열이 그만큼 빠르고 공격적인 속성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암제에 반응이 좋은 것입니다.

이에 반해 ER 혹은 PR 양성 등 호르몬 수용체 양성 환자들은
수술전 항암치료를 해도 병리학적 완전관해가 오는 비율이 높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인 예후는 더 좋은 편입니다.
예후라는 것은 수용체 하나로, 병기 하나로, 그렇게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결과라서 딱 잘라서 말씀드리기 어렵지만요...

삼중음성유방암에는
'치료의 모순 (treatment paradox)' 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수술 전 항암치료에 그렇게 잘 듣던 놈들이
막상 전이가 되거나 재발이 되고나서는 항암제에 잘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호르몬 수용체나 HER2 수용체 등의 표적이 없기 때문에 표적치료제 등의 신약개발도 시원치 않고
기본적으로 재발이나 전이가 되었을 때
쪼금 재발하는게 아니라 왕창 여기저기 재발하는 경향이 높습니다.
수술 후 1-2년 사이에 갑자기 확 전이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전이되는 환자보다
무사히 재발되지 않고 잘 살아가시는 분들이 더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외래에서 삼중음성유방암 환자들이 오시면
사소한 증상도 자꾸 물어보고 컨디션을 확인합니다. 제 마음에도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기준으로는
삼중음성유방암 환자의 수술 후 항암치료 약제를 선택할 때
다른 타입의 유방암과 똑같은 표준약제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 대 원칙이기 때문에
일부러 제가 자세한 설명은 드리지 않습니다.

대안도 없는데
미리 자세한 설명을 해서 두려움을 안겨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수술 전 항암치료를 하시는 분들에게는 비교적 자세히 설명해 드리는데
그 이유는 Avastin이라는 혈관생성억제제를 가지고 진행하는 임상연구 약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효과가 좋을 거라는 의학적 근거를 가지고 설명드리며
많은 분들이 참여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어떤 환자분들께서
그동안 별로 설명도 자세히 못들었는데
왜 갑자기
수술 한지 1년도 안 지나서 재발을 했냐며 원망하시는 분들이 계시지만
특별한 설명을 더는 드리지 않습니다.
그냥 암세포 특징이 그렇다고 변명하듯 말씀드립니다.

이렇게 블로그로 설명을 드리는 것마저
괜한 걱정을 드리는 것이 아닐까 우려도 됩니다.

그런데
사실 걱정한다고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내 세포 타입은 이미 정해진 것이고
약제도 정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최선을 다해
가이드라인에 맞게 치료하고 나머지는 운명에 맡기는 거죠.
씩씩하게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사는거구요.

다만 전 오늘 밤
최근 좋은 저널에 실린 한 논문에서
삼중음성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했더니 삼중음성유방암 특유의 강력한 유전자가 발견되었다는 논문을 읽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병원에서 수술받은 환자분들의 조직을 가지고 뭔가 추가적인 연구를 하면
도움이 되는 뭔가의 방법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공부하고 연구하려고 합니다.

환자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진료도 해야하고
그만큼의 연구도 해야 하는 것이
우리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의 역할이겠지요. 능력이 부족해서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가끔 부시시한 제 얼굴을 보면 어제밤에 열심히 공부했구나 칭찬해주세요.
여러분이 최선을 다해 치료를 받으시는 것처럼
저도 최선을 다해 진료하고 공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