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가까운 사람과 호스피스에 대해 얘기를 시작하며

슬기엄마 2011. 3. 29. 09:14

오늘 환자분을 뵙기로 했다.
가까운 분이라
입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
본인 생각이 어떤지도 전혀 알수가 없다.
어제 저녁 내
오늘 이분을 어떻게 만날지, 만나면 무슨 얘기를, 어떻게 시작할지 고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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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환자분 상태를 돌이켜본다.
진료실에서는 
환자의 얘기를 듣기보다 내 얘기를 하기가 바쁘다.
현재 내 진료에는 하자가 없고 최선의 선택이고 그렇게 했더니 지금 경과는 어떻고 이런 상황을 쭈욱 나열하듯 설명하고 그러므로 다음번 치료는 어떻게 하겠다고...
그 사이에 환자는 몇 가지 힘들었던 육체적 증상만을 얘기한다.
그러세요? 그러면 그 증상은 이걸로 해결보고 저 증상은 저렇게 바꿔보면서 경과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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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항암치료를 하러 오시는 날이지만
아마도 못 하실 가능성이 높다.
주관적으로 너무 힘들어하고 계시는 상태고
객관적으로 백혈구 수치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예전 치료하실 때 백혈구 수치가 낮아서 항암을 제때 못 맞는 것에 대해 무척 속상해 하셨던 분인데...
오늘은 환자의 얘기를 주로 듣는 시간을 가질 생각이다. 시간도 정규 외래에 다른 환자와 함께 보지 않고 따로 보기로 했다. 
현재 상태를 직면(confrontation)하기 위해서는 정규 외래의 주어진 짧은 시간으로는 안될 것 같다.
그렇지만 무작정 호스피스에 대해 말을 꺼내고 우격다짐으로 환자의 의견을 들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오늘은 우선 환자의 통증에 대해 주의깊게 들어보기로 했다.
최근 뱃속 종양이 자라면서 요통이 생겼다.
그동안 사진하고 환자 증상하고 비교해보면 통증을 설명하기 어려웠는
무작정 진통제만 쓰고 있었던 것이 아닌지 돌이켜본다.
방사선 치료가 들어갔던 부위의 림프절은 줄어든 채 커지지 않고 있는데 그 외 부분에서 자란 종양이 증상을 야기하는 것 같다. CT 사진하고 환자 증상을 잘 맞춰서 다시 한번 판단해봐야겠다. 방사선 치료에 반응이 있었던 분이니 통증 조절이 잘 되지 않으면 방사선을 추가하는 것에 대해 고려해봐야겠다. 그렇지만 지금은 항암 중이니 같이 하는 건 어렵겠다...

두번째
항암제 때문인지 - 구토감이 심하지 않은 약제들인데도...
구토감이 심하시다고 한다. 새로나온 붙이는 항구토제 패취를 드려봐야겠다.
진통제 때문에도 구토감이 생길 수 있으니 진통제 종류도 다른 걸로 바꿔봐야 겠다.
처방한 진통제도 잘 안드시고 계시는 것 같다.
일단 통증과 구토감을 조절해야 환자 컨디션이 호전될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치료를 받으면서 본인은 본인의 현재상태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불편한 마음이 무엇인지, 아쉬움이 무엇인지, 그리고 병원과 의사, 가족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마음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환자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몸이 편안해야 할 것 같다.
앞으로 당분간은 몸을 최대한 편안하게 도와드려야 겠다.
의욕이 없어 그동안 처방한 약도 잘 안드시고 계신다고 한다.
삶에 대한 의지와 의욕, 치료에 대한 신념 등이 떨어지고 있나보다.
그 분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