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어떻게 호스피스를 환자에게 설명할까...

슬기엄마 2011. 3. 26. 11:47

신장에 생긴 암. 그런데 신장암은 아니고...
원격 전이는 없었지만
주위 림프절 전이가 있었고
병리학적으로 진단하는데 2주가 걸렸다.
진단이 어려워 다른 병원의 병리학 선생님들까지도 돌아가면서
의견을 교환해야 했을 정도로 세포의 모양과 분화도가 좋지 않고 특수했다고 한다.
여하간 수술로 주된 종양은 제거했지만, 주위 림프절은 남아있는 상태로 수술은 끝났고
수술 후 항암 및 방사선 치료를 동시에 진행하셨다.
나이는 이제 갓 60세를 넘긴 상태인데
생각보다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다.

외래에서 항암 방사선 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의사인 나는
"오늘 피검사가 회복되지 않았으니 한주 쉬어야 겠습니다. 다음주에 다시 피검사하고 봅시다."
이렇게 간단하게 말하고 말았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환자는 집에 가서 매우 속상하고 힘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힘들게 치료를 마치고 찍은 CT에서는 비교적 크기가 많이 줄어든 림프절을 볼 수 있었다.
남은 림프절에 진짜 암세포가 남아있는지의 여부는
현재 의학기술의 수준으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렇다고 다시 배를 열고 들어가 림프절을 떼서 볼 수도 없다.
남은 림프절의 크기가 더 이상 커지지 않고 더이상 재발되지 않고 남아있을 가능성도 꽤 높다.
그러므로 현재의 표준 지침은 '경과관찰'이다. 의심이 되더라도 추가적인 항암치료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3개월 후 CT는 그럭저럭 비슷해 보였는데
다시 3개월이 더 지난 후 찍은 CT는 병이 재발하였고 간과 폐로도 전이가 되었다. 
처음 종양 세포부터 모양이 다르더니 성질도 다르구나 싶었다.
예후가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치료를 시작했는데
결국 재발을 하였고 항암치료를 다시 시작했지만 단 2주기 만에 병이 더 악화된 것을 확인하여
또 다시 약제를 바꿔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이번에 선택한 약제는 보험급여도 되지 않는다.
환자의 전신상태는 항암치료 자체 때문에 더 힘들어지고 약화되는 것 같다.

이제
환자와 남은 인생, 남은 시간, 그리고 임종에 대해 직면(Confrontation)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지금 의사인 나에게 그를 위한 최선의 치료와 결정을 하라고 한다면
항암치료의 레지멘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치료를 중단하고
몸을 편하게
그리고 마음도 편하게 해주는 것이다.
평생을 선생님으로 일하며 휴식없이 젊음을 보내신 그분.
당신 혼자 힘으로 아들 둘을 번듯이 키우고
이제 겨우 좀 편안해진 이때,
가족 중 그 누구도 죽음이나 임종에 대해서 감히 상상조차 못하고 입밖에 꺼내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나는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실력도 없고
하루하루 일상을 급급하게 살아가는 내가
이렇게 철학적이고도 중요한 문제, 인생의 가치관이 필요한 문제에 개입하는 것이 맞는걸까 싶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호스피스라는 말 자체를 싫어한다.
포기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Hope and Peace 로 바꿔볼까?

가슴 가득 눈물이 고인 가족들.
항암제로 지쳐서 기력이 떨어진 환자.
나는 어떤 말로 이들에게 호스피스를 말해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