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가슴으로 사랑하기 1020

전이성 유방암 환자를 위한 명상 프로그램 (1)

작년에 남녀, 암종별 구분없이 전이성 암환자들을 대상으로 명상 프로그램을 운영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시행해 본 경험에 의하면 비슷한 그룹의 환자들이 함께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고 남자보다는 여자에서 그리고 유방암 환자들에게 특히 도움이 되는 것 같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습니다. 처음 운영해보는 프로그램이라 당시 좌충우돌 실수도 많았지만 참여한 환자들은 거의 대부분 프로그램에 도움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특히 참여하신 분들의 설문지를 분석해보면 불안과 우울감을 극복하는 것에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두 세션 정도를 따라 해 봤는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본다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고 상당한 정신 집중력을 요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환자들이 성공적으로 잘 따라와 주었습니다...

하우스에 심은 옥수수

강원도 사는 할아버지 유방암 환자. 3주에 한번씩 젤로다 처방받고 조메타 뼈주사 맞으러 병원 오신다.3주에 한번은 너무 자주라며, 매번 병원 오는 시기를 늦추시려고 한다. 앗, 벌써가 3주가 되었나요? 거봐, 너무 자주라니까. 약 두달치 주고 두달에 한번만 봐. 검사는 6개월에 한번만 하고. 혈압약도 아니고, 무슨 항암제를 2달치 줘요. 그리고 치료하면서 3개월에 한번씩 검사 안하면 제가 처방한 약 다 삭감되요. 우리 병원 손해야. 그래?병원이 손해볼 수는 없겠지.그래도 너무 자주 병원에 오고 검사하고 그러는 거 같애.CT 찍다가 그 방사선 때문에 암 생기겠어.그리고 남들은 다 조영제 빼고 찍어주면서 나는 왜 맨날 조영제 넣고 찍어?조영제 맞으면 힘든거 알기나 해? 할아버지는 당분간 꼭 조영제 쓰고 찍어..

가족일은 뒷전으로

아빠가 두달전부터 내시경을 해보고 싶으시다고 했다. 내가 예약하고 날짜를 알려드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병원에 출근하면 그 사실을 계속 잊고 예약을 하지 않고 있다. 매일 환자 관련된 일을 하면서도 그 와중에 아빠 일을 한명 떠 끼워 넣어서 일을 처리하면 되는데 계속 잊고 있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 포스트잇으로 "아빠 내시경 예약" 이렇게 붙여놓는데도 자꾸 잊는다. 아빠가 검사를 원하는 날짜가 있으셨는데 그날 할 수 있을거라고 말만 해놓고 시간약속을 가르쳐 드리지 않고 있다. 왜? 아직 못 잡았으니까. 그러고 보니 엄마가 다니는 성당 교우 중에 친한 분 부탁으로 이비인후과 선생님을 추천하고 외래 예약을 도와드리기로 했는데 그것도 맨날 까먹어서 엄마가 하루에 문자를 세번씩 보내고 있다. 바쁘겠지만 좀 알아보..

환자가 의사를 걱정해주는

학회를 다녀와서외래가 밀린다.평소보다 대기시간이 많이 길어진다.몸도 불편하고마음도 불편한 환자들이한시간씩 진료시간이 지연되면 짜증이 날 법도 한데내 앞에서는 내색을 못한다. 의사 앞에서 싫은 소리 하면 안되니까 그런 환자도 있겠지만난 환자들이 내 상황을 많이 이해해주고 있다고 느낀다. 학회가서 공부 많이 하고 오셨어요? 외국 다녀오셔서 진료보기 힘드실텐데 괜찮으세요? 입가에 뭐가 잔뜩 난걸 보니 정말 피곤하신가봐요. 난 그렇게 환자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의사다. 엄마는 외래볼 때 꼭 화장을 하라고 당부하신다. 그럼에도 거의 그런 적은 없지만...의사가 단정해보이고 아파보이지 않아야 하는데, 이제 나이도 들고 얼굴도 늙어가니 화장을 안 하면 아파보인다는 것이다. 게다가 알러지 때문에 맨날 눈물 콧물을 흘리니..

결국 돈

난 학부 때 물리를 전공으로 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그때는 공부를 거의 안하고 사진에 미쳐서 나돌아다녔기 때문에 자연과학을 전공했다고 말하기가 참으로 부끄럽고 민망하게 대학을 졸업하였다. 그래서 대학원을 사회학과로 가게 되었고 비로소 공부다운 공부를 좀 한 것 같다. 물론 지금은 그 때 내가 무슨 공부를 했었는지 기억도 안나지만, 난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삶의 태도와 가치를 배웠고 철학을 정립하려고 노력하며 살았던 것 같다. 그 때 난 나름의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 정신과 태도만이 남아있을 뿐이지, 학문적인 내용은 기억도 안난다. 요즘에는 사회과학책을 읽으면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한글인데도 읽기 어려운 그런 수준으로 전락했다. 책을 취사선택해서 골라 읽기조차 어렵다. 그런..

편안한 죽음을 위하여

나보다 젊은 그녀.본성이 참 착한 사람이다. 유방암이 재발된 후 항암제를 종류별로 다 써봤지만 2번 쓰고 나빠지고, 세번쓰고 나빠지고, 그러기를 거듭했다. 증상도 조금씩 나빠졌다.왼쪽 폐에 물이 조금씩 고인다. 관을 넣어 빼보기도 했지만 별로 신통지 않았다. 치료 효과가 신통치 않으니 다른 의사에게 의견을 들어보고 싶다고 해서 소견서를 써주고 사진을 다 복사해 주었다.그러나 이내 다시 왔다. 나한테 미안해서 그렇게 못하겠다고.다른 의사에게 의견을 들어보는 것은 환자의 권리이니 나에게 미안할 필요없다고 했다.나는 내가 치료를 잘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정말 미안했다... 쓸만한 약을 거의 다 써봤지만 효과를 본 약이 없다. 치료를 하다보면 그런 유형이 있다. 그녀가 그랬다. 선생님, 그냥 치료 안하면 안되..

Cancer Genome 의 시대

유전자를 알면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2000년 인간게놈프로젝트 (Human genome project) 가 완성되면서 한 인간을 구성하는 전체 유전자 정보를 알 수 있게 되었다. 1996년의 영화 가타카 (GATACA)에서 묘사한 것처럼 출생시 유전자 정보를 확인하여 알콜중독자가 될 가능성,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할 가능성, 치매에 걸릴 확률 등이 결정된 상태에서 태어나고, 문제가 되는 유전자를 미리 교정함으로써 미래를 안전하고 성공적으로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인간의 유전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유전적으로 인간이 초파리에 비해 아주 우월한 종족은 아니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human genome을 밝히는데 성공했지만 그 성과는 생각보다 혁명적이지 않았는지, 아직 내 삶과..

평생에 걸친 믿음과 행동

2013년 4월 7일 미국 워싱턴 DC에서는 101번째 AACR, American Association of Clinical Research 미국종양연구학회가 열렸다.미국학회지만전 세계에서 암 연구하는 사람들이 다 모인다.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이 학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주로 자연과학 분야의 연구자들이었는데나같은 임상의사들이 참석하기 시작하면서 올해는 등록한 사람만 19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학회가 미국영상의학과학회 (ARA, 5만명), 미국임상암학회 (ASCO, 3만5천명) 에 비하면 규모가 작은 듯 느껴지지만, 이 학회는 임상학회가 아니라 연구 학회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2만명에 육박하는 것은 매우 큰 규모이다. 하긴 나같은 의사-연구라고는 생소한-도 와 볼 정도니... 본격..

솔깃하는 마음

환자가 되면 근거가 없어도 누가 좋다고 하면 나도 해볼까, 나도 한번 먹어볼까 귀가 솔깃하는 것처럼 의사인 나도 학회장이나 집담회에서 세포 및 동물 실험에서 놀라운 종양억제 효과를 보이는 실험결과를 보거나 치료가 잘 된 사례들의 치료 전 후 비교 사진을 보면 매우 혹한다. 비슷한 병변을 가지고 있던 우리 환자가 생각난다. 우리 환자에게도 이 치료를 적용해 보면 안될까? 그런 마음이 든다. 그렇게 혹할 정도로 좋아보이는 결과가 안전하게 환자들에게 적용되려면 3상 임상연구로 그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종양학의 발전은 임상연구의 역사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3상 연구가 진행되기까지 수없는 1상, 2상 임상연구의 실패가 전제되어 있고 성공하는 3상 임상연구는 수없는 3상 연구의 실패로부터..

욕심이 생겼나 봐요

그녀는 참으로 오랫동안 항암치료를 받았다.폐로 전이된 암은 좋아졌다 나빠지기를 여러번 반복했다.숨이 찰 법도 한데 그녀는 내색하지 않았다.각종 임상연구에도 많이 참여하였다.의사가 권유하는대로 치료하는 '모범적인 환자'였다.그녀는 병이 나빠졌으니 약을 바꾸겠다고 해도 별 질문없이 의사의 처방에 따랐다.특별히 설명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게 더 미안해서 내가 설명을 하면 그렇냐면서 고개를 끄덕였다.온갖 항암제를 다 경험하였고 나름의 독성도 있었지만그녀는 그정도는 견뎌야 하는 거 아니냐고 오히려 나를 독려했다. 그녀는 참말로 강한 사람이었다. 치료가 거듭될수록 약제저항성이 생기기 때문에한가지 약제를 유지하는 기간이 점점 짧아지고약을 바꾸는 내가 무능력하게 느껴졌다.나는 늘 마음으로 그녀에게 미안했다.별 말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