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가슴으로 사랑하기 1020

다시 의사하면

다시 레지던트를 하게 되면 무슨 과를 할까?다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의사를 하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지만, 난 의사를 하고 싶다. 이제 다 나았어요.검사 결과가 좋습니다.수술을 다 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막힌 혈관을 잘 뚫었습니다.내시경 검사 하기를 잘 했네요. 궤양이 있었군요. 약을 잘 드시면 완치될 수 있습니다. 좋아졌다완치되었다그런 말을 하면 환자들이 좋아한다.그렇게 좋아하는 걸 보면 나도 좋다. 보람이 있다.허리가 아팠는데 내가 준 약을 먹고 허리가 안 아프고속이 쓰렸는데 내가 준 약을 먹고 속이 안 쓰리고 그렇게 뭔가 환자를 좋아지게 하면 환자도 좋고 나도 좋다.나쁜 일이 있어도 마음 속에 묵혀놓지 않고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홈런타자가 늘 홈런을 치는가? 세번 타석에 서서 2번 삼진아웃..

선생이라는 자리

어떤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적이 있다.선생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뭘 가르쳐 줄려고 하지 않아도 본인 스스로가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면 학생이고 레지던트고 다 따라 배우는 거라고그렇게 배우는게 더 중요한 거라고 말이다. 그러나 본인의 모습에 자신이 없을 땐 아랫 사람이 따라 배울 것이 없으니 내 모습을 그대로 보여줄 수가 없다. 뭔가를 애써서 가르쳐 주어야 나의 허물을 가릴 수 있다. 그렇게 가르쳐 주는 것 마저도 제대로 못하고 시간을 흘려 보내니텀을 마치는 레지던트들에게 늘 미안하다.미안한 마음 때문에 맨날 먹을 것만 사주는데, 그것도 참 면목없을 따름이다. 오늘 그동안 근무를 마치고 다른 파트로 가는 레지던트가 나에게 아로마 향을 선물로 주었다. 방향제 같은 것인데 아까와서 아직 뜯어보지 않았다. 그 선..

환자의 전화

내가 전화번호를 주는 환자들이 가끔 있다.(환자들끼리 전화번호를 공유하기 때문에 내가 전화번호를 알려준 사람보다 더 많은 환자들이 내 번호를 아는 것 같다. 카카오톡에 환자들 이름이 많이 떠있는걸 보면...) 신장, 심장기능이 않좋으면 번호를 알려드린다.빨리 조치해야 할 위기상황을 맞이하기 쉽기 때문이다.임종이 가까왔는데 환자와 가족이 준비가 안된 것 같으면 번호를 알려드린다.불필요한 의학적 처치를 받지 않도록 준비하는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전화번호를 알고 있어도 실재 전화는 별로 안하는 편이다.궁금한 것은 블로그에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고, 문자를 보내시는 분들도 있다. 직접 전화를 하는 분들은 별로 없다. 그냥 내가 주치의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에 안도감을 느끼시는 것 같다. (가끔..

이제 가족이 필요한 때

7년만에 전이된 유방암뼈와 골수로 전이가 되어아주 위험한 상태에서 치료가 시작되었다. 방사선치료와 항암치료.다행히 그녀는 다시 걷고 일상 생활을 할 수있게 되었다.그리고 입원하지 않고 외래에서 항암치료를 받으며 지낼 수 있게 되었다.매번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녀의 몸짓이 점점 가벼워지는 것을 보고 항암제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두가지 항암제를 병용해서 썼기 때문에 한가지 약제를 썼을 때보다 독성도 많고 환자도 힘들법한데 약이 잘 들었는지, 환자는 항암제 부작용으로 고생하는 것보다는 암세포의 무게를 덜어내는 치료의 이득이 더 컸다. 잘 견디며 치료 받았다. 꽤 오래 같은 약제로 치료하였지만결국 내성이 생겼고뼈 전이가 악화되었다.약을 바꾸어 치료하였고또 몇 개월 컨디션이 괜찮았다. 최근 한..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없다

그녀는 아이가 둘인데 매번 임신했을 떄 입덧이 심해 임신 기간 내내 거의 먹지도 못하고 토했다고 한다.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서 지냈다고 했다.임신 때 입덧이 심했던 사람은항암치료 때도 구토 구역감이 심한 경우가 흔하다. 수술을 마치고 항암치료를 4번만 하면 되는 그녀.정작 항암제가 투여되는 시간은 10분도 채 안되지만우리는 아예 입원을 해서 대대적으로 마음 각오를 하고 항암치료를 시작하기로 했다.항암제를 맞고도 퇴원하지 않고 경과를 지켜보았다.3일째 아침부터 그녀는 심한 구역감으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울렁거림이 심해 움직이지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 몇일을 지냈다. 항암제를 투여한지 8일째 겨우 움직일만 해지니 퇴원하였다. 퇴원할 때도 컨디션이 좋아져서 퇴원한 건 아니었다. 병원에 있는 것도 힘들다고 했다...

사실 병원에 와서 잘 쉬었어요

수술 후 항암치료를 하고 1년간 허셉틴을 맞는 그녀.이제 두번만 더 맞으면 허셉틴 치료가 끝난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이제 얼마 안남았네요.많이 힘들고 지겨우셨을텐데 잘 견디셨어요. 사실 허셉틴 맞는 동안은 별 고생이 아니었어요.오히려 허셉틴 맞으러 오는 날이 제 휴가죠.전날 밤에 애기 친정에 맡겨 버리고병원 오는 날은 늦잠자고 병원에 와서 쉬다 가는 기분이에요. 그랬군요.ㅎㅎ 왼쪽 어깨는 좀 어떠세요?제가 재활치료를 좀 받으라고 했는데 다니셨나요? 애기랑 병원 다니는게 더 전쟁이에요. 애기 데리고 병원 가는데 너무 힘들어서 그냥 제가 팔을 막 돌리면서 혼자 운동했어요.그랬더니 좀 나은거 같아요. 어린 아들이 있는 그녀.직장 생활을 하다가작년에 치료받으면서 그만두었다.자기 공부, 자기 직장일만 하던..

딩동 문자 메시지

우리 유방암 환자들은 전이가 되어도 자기 생활을 잘 꾸려가시는 분들이 많다.엄마로서, 아내로서 집에서 당신이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왠만하면 입원을 잘 안하려고 하시는 분들이 많다. 같은 4기여도난소암이나 자궁암 등 여성암 환자들은 상대적으로 컨디션이 나쁘다. 그래서 입원이 잦다.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는다. 나는 가능하면 자기 생활력을 높이고, 병원 생활보다는 집에서 생활하면서 지내는 것이 장기적으로 환자에게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입원을 별로 권유하지 않는 편이다. 병원 생활을 오래 하는 것은 환자에게 별로 좋지 않다. 입원을 하더라도 급한 문제만 해결하고 퇴원하시도록 하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환자가 입원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컨디션이 안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딩동 문자메시지가 왔다.퇴원한지 한..

병원에 오니 살거 같아요

별로 흔하지 않은 암Malignant Mixed Mullerian Tumor (MMMT), 다른 말로 Uterine carcinosarcoma 라고도 한다. 여성생식기, 주로는 자궁에서 기원하는 암으로 세포의 초기 미분화단계에서 암이 발생하여 carcinoma 와 sarcoma 의 두가지 성분을 다 가지고 있는 암이다. 진단명도 어렵고 병도 어려워서 환자에게 설명하기도 어렵다.수술적 제거 이외에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는 그 효과가 입증되어 있지도 않고 표준치료도 없다.내가 만나는 환자들은 수술 후 재발한 환자들이니매번 고민스럽다.표준치료가 없으니적절한 임상연구를 하는게 필요한데환자 수가 너무 적으니 임상연구를 계획하기도 힘들다.그래서 늘 애타는 마음으로 비교적 많이 쓰이는 약제를 조합하여 항암치료를 한다...

집중력 저하

토요일, 가운을 입지 않고 병원을 돌아다닌다. 내시경 접수하고 검사 전 설명듣고 돈 내고 약 타고. 설명을 들으면서 뭔가 물어보고 싶은게 머리에 떠올랐는데 설명을 다 듣고 나니 그게 뭐였는지 기억이 안난다. 아... 물어볼게 있었는데.... 잠시 나에게 시간이 허락되었지만 난 결국 생각이 안난다. 나중에 궁금한 게 있으면 이 번호로 전화하세요. 나는 안다. 이 번호로 전화하면 얼마나 연결이 안되는지... 가운을 입지 않고 병원을 돌아다니는 나는 영락없는 아줌마 보호자다. 영수증을 받아들고 내시경 전처치 약을 밖에 있는 약국에 나가서 사야하는지 원내에서 받을 수 있는건지 한참을 들여다 본다. 아, 여기 약국 대기 번호가 있구나. 원내에서 타는 건가보다. 약국앞에서 약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내가 뭘 질문할려..

삶은 측은지심으로

유방암 클리닉 환자 중에 한달에 한번 혹은 두번씩 저 멀리 오지 마을을 방문하여 안과검사를 하고 백내장 수술이 필요한 어르신들을 찾아 수술지원을 연결하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시는 분이 있다. 한국실명예방재단에서 하는 활동인데 우리 환자는 여기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고 계신다. 그녀는 수술한지 1년만에 폐전이를 진단받고 심각한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고생했지만 지금은 병이 잘 조절되고 2년을 넘겼다. 컨디션도 많이 좋아지셨다. 환자는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하였다. 1박 2일로 봉사활동을 하고 오면 감기, 몸살, 요로감염이나 구내염 등이 재발하는 것 같다. 컨디션이 많이 좋아졌다고 해도, 아직 면역체계는 정상은 아닌가 보다. 그래도 그녀는 굳세게, 한번도 빠지지 않고 의료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입가가 부르터 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