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가슴으로 사랑하기 1020

세포와 사회 사이에서

염색을 했는데이론상 핵에 염색될 줄 알았는데 세포질에 염색이 더 많이 된 걸로 나왔다.내가 생각한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이리저리 고민을 해 본다.그동안 별로 연구가 많이 된 마커가 아니니 기존 연구를 다 믿을 수도 없고내 결과가 더 맞는 말이라는 주장을 하려면 추가 실험을 하거나 다른 확고한 이론을 찾아야 한다.구굴링을 하고 펍메드를 찾아 헤맨다.아무래도 이걸로는 미흡하다.추가 실험을 해 봐야겠다.그런데 돈이 없네?연구비를 따야겠다. 그럴려면 연구계획서를 써야 한다. 박터진다. SPSS를 돌려보니 별로 신통치않다. 뭐랑 뭐랑 연결해서 다시 분석을 해보면 좋겠는데 어떤 방법을 써야 할지 잘 모르겠다.또 구글링이랑 펍메드 검색을 해 본다.비슷한 방법론을 쓴 동기들을 찾아본다.다른 과 누군가가 이런 쪽을..

이의제기도 하지 말라

언제인가 기억은 안나지만 작년 언젠가 내가 한 처방을 삭감한 심평원의 결정에 대해이의신청을 하였고 그것이 인정되어 삭감이 취소되고 환급을 받았던 날 진정 기뻐했던 기억이 있다. 논문이 채택된것 보다 더 기뻤다. 이의신청을 하기 위해 내가 한 의료 행위가 의학적으로 적절하며 적법한지에 대해 증명해야 했고 이를 위해 수많은 논문과 관련 증거들을 명시하여 결국 인정을 받게 되었다. 환급받은 액수의 문제가 아니라내가 자존심을 걸고 의사로서 일한다는 것, 다른 이해관계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환자의 치료를 위해 노력한 결과에 대해 부당한 평가를 받았다는 것 때문에 난 이의제기를 한 것이다. 그렇게 이의제기를 하지 않으면 해당 조항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환자를 위해서 불리한 조항인데도 그냥 수용함으로써 궁극..

요양병원

이제 우리병원에 계속 입원해 계시는 것이 별로 의미없을 것 같아요. 집으로 가시거나 집 근처 요양병원을 알아봐서 글로 퇴원하세요. 내가 이렇게 말하면 순순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환자는 단 한명도 없다. 다니던 병원 놔두고 왜 다른 병원으로 가란 말인가. 게다가 이제 컨디션도 별로 안 좋은데. 내 검사 기록, 의사의 소견, 여러 과 협진 결과 등 나의 병력과 관련된 모든 정보들이 다 여기 있는데 어디로 가란 말인가. 그러나 나는 환자를 보내야 한다. 그리고 상태가 더 나빠져도 우리 병원에 오시지 말고 거기서 임종하시라고 미리 말씀드려야 한다. 3차 의료기관은 임종하러 오는 곳이 아니니까. 나는 그렇게까지는 말을 잘 못한다. 계셔 보시다가 힘들면 오세요. 우유부단하게 그렇게 말하고 환자를 억지로 퇴원시킨다...

마음 속 묵은 짐을 하나 덜어내며

작년에 내 파트에서 일하던 전공의가 그때 나와 함께 준비했던 스터디 결과를 가지고 초록을 준비하여 올해 열리는 미국암학회(ASCO)에 제출하였는데 초록이 채택되었다!!! ASCO는 전 세계의 암 관련 연구자, 임상의사들이 다 참여하는 학회라서 매년 3만 5천명 이상이 참여하는, 종양학 학회 중에 가장 큰 학회다. 그래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초록을 내기 때문에 채택이 되기도 어렵다. 내 아이디어로 출발해서 자료를 정리해 초록을 냈는데 채택이 되어서 정말 기뻤다. 아직 논문을 완성한 것도 아니고, 논문이 좋은 저널에 실린 것도 아니고, 초록도 단지 포스터 구연에 불과하지만, 나는 아주 기뻤다. 내과 전공의 모두에게 해외 학회 참여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과에서 비행기값 정도는 지원을 해주지만, 기타..

N of 1

http://www.nature.com/news/cancer-researchers-revisit-failed-clinical-trials-1.12835 2013년 4월 18일자 Nature News로 실린 기사다. 예후가 좋지 않은 말기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2000년대 초반 한 임상연구.Farnesyltransferase inhibitor 라는 약으로 임상연구를 했는데이 약은 동물실험에서 매우 효과가 좋은 것으로 결과가 나와서 큰 기대를 모으고 시작되었다.(내가 관심을 갖는 스타틴의 작용 기전도 farnesyltransferase 라는 효소를 억제하기 때문에 일부 항암효과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공부를 해 본 물질이기도 하다) 그러나 막상 임상시험이 진행되면서 이 약제의 독성과 부작용이 효과보다 더 ..

연구간호사들과의 동맹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여러 임상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나는 6명의 연구간호사들과 함께 일을 한다. 사실임상연구간호사는 사실상 매우 전문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고급(!) 직업이다. 임상연구를 이해하는 것,임상연구를 진행하는 병에 대해 전문가가 되는 것, 기존의 표준 약이 아닌 신약을 투여하는 환자에 대한 독성 평가 및 보살핌,임상 연구 특이적인 검사와 투약,이런 것들은 일반 간호사에 비해 훨씬 많은 학습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의사의 진료를 도우면서도 환자의 안전을 책임지고 예상되는 부작용까지도 대비해는 등 연결 고리역할을 하게 된다.무엇보다 임상연구라는 점 때문에 환자의 안전에 주의를 기울여야 되고그래서 24시간 항시, 핸드폰으로 환자의 콜을 받아야 한다.임상연구를 의뢰한 기관, 때로는 외국 회사와도 ..

관계역전

이수현 샘치료를 시작한지도 일년이 되었어요.그동안 힘들고 지치고 그랬지만쌤 덕분에 마음만은 편하게 의지하면서 지낼 수 있어서 감사했어요.^^일년만에 다시 항암하지만 그래도 기운내어 다시 도전하려구요. 헤헷.요사이는 하루하루 그렇게 한달, 또 일년씩 소중하고 평범하게 지내는 것의 고마움이랄까... 느끼고 있답니다.문득문득 올라오는 요사이 쌤 글에 너무 많이 지친 모습에 저도 속상해요.울 쌤을 괴롭히는 악의 무리들 멀리 쫒아내야 힐텐데 말예욧!달달구리 드시고 쌉싸름한 일상에 하이킥을 날려버리시길 바라며,지난 일년동안 처럼 올 한해도, 또 다음 한해도, 우리 굴하지 말고 도전 도전해요!곁에서 저도 늘 힘 보탤게요. 내가 그녀를 돌보는 건지그녀가 나를 돌보는 건지관계가 역전된 것 같다.그녀는 나보다 열살이나 어..

애를 써도 꼬일 건 꼬이나 보다

유방암 2기,수술하고 항암치료 4번만 하면 된다고 했다. 유방암이 의심되어 검사를 하는 동안 뭔가 소소한 이상들이 발견되었다.환자는 그런 검사를 하는 중에 흔하지 않은 유전적 질환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피부 병변이 있었지만 신경쓰지 않고 살아왔는데 그게 유전성을 갖고 있는 질환과 관련이 있는 증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렇지만 그 병의 악화로 인하여 죽고 사는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걸 설명했기 때문에 환자는 놀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유방암은 유방암대로 수술하고 항암치료를 막 시작한 참이다. 이과 저과에서 유전적 질환이니 지금 증상이 없어도 이것 저것 검사하라는 것이 많았나 보다.암과 직접 관련된 것이 아니라 중증진료 혜택이 되지 않아 검사비도 비쌌..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려치고 싶을 때

레지던트 때는 세상을 바라보는 폭이 좁은 것 같다.내가 의사라는 사회적 지위를 겨우 획득하고 그 자리를 유지하는데 급급하다.아는 것도 확실하지 않고아는 것을 직접 환자를 대상으로 적용하는 과정에서무수한 당황스러움, 두려움 등이 교차한다.모르면 째버리면 되는, 그런 무책임한 행동이 용서되지 않는다.오죽하면 내 1년차 때의 목표가 '내 실수로 환자를 죽게 하지는 말자' 였겠는가. 익숙해질만 하면 모르는 상황이 발생하고다시 익숙해질만 하면 새로운 상황이 발생하고그런 수천번-진짜 수천번-의 학습과 경험을 통해의사가 되기 때문에 그렇다.아무리 모르겠어도 그게 내 일이라면 계속 해야 하고아무리 하고 싶지 않아도 단 한순간도 비겁하게 물러서지 못하고 계속 해야 한다.모르니까 구박받는 것 쯤은 루틴이다. 자존심? 그런..

의사 때려 치고 싶을 때

아무리 윗 사람이 날 괴롭히고아무리 내가 사고를 많이 쳐도난 의사를 때려 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물론 더 이상 못하겠다는 한계를 느낀 적은 많다. 대개 레지던트 때 도망을 가는 유형은 외재적 요인 1> 윗사람이 쓸데없이 갈굴 때2> 사사로운 것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계속 혼낼 때3> 나도 잘못한 줄 알고 있는데 계속 야단칠 때4> 감정을 실어서 혼낼 때 4> 윗년차가 나에게 복수할려고 한다는 느낌이 들 때 5> 우리 병원에 만연한 모순과 비리와 잘못을 나 개인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느낄 때6> 문제가 있다고 느껴도 의사소통 구조가 없어서 해결하기 어려울 때7> 죽어라 일을 해도 일이 끝나지 않고 계속 쌓일 때 8> 그런 시간이 몇달씩 계속 되고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내재적 요인 1>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