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여러 임상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나는 6명의 연구간호사들과 함께 일을 한다.
사실
임상연구간호사는
사실상 매우 전문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고급(!) 직업이다.
임상연구를 이해하는 것,
임상연구를 진행하는 병에 대해 전문가가 되는 것,
기존의 표준 약이 아닌 신약을 투여하는 환자에 대한 독성 평가 및 보살핌,
임상 연구 특이적인 검사와 투약,
이런 것들은 일반 간호사에 비해 훨씬 많은 학습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의사의 진료를 도우면서도
환자의 안전을 책임지고 예상되는 부작용까지도 대비해는 등 연결 고리역할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 임상연구라는 점 때문에 환자의 안전에 주의를 기울여야 되고
그래서 24시간 항시, 핸드폰으로 환자의 콜을 받아야 한다.
임상연구를 의뢰한 기관, 때로는 외국 회사와도 접촉을 해야 한다.
임상연구의 안전한 진행을 위해 원내 IRB의 감사와 요청사항을 실행해야 하고
서류작업을 해야 한다.
하는 일도 다양하고 여러 능력이 필요하다.
성격도 꼼꼼해야 한다.
그러면서 환자에게도 잘 해야 한다.
3교대 근무가 주는 업무의 가중함 때문에 병동 간호사로 일하려는 사람이 부족한 것에 비해
연구간호사는 간호라는 본질적인 역할을 살리면서도 보다 전문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매력적인 직업이 될 수 있다. 실재 병동 간호사로 일하면서 임상연구 간호사들이 일하는 걸 보면서 이 일을 해보고 싶다고 지원해 오는 사람들도 있다.
외국에서 열리는 임상시험의 연구자 미팅에 가보면
오랫동안 전문적으로 임상연구간호사로 일해온 이들을 만날 수 있다.
흰 머리가 드문 드문 섞여 있고 노안이 와서 돋보기로 문서를 들여다 보지만
경험이 많은 그들은
이번 연구의 모태가 되었던 예전 임상연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고
그동안 일해본 경험이 많기 때문에
이번에 시작하려는 임상연구의 장단점, 예상되는 어려움 등을 예측하는 능력이 나보다 훨씬 탁월하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단지 능력 뿐만 아니라 노력이 축적된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 연구간호사라는 직업집단 자체가 신생 직업군이다.
그리고 정규직으로 병원에 소속되어 근무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다들 임시계약직이거나 혹은 교수에게 소속된 아르바이트 하는 사람처럼 소속이 불안정하다.
4대 보험 적용도 안되고
정규직 전환도 어렵고
월급도 별로 많지 않다.
그래서 능력이 우수한 간호사들이 있어도
오래동안 안정적으로 일하지 못하고 적당히 경험을 쌓으면 안정적인 신분과 급여가 제공되는 회사를 찾아 떠난다. 다들 1년 정도 지나면 회사로 간다. 지금 나와 함께 일하는 유방암 임상연구 간호사들 중에 두 명은 우리 병원에서 일한지 4년이 넘었다. 베테랑들이다. 계속 같이 일하면 좋겠다.
연구간호사들은 매번 독성평가를 꼼꼼하게 하고 환자에게 부작용이 생기면 빨리 연락을 받기 때문에 진료하는 나에게 큰 도움이 된다. 종양평가 결과나 각종 검사 결과도 꼼꼼히 잘 챙기고 기록으로 남긴다. 내가 진료시간에 미쳐 해주지 못한 설명도 잘 해주고, 환자의 검사 일정이나 투약 일정 등에 대해서도 교육을 잘 해주기 때문에 환자에게도 도움이 된다. 무슨 문제가 있거나 궁금한 점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연구간호사에게 전화로 상의할 수 있기 때문에 환자들도 든든해 한다.
이들과 함께 환자를 보고,
진료 전에 미리 상의하고
문제가 생기면 같이 해결하고
그렇게 함께 환자를 진료하는 동료라는 생각을 갖는다.
지난 3월부터 한달에 한번씩 연구간호사 교육을 하고 있다.
연구간호사들이 일하면서 평소 궁금했던 점들에 대해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하는 시간이 되기도 하고
혹은 내가 평소에 그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 - 환자에 대한 태도, 임상연구 스크리닝할 때 주의할 점, 의무기록 작성법, 환자에게 부작용 설명할 때 부족한 점들 - 을 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내가 설명하는 내용들을 열심히 기록하고 질문하면서 공부하는 그들을 보니
마음이 뿌듯했다.
선생 노릇 한것 같다.
성실하게 잘 따라와 주는 그들이 고맙다.
그들과의 동맹관계가 우리 환자를 위한 질 높은 진료를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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