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nature.com/news/
2013년 4월 18일자 Nature News로 실린 기사다.
예후가 좋지 않은 말기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2000년대 초반 한 임상연구.
Farnesyltransferase inhibitor 라는 약으로 임상연구를 했는데
이 약은 동물실험에서 매우 효과가 좋은 것으로 결과가 나와서 큰 기대를 모으고 시작되었다.
(내가 관심을 갖는 스타틴의 작용 기전도 farnesyltransferase 라는 효소를 억제하기 때문에 일부 항암효과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공부를 해 본 물질이기도 하다)
그러나 막상 임상시험이 진행되면서 이 약제의 독성과 부작용이 효과보다 더 큰 것으로 나타나 임상시험은 중단되었고 회사는 이 약제를 포기하였다. 개발한 약을 포기하는 것, 제약회사로서는 여러모로 치명적인 손해를 입는다. 그러나 이런 일은 흔하다. 성공한 임상연구보다 실패한 임상연구가 더 많기 때문에 특별한 사건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당시 이 연구에 참여했던 한 췌장암 환자 중 한명에서는 진행성 암덩어리가 사라져 버렸다. 그 환자는 지금도 살아있다. 과연 그 약은 이 환자에서 어떤 작용을 했기 때문에 이렇게 성공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을까? 현재 미국암연구소 (NCI)는 당시 임상연구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에 이렇게 예외적으로 좋은 결과를 경험한 사례들을 찾고 있다. 누가, 왜 이득을 얻게 되었을까? 드물지만 효과를 본 그 사람을 다시 연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N of 1 study 이다.
일반적으로 임상연구는 통계적 가설을 가지고 시작한다.
원래는 이러이러한 정도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새로운 약으로 치료할 경우 얼마 정도의 효과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는 가정을 기각할 것이냐 채택할 것이냐가 결정된다. 가정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sample size, 임상연구 기간 및 각종 통계적 가정을 더하여 나온 결과의 유의성을 판단하게 된다. 그리고 연구자는 자신의 통계적 가정이 채택되지 않고 궁극적으로 연구결과가 '실패'로 판정되면 그 주제를, 그 약을, 마음속으로 접어버리고 싶어한다. 왜 실패 했는지, 얼마나 효과가 없었는지에 주로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런데 늘 예외적으로 반응이 좋은 환자가 있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좋은 결과를 보이는 것이다. 즉 실패한 임상연구라도 그 안에서는 누군가 도움을 받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N 중에 1이 되는 사람에서 원인을 찾는 연구가 가능하게 된 것은 genomic study가 방법론적으로 가능해 졌기 때문이다. 어떤 유전체의 변화나 차이가 특정 약제에 반응율을 높이게 된 것인지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 뉴욕의 Memorrial Sloan-Kettering cancer center 에서 일하는 David Solit 도 예전에 진행되었던 실패한 임상연구, 즉 방광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evelolimus 임상연구에서 대부분의 환자에서 치료반응이 없었지만, 그중 드라마틱한 반응을 보였던 환자의 조직을 가지고 유전체 연구를 하였다. 총 17,136개의 돌연변이가 발견되었고 그 중 TSC1 gene 의 돌연변이가 발생한 경우에 everolimus를 사용한 경우 종양전달신호를 shut down 시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임상연구에 참여했던 환자 중 가용한 조직이 있었던 109명 가운데 8%에 해당하는 환자에서 TSC1 돌연변이가 관찰되었고, 그러한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현재 방광암 환자 중 TSC1 돌연변이가 있는 환자만을 대상으로 한 everolimus 임상연구를 다시 시작하였다. Genomics technique이 발전함에 따라 가능한 일이 되었다.
치료가 잘 되는 데에도
치료가 안 되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그러한 원인을 환자별로 찾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sequencing 비용을 낮아지고 있는데, 최근 그 속도가 놀랍도록 빨라지고 있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빠른 속도라고 한다. (얼마전까지 미국은 한명당 만불이라고 했다가 이제 오천불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사람 시퀀싱하는데 천불이 목표라고들 한다) 어쩌면 sequencing 은 이제 돈만 있으면 비싸고 성증좋은 시퀀싱 기계 사서 누구나 해 볼 수 있는, 일종의 테크닉이 될 지도 모르겠다. (나는 직접 sequencing 을 해서 자료를 분석해 본 경험이 없어, 이런 말이 얼마나 무식한 말인지 잘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나온 유전자 정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임상적으로 유의하게, 질병의 기전에 맞게 적절한 분석을 할 줄 아는 사람. 이제 그런 사람이 우수한 의료진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즉 문제는 Bioinformatics 이다.
한명당 1 테라바이트 가까운 정보가 쏟아지는 유전체 분석. 어떻게 제대로 분석할 것인가.
임상적인 함의와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고려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면
'어떤 gene이 있는데, 통계적으로 그 gene은 못생긴 사람에게서 많이 발생하고,
그 gene이 있으면 최초 암 발생 몇 년 후 간 전이로 재발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명제를
일반화할 수도 있는 것이다. '
즉 못생긴 사람 중 어떤 gene 돌연변이가 자주 발생하는데 그들에서 간전이가 흔하다는 설명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N of 1
우리 환자 누구나가 되고 싶어하는 그 1.
나만은 통계적 가정의 정규분포에 속하지 않고 , 평균에서 동떨어진, 좋은 예후를 보이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믿는다.
유전적으로 설명가능하다는 얘기다.
환자가 잘 치료받고 좋아지고 잘 살기 위해서는 많은 요인이 필요하다.
그런 요인 중에 이제 유전자가 설명하는 비율이 점점 커지는 것 같다.
왠지 마음에 안 들지만 자꾸 공부하게 된다.
아마 과학기술의 발전이라는 대세를 내 마음의 경향성만으로 배척할 수는 없나 보다.
다만 생물학적 결정론으로 빠져서는 안 되겠지.
우리 몸 속에 유전자 시계가 애초부터 각인이 되어 내장된 채 존재하고 있다가, 적당한 시간이 되면 유전자가 작용하는 메커니즘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암 유전자라는 것은 다른 속성의 물질로 '변형'되는 것이 아니라 원래 그런 돌연변이 상태로 있었던 것이 '발견'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맞춰진 시계대로 사는 것. 생물학적 결정론이 되기 쉽다.
Genomics 관련된 공부를 하다 보면
현실과 동떨어진 공부만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다가
한편으로는 빠른 속도로 우리 진료실을 침투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각종 치료에 저항성을 보이고 다른 치료적 대안이 없는 불응성 환자들을 대상으로 유전체 검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새로운 sensitive 한 약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화창한 주말. 이제 공부 끝.
나의 지친 유전자들을 햇빛에 노출시키고 쉬게 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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