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세포와 사회 사이에서

슬기엄마 2013. 5. 5. 22:57


염색을 했는데

이론상 핵에 염색될 줄 알았는데 

세포질에 염색이 더 많이 된 걸로 나왔다.

내가 생각한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이리저리 고민을 해 본다.

그동안 별로 연구가 많이 된 마커가 아니니 기존 연구를 다 믿을 수도 없고

내 결과가 더 맞는 말이라는 주장을 하려면 추가 실험을 하거나 다른 확고한 이론을 찾아야 한다.

구굴링을 하고 펍메드를 찾아 헤맨다.

아무래도 이걸로는 미흡하다.

추가 실험을 해 봐야겠다.

그런데 돈이 없네?

연구비를 따야겠다. 

그럴려면 연구계획서를 써야 한다. 

박터진다. 


SPSS를 돌려보니 별로 신통치않다. 

뭐랑 뭐랑 연결해서 다시 분석을 해보면 좋겠는데 어떤 방법을 써야 할지 잘 모르겠다.

또 구글링이랑 펍메드 검색을 해 본다.

비슷한 방법론을 쓴 동기들을 찾아본다.

다른 과 누군가가 이런 쪽을 좀 잘 안다고 한다. 

전화를 걸어서 물어본다. 만나서 설명을 들어 본다.

아무래도 STATA 로 분석을 하는게 좋겠다고 한다. 

그런데 난 STATA를 잘 모른다. 

STATA를 잘 하는 사람을 찾아본다. 


환자가 자꾸 붓는다.

원인을 찾아 본다. 애매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 이것 저것 검사를 해 본다.

닥터 하우스 만큼은 아니어도 나름 결단을 내려 검사하고 치료해 본다.

그런데 시원치 않다.

환자는 계속 힘들어 한다.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을 것 같은 다른 과 선생님들과 상의를 해 본다.

이러 저러한 의견을 주시지만 그걸 다 환자에게 적용하면 환자가 너무 힘들거 같다.

아무리 협진으로 좋은 의견을 들어도 결국 최종 결정은 내가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게 좋을지 고민이다. 



세포를 보고

장기를 보고 

환자를 보고

의사가 되면

 여기까지도 잘 보기 힘들다.

그만큼도 책임있는 사람이 되기 힘들다. 늘 노력해야 한다. 늘 공부해야 한다. 자존심을 지키려면. 


그런데 

그런 것들만 봐가지고는 제대로 된 의사 역할을 할 수 없다.

환자, 의사, 병원이 놓인 사회적 맥락, 제도, 국가의 정책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예의 주시해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산으로 가는 일들이 많다.

그래서 적절하게 사회적 발언을 할 줄도 알아야 한다.

사회적으로 책임있는 전문가 집단이 되기 위해서,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전문가 내부적인 자정의 노력과 발전을 위한 집단적, 체계적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도덕적인 존재여야 하고, 의사소통도 잘 하는 사회적인 존재여야 한다.

자기 세계에 갇혀 살면 안되고 자기 아집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철학적으로 올바른 가치관을 지향할 수 있어야 한다. 


전문가라고 하면 자기 영역 내에서의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이 있으면 된다.

그러나 의사가 전문가이려면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는 면에서, 그것도 아픈 사람이라는 취약한 존재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지식 그 자체를 넘어 포괄적인 이해와 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훌륭하고 전문적인 의사'는 되기가 어렵다. 


대학병원 의사로 살아남으려면

세포들하고 더 열심히 부대껴야 한다.

환자, 가족, 사회, 정책, 제도, 국가 등의 존재를 잠시 잊고

세포들이 보내는 시그널을 잘 쫒아 논문을 빨리, 많이, 그리고 질 높게 써야 한다. 


못하겠다면?


자기 그릇의 크기를 측정해보고

깨지기 전에 내려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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