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색을 했는데
이론상 핵에 염색될 줄 알았는데
세포질에 염색이 더 많이 된 걸로 나왔다.
내가 생각한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이리저리 고민을 해 본다.
그동안 별로 연구가 많이 된 마커가 아니니 기존 연구를 다 믿을 수도 없고
내 결과가 더 맞는 말이라는 주장을 하려면 추가 실험을 하거나 다른 확고한 이론을 찾아야 한다.
구굴링을 하고 펍메드를 찾아 헤맨다.
아무래도 이걸로는 미흡하다.
추가 실험을 해 봐야겠다.
그런데 돈이 없네?
연구비를 따야겠다.
그럴려면 연구계획서를 써야 한다.
박터진다.
SPSS를 돌려보니 별로 신통치않다.
뭐랑 뭐랑 연결해서 다시 분석을 해보면 좋겠는데 어떤 방법을 써야 할지 잘 모르겠다.
또 구글링이랑 펍메드 검색을 해 본다.
비슷한 방법론을 쓴 동기들을 찾아본다.
다른 과 누군가가 이런 쪽을 좀 잘 안다고 한다.
전화를 걸어서 물어본다. 만나서 설명을 들어 본다.
아무래도 STATA 로 분석을 하는게 좋겠다고 한다.
그런데 난 STATA를 잘 모른다.
STATA를 잘 하는 사람을 찾아본다.
환자가 자꾸 붓는다.
원인을 찾아 본다. 애매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 이것 저것 검사를 해 본다.
닥터 하우스 만큼은 아니어도 나름 결단을 내려 검사하고 치료해 본다.
그런데 시원치 않다.
환자는 계속 힘들어 한다.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을 것 같은 다른 과 선생님들과 상의를 해 본다.
이러 저러한 의견을 주시지만 그걸 다 환자에게 적용하면 환자가 너무 힘들거 같다.
아무리 협진으로 좋은 의견을 들어도 결국 최종 결정은 내가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게 좋을지 고민이다.
세포를 보고
장기를 보고
환자를 보고
의사가 되면
여기까지도 잘 보기 힘들다.
그만큼도 책임있는 사람이 되기 힘들다. 늘 노력해야 한다. 늘 공부해야 한다. 자존심을 지키려면.
그런데
그런 것들만 봐가지고는 제대로 된 의사 역할을 할 수 없다.
환자, 의사, 병원이 놓인 사회적 맥락, 제도, 국가의 정책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예의 주시해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산으로 가는 일들이 많다.
그래서 적절하게 사회적 발언을 할 줄도 알아야 한다.
사회적으로 책임있는 전문가 집단이 되기 위해서,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전문가 내부적인 자정의 노력과 발전을 위한 집단적, 체계적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도덕적인 존재여야 하고, 의사소통도 잘 하는 사회적인 존재여야 한다.
자기 세계에 갇혀 살면 안되고 자기 아집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철학적으로 올바른 가치관을 지향할 수 있어야 한다.
전문가라고 하면 자기 영역 내에서의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이 있으면 된다.
그러나 의사가 전문가이려면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는 면에서, 그것도 아픈 사람이라는 취약한 존재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지식 그 자체를 넘어 포괄적인 이해와 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훌륭하고 전문적인 의사'는 되기가 어렵다.
대학병원 의사로 살아남으려면
세포들하고 더 열심히 부대껴야 한다.
환자, 가족, 사회, 정책, 제도, 국가 등의 존재를 잠시 잊고
세포들이 보내는 시그널을 잘 쫒아 논문을 빨리, 많이, 그리고 질 높게 써야 한다.
못하겠다면?
자기 그릇의 크기를 측정해보고
깨지기 전에 내려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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