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TV를 보지 않는다.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도 안 좋아하고
여행 프로그램이나 야구랑 뉴스 그 정도 봤었는데
이제 그나마도 안본다.
야구하는 시간에 집에 있어본 지도 오래 되었다.
TV 앞에 앉아도 TV를 끄는 편이다.
재미없고 시끄러워서.
밤에 늦게 집에 갔는데 잠이 안 오면 살인이나 스릴러를 주제로 하는 미드만 본다.
잠을 잘려고 TV를 켠다. 볼륨은 0으로 하고 화면만 본다. TV 틀어놓고 자다가 맨날 엄마한테 혼난다.
요즘은 그나마도 재미가 없다. 뭐든 재미가 없다.
대신 라디오를 듣는다.
아침 출근할 때 라디오에서 하는 정시뉴스를 듣는다.
뉴스에서 새로운 소식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늘 비슷하다. 일기예보와 교통상황이 가장 유용한 정보.
출근하면서 아침 6시 15분에 시작하는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듣는 것이 낙이었는데
손석희가 그만 두었으니 그거 들으며 출근하는 재미도 없어졌다.
지난 학회 webcast나 틀어놓고 들으며 출근해야겠다.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라디오 프로그램은 밤 12시-2시까지 정선희가 진행하는 '오늘같은 밤'이다.
그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이다. 난 정선희의 왕 팬이다. 정선희는 정말 똑똑하고 머리가 좋다. 머리가 좋지 않고서는 그런 개그를 할 수 없다. 그렇게 재치있는 인간을 본 적이 없다. 그녀의 개그는 대본에도 없는 애드립으로 넘쳐난다. 너무 웃기다. 밤에 퇴근하면서 듣는데, 혼자 깔깔대면서 하루의 스트레스를 푼다. 너무 재미있다. 아주 어린 걸그룹이나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연예인과 대담할 때도 그녀가 톡을 하면 너무 재미가 있다. 그걸 들으려고 일부러 그 시간에 퇴근하기도 한다.
(아주 드물게) 진료실에서 연예인을 만날 기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난 적당히 연예인을 보고 아는 척도 하면서, 이렇게 만나뵙게 되서 영광이라고 인사도 하고, 그냥 그렇게 대접을 해 준다. 모르는 척 하는게 더 어색하니까. 그렇지만 연예인을 만났다고 해서 특별히 부담이 되거나 떨리거나 그렇지는 않다. 연예인들은 누군가의 보호자로 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 환자랑 병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보면 보호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차피 빨리 진료보고 다음 환자 봐야 하는 압력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제 연예인을 만나도 감흥이 오는 나이는 지난 것 같다. 그런데 정선희를 만나면 안 그럴 것 같다. 난 그녀의 팬이니까. 정말 꼭 만나보고 싶은 연예인이다. 유방암 건겅검진 안 오시나...
물론 내가 아무리 정선희를 좋아한다 해도 이 나이에 방송에 사연을 보내거나 정선희를 검색어로 해서 정보를 얻어내거나 하는 그런 열정적인 행동은 하지 않한다. 그래서 난 그냥 매일 밤 그 시간에 라디오를 들으며 낄낄대며 웃고 좋아하는 것 이상은 안한다. 과거 그녀의 행적이나 히스토리는 잘 모른다.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너무너무 힘들었을 거라는 거, 그걸 극복하고 자기가 살아갈 길, 먹고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연예계의 개그우먼이라는 사실이 그녀에게는 매우 힘들고 슬펐을 거라고 상상할 뿐이다. 그런 아픔이 여전히 그녀의 마음 속에 있을게 분명한데, 그렇게 재치발랄한 입담으로 세상과 사회, 그리고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녀의 센스가 부럽고도 멋지다.
엊그제 김제동이 같이 톡을 하는 사람으로 출연했다. 김제동이 매년 토크 콘서트 다니며 있었던 에피소드도 얘기해주고, 요즘 사는 이야기도 나누는 그런 수다 타임이었다. 난 그에 대해서도 별로 아는 바가 없지만 안철수, 박경철과 같이 청춘 콘서트를 진행했다는 것, 대선 때 안철수를 지지했다는 것, 노무현 장례식 사회를 봤다는 것 등으로 비추어 보건대 그는 사회 의식이 높은 개그맨일 거라고 짐작할 뿐이다. 엊그제 들은 라디오에서는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 그냥 소소한 생활 이야기였다.
김제동은 요즘 청소년들, 특히 고등학생들이 입시부담 때문에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고 재미없이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매우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쉽게 위로해 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고등 학생 시절에 느끼는 부담이라는 세상 살다보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니라며, 그래도 그때가 좋은 때라며 정신차리라고, 세상에 나만 힘들고 고달픈거 아니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고 했다. 나이스! 다만 아이들 마음이 편안히 쉴 수 있는 쉼터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김제동은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고궁 콘서트를 기획중인데, 정선희가 우정출연, 재능기부 해주겠다고 즉석에서 약속했다. 정선희는 아이들과 그런 시간을 함께 가지면 의미있고 행복한 시간이 될거 같다고 했다, 김제동은 요즘 자신이 행복하다고 했다.
내 나이 또래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지금 살아가는 내 모습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나의 행복을 위해서도 좋지만, 다른 누군가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믿는 것.
그렇게 하루하루를 새로운 마음으로 기획하고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 것.
그걸 위해 바쁘게 시간을 쪼개 쓰면서도 기쁜 마음을 갖는 것.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그들이 부러웠다.
멋지다고 생각했다.
행복은 그렇게 자기가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선물로 주는 것도 아니고, 노력없이 저절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인생의 반을 꺽어 살아왔는데
아직도 죽는 소리치고, 힘들다고 아우성치고, 남을 탓하고 환경을 탓할 수는 없는 것 같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삶을 사랑하기 위해 살려고 노력해도 부족한 인생인데
쓸데없는 데 마음쓰고
무의미한 일 하느라 시간쓰며 살지 말아야지 결심한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거고
No면 No인 것이다.
그냥 그렇게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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