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참으로 오랫동안 항암치료를 받았다.
폐로 전이된 암은 좋아졌다 나빠지기를 여러번 반복했다.
숨이 찰 법도 한데 그녀는 내색하지 않았다.
각종 임상연구에도 많이 참여하였다.
의사가 권유하는대로 치료하는 '모범적인 환자'였다.
그녀는 병이 나빠졌으니 약을 바꾸겠다고 해도 별 질문없이 의사의 처방에 따랐다.
특별히 설명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게 더 미안해서 내가 설명을 하면 그렇냐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온갖 항암제를 다 경험하였고 나름의 독성도 있었지만
그녀는 그정도는 견뎌야 하는 거 아니냐고 오히려 나를 독려했다.
그녀는 참말로 강한 사람이었다.
치료가 거듭될수록 약제저항성이 생기기 때문에
한가지 약제를 유지하는 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약을 바꾸는 내가 무능력하게 느껴졌다.
나는 늘 마음으로 그녀에게 미안했다.
별 말이 없는 그녀는
'그래도 선생님이 저를 계속 치료해주시니까 좋아요. 끝까지 저를 잘 치료해주세요'
라며 나를 믿어주었다.
내 손을 붙잡는 그녀, 나는 내 손이 부끄러웠다.
그러던 그녀가 오늘 외래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다.
뇌 전이 후 가끔 경기가 생긴다.
오른쪽 손발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다.
뇌 치료를 하는 동안 전신항암치료를 못하니 폐 병변도 조금 더 나빠졌다.
내가 본 중에 제일 힘들어하는 모습이다.
쓸만한 약을 다 써서 새롭게 도전해 볼만한 약이 마땅치 않은데
마침 신약이 출시되었다.
그동안 탁센 계열의 항암제에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 기전상 이 약의 효과를 기대해 볼만하다.
그러나
임상시험을 시작되기까지 두달을 기다려야 한다.
또 임상연구라는게 항상 계획대로 잘 시행되지 않으니 얼마간 지연이 될지도 모르겠다.
뇌전이 후 지금 당장의 컨디션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으니
2주간 전신상태를 호전시키면서 기다려보자고 했다.
나는 내심 새롭게 쓸만한 약이 생겨서 마음으로 기뻤다.
그런데 그녀는 나의 설명을 듣고 눈물을 보였다.
그동안 잘 견디셨고 지금도 잘 이겨내고 계신데 왜 우세요?
욕심이 생겼나 봐요.
저 더 살고 싶어요.
제가 그렇게 해드릴께요.
그러니까 잘 드시고 운동 열심히 해서 컨디션 회복해서 오세요. 아시겠죠?
진료실을 나서는 그녀에게 헛헛한 화이팅을 외친다.
함께 방을 나서는 남편의 뒷모습이 쓸쓸하다.
나는 뭘 믿고 호언장담을 했을까?
오로지 기도할 뿐이다.
사람의 목숨은 사람의 힘으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니
절대자에게 의지하고 도움을 간청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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