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두달전부터 내시경을 해보고 싶으시다고 했다.
내가 예약하고 날짜를 알려드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병원에 출근하면 그 사실을 계속 잊고 예약을 하지 않고 있다.
매일 환자 관련된 일을 하면서도
그 와중에 아빠 일을 한명 떠 끼워 넣어서 일을 처리하면 되는데
계속 잊고 있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 포스트잇으로 "아빠 내시경 예약" 이렇게 붙여놓는데도 자꾸 잊는다.
아빠가 검사를 원하는 날짜가 있으셨는데
그날 할 수 있을거라고 말만 해놓고
시간약속을 가르쳐 드리지 않고 있다.
왜? 아직 못 잡았으니까.
그러고 보니 엄마가 다니는 성당 교우 중에 친한 분 부탁으로
이비인후과 선생님을 추천하고 외래 예약을 도와드리기로 했는데
그것도 맨날 까먹어서
엄마가 하루에 문자를 세번씩 보내고 있다.
바쁘겠지만 좀 알아보고 문자다오
그렇게 문자를 받아도 받는 순간에만 빨리 알아봐야겠다 그러면서도 고개 돌리면 바로 까먹는다.
예전에 시아버지가 혈뇨 증상이 있어서 비뇨기과 진료 예약을 나에게 부탁하셨는데
내가 외래 잡고 전화드리겠다고 해놓고도 까마득히 잊어버려
한달있다 전화드렸더니
이미 당신이 직접 예약하고 다녀가셨다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가족들에게 너무 못하는거 같다.
너무 신경을 안 쓴다.
솔직히 신경이 잘 안써진다.
암환자가 아니니까
별로 급할거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큰것 같다.
마음 속으로 '언제든 하면 된지 뭐' 약간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거 같다.
내가 보는 환자들 문제를 해결하느라 에너지를 다 쓰다보니
그만큼 병이 위중하지 않으면 그 외의 문제에는 신경이 잘 안쓰인다. 그게 가족이든 지인이든....
각자 다 알아서 하시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러면 안되니까 내가 알아보고 연락드린다고 하면서도 늘 잊는다. 단 한번도 제때 해드린 적이 없다.
요즘 드는 생각은
그냥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는 환자는
바로 입원시켜서 레지던트들 보고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면 편할텐데
내가 외래에서 문제를 다 해결하려고 하는거 아닌가
나도 힘들고 우리 배간호사도 너무 힘들고 그런것 같다.
난 그래도 환자가 병원에 입원해서 특별히 하는 일없이 검사 결과만 기다린다든지, 아니면 검사가 잡히는 걸 기다린다든지 그렇게 시간을 보내게 하고 싶지 않다. 3차 의료기관에서 입원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임상적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다보니
한번 외래를 보고 나면 수첩 한바닥 과제들이 쌓인다.
오늘도 지금부터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고 다른 선생님들께 메일을 보내야 한다.
메일을 미리 안 보내고
환자를 외래 협진을 통해 보내면 내 의도와는 다른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기 때문에
협진의도를 설명하는게 환자 진료를 위해 도움이 된다.
그랬더니 메일 보내는 것도 일이다.
뭔가 시스템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신환이 별로 없고 구환이 많다보니
그들에게 손 가는 일이 너무 많다.
다들 너무 병력이 복잡하고 쉽지 않다.
오늘 그런 생각을 처음 했다.
이렇게는 못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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