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환자가 의사를 걱정해주는

학회를 다녀와서외래가 밀린다.평소보다 대기시간이 많이 길어진다.몸도 불편하고마음도 불편한 환자들이한시간씩 진료시간이 지연되면 짜증이 날 법도 한데내 앞에서는 내색을 못한다. 의사 앞에서 싫은 소리 하면 안되니까 그런 환자도 있겠지만난 환자들이 내 상황을 많이 이해해주고 있다고 느낀다. 학회가서 공부 많이 하고 오셨어요? 외국 다녀오셔서 진료보기 힘드실텐데 괜찮으세요? 입가에 뭐가 잔뜩 난걸 보니 정말 피곤하신가봐요. 난 그렇게 환자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의사다. 엄마는 외래볼 때 꼭 화장을 하라고 당부하신다. 그럼에도 거의 그런 적은 없지만...의사가 단정해보이고 아파보이지 않아야 하는데, 이제 나이도 들고 얼굴도 늙어가니 화장을 안 하면 아파보인다는 것이다. 게다가 알러지 때문에 맨날 눈물 콧물을 흘리니..

결국 돈

난 학부 때 물리를 전공으로 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그때는 공부를 거의 안하고 사진에 미쳐서 나돌아다녔기 때문에 자연과학을 전공했다고 말하기가 참으로 부끄럽고 민망하게 대학을 졸업하였다. 그래서 대학원을 사회학과로 가게 되었고 비로소 공부다운 공부를 좀 한 것 같다. 물론 지금은 그 때 내가 무슨 공부를 했었는지 기억도 안나지만, 난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삶의 태도와 가치를 배웠고 철학을 정립하려고 노력하며 살았던 것 같다. 그 때 난 나름의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 정신과 태도만이 남아있을 뿐이지, 학문적인 내용은 기억도 안난다. 요즘에는 사회과학책을 읽으면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한글인데도 읽기 어려운 그런 수준으로 전락했다. 책을 취사선택해서 골라 읽기조차 어렵다. 그런..

편안한 죽음을 위하여

나보다 젊은 그녀.본성이 참 착한 사람이다. 유방암이 재발된 후 항암제를 종류별로 다 써봤지만 2번 쓰고 나빠지고, 세번쓰고 나빠지고, 그러기를 거듭했다. 증상도 조금씩 나빠졌다.왼쪽 폐에 물이 조금씩 고인다. 관을 넣어 빼보기도 했지만 별로 신통지 않았다. 치료 효과가 신통치 않으니 다른 의사에게 의견을 들어보고 싶다고 해서 소견서를 써주고 사진을 다 복사해 주었다.그러나 이내 다시 왔다. 나한테 미안해서 그렇게 못하겠다고.다른 의사에게 의견을 들어보는 것은 환자의 권리이니 나에게 미안할 필요없다고 했다.나는 내가 치료를 잘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정말 미안했다... 쓸만한 약을 거의 다 써봤지만 효과를 본 약이 없다. 치료를 하다보면 그런 유형이 있다. 그녀가 그랬다. 선생님, 그냥 치료 안하면 안되..

Cancer Genome 의 시대

유전자를 알면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2000년 인간게놈프로젝트 (Human genome project) 가 완성되면서 한 인간을 구성하는 전체 유전자 정보를 알 수 있게 되었다. 1996년의 영화 가타카 (GATACA)에서 묘사한 것처럼 출생시 유전자 정보를 확인하여 알콜중독자가 될 가능성,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할 가능성, 치매에 걸릴 확률 등이 결정된 상태에서 태어나고, 문제가 되는 유전자를 미리 교정함으로써 미래를 안전하고 성공적으로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인간의 유전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유전적으로 인간이 초파리에 비해 아주 우월한 종족은 아니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human genome을 밝히는데 성공했지만 그 성과는 생각보다 혁명적이지 않았는지, 아직 내 삶과..

평생에 걸친 믿음과 행동

2013년 4월 7일 미국 워싱턴 DC에서는 101번째 AACR, American Association of Clinical Research 미국종양연구학회가 열렸다.미국학회지만전 세계에서 암 연구하는 사람들이 다 모인다.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이 학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주로 자연과학 분야의 연구자들이었는데나같은 임상의사들이 참석하기 시작하면서 올해는 등록한 사람만 19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학회가 미국영상의학과학회 (ARA, 5만명), 미국임상암학회 (ASCO, 3만5천명) 에 비하면 규모가 작은 듯 느껴지지만, 이 학회는 임상학회가 아니라 연구 학회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2만명에 육박하는 것은 매우 큰 규모이다. 하긴 나같은 의사-연구라고는 생소한-도 와 볼 정도니... 본격..

솔깃하는 마음

환자가 되면 근거가 없어도 누가 좋다고 하면 나도 해볼까, 나도 한번 먹어볼까 귀가 솔깃하는 것처럼 의사인 나도 학회장이나 집담회에서 세포 및 동물 실험에서 놀라운 종양억제 효과를 보이는 실험결과를 보거나 치료가 잘 된 사례들의 치료 전 후 비교 사진을 보면 매우 혹한다. 비슷한 병변을 가지고 있던 우리 환자가 생각난다. 우리 환자에게도 이 치료를 적용해 보면 안될까? 그런 마음이 든다. 그렇게 혹할 정도로 좋아보이는 결과가 안전하게 환자들에게 적용되려면 3상 임상연구로 그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종양학의 발전은 임상연구의 역사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3상 연구가 진행되기까지 수없는 1상, 2상 임상연구의 실패가 전제되어 있고 성공하는 3상 임상연구는 수없는 3상 연구의 실패로부터..

욕심이 생겼나 봐요

그녀는 참으로 오랫동안 항암치료를 받았다.폐로 전이된 암은 좋아졌다 나빠지기를 여러번 반복했다.숨이 찰 법도 한데 그녀는 내색하지 않았다.각종 임상연구에도 많이 참여하였다.의사가 권유하는대로 치료하는 '모범적인 환자'였다.그녀는 병이 나빠졌으니 약을 바꾸겠다고 해도 별 질문없이 의사의 처방에 따랐다.특별히 설명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게 더 미안해서 내가 설명을 하면 그렇냐면서 고개를 끄덕였다.온갖 항암제를 다 경험하였고 나름의 독성도 있었지만그녀는 그정도는 견뎌야 하는 거 아니냐고 오히려 나를 독려했다. 그녀는 참말로 강한 사람이었다. 치료가 거듭될수록 약제저항성이 생기기 때문에한가지 약제를 유지하는 기간이 점점 짧아지고약을 바꾸는 내가 무능력하게 느껴졌다.나는 늘 마음으로 그녀에게 미안했다.별 말이 ..

전화 문의

외래에서 항암치료를 하거나 검사를 할 때 의료진은 이런 저런 설명을 환자에게 하지만 정작 환자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의료진의 설명을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혹은 들어도 까먹기 쉽고 중요한 설명인 것 같은데 기억이 안나기도 하고 그러기가 쉽다. 외래에 설명간호사가 있지만 집에 가서 뭔가를 물어보고 싶고 관련 정보를 확인해야 할 때도 있다. 또 주치의에게 직접 확인해야하는 정보도 있다. 그래서 환자들은 유방암 클리닉 외래로 전화를 자주 하나 보다. 정작 전화를 하면 안내방송이 나오고 통화대기 상태로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고 나나 배간호사랑 연결이 안되서 자신의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나는 외래를 보면서 '문제가 생기면 외래로 전화하세요' 그렇게 간단하게 말 하지만 정작..

주말동안

주말동안 응급실을 통해 입원하신 분들은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져서 병원에 오게된 분들이다. 우리 환자들은 왠만하면 응급실로 오지 않고 외래로 온다. 외래에서 나를 직접 만나서 검사하고 약 타고 하는 것이 더 나을 때가 많다. 내가 평소에 응급실보다 외래로 직접 오시라고 교육을 많이 하는 편이다. 응급실에 가면 심폐소생술하고 피 흘리고 의식 없고 그런 중환자들에 암환자들은 순번이 밀리기 마련이다. 환자가 아무리 힘들다 해도 그 자체만으로 중환으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 응급실에서는 중환을 정하는 순번이 있다. 환자들은 참다 참다 힘들어서 응급실에 갔는데 순번이 밀리고 빨리 검사와 처치가 진행되는것 같지 않으니 불만도 많고 화도 많이 난다. 환자 입장에서는 응급실 상황의 숨막힘과 복잡합, 수분 사이로 생명이..

젊은 여자가 항암치료를 할 때

오늘은 토요진료가 있는 날.피검사를 해서 몸 상태를 점검할 필요가 있거나 부족한 약을 타야 하거나갑작스러운 증상이 생겨서 불안하고 대처하기 힘든 환자들이 토요일 외래를 찾는다. 탈수가 심해 수액을 맞거나 통증 조절이 필요할 때 환자 혹은 보호자들이 온다.자기 담당 주치의가 아니더라도 종양내과 의사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굳이 응급실을 갈 상황이 아니라면 토요일 일반 외래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내가 진료를 담당하는 토요일이면 내 환자들이 항암치료를 하고 가기도 한다. 항암제 주사 시간이 길지 않으면 토요일도 항암치료를 할 수 있다. 컨디션이 좋은 환자들, 직장을 다니는 환자들은 토요일 진료를 선호하기도 한다. 우리 병원 종양내과에서는 4명의 전문의가 번갈아가면서 토요진료를 담당하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