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힐링 터치

의도치 않게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나올 때가 있다.아주 가끔.나에게 그런 재능이 있다.바로 이름을 짓는 기술이다. 지난 2년간 유방암 분과의 임상연구 이름을 짓고 있다.들어가는 약제의 앞글자나, 임상연구의 핵심개념어 앞 글자를 따서 그럴싸한 이름을 짓는다. 여러 병원 선생님들이 당신의 프로토콜에 내가 이름을 붙여드리면 아주 기뻐하셨다. 그러면 다기관 임상연구를 하는 동안 누구나 그 연구를 지칭할 때 내가 지은 그 이름으로 스터디를 부르게 된다. 그런 연구들이 다 내 연구같은 애착을 갖게 된다. 예를 들면삼성서울병원이 주관하는 FLAG 스더티국립암센터가 주관하는 PROCEED 스터디고대안암병원이 주관하는 BEAT-ZO 스터디가 다 내가 지은 이름으로 임상연구를 시작하였고 현재 잘 진행되고 있다. 환자가 잘 ..

문제 해결 수첩

외래 볼 때마다 쌓이는 메모지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올해부터는 '문제해결수첩'을 쓰기로 했다.가운에 항시 수첩을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 외래보다가 뭔가 찜찜한 환자들의 ID랑 이름을 적는다.밤이 되면 그 수첩을 펼쳐서다시 EMR을 리뷰하거나관련 저널을 찾아보거나 다른 과 선생님들께 메일로 질문을 보내 문제해결을 위한 SOS를 청한다. 그 중 가장 짭짤한 것이 선생님들께 메일을 보내는 것인데선생님의 가르침도 많고 관련 검사나 외래 일정도 빨리 잡아주시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환자와 관련하여 그때 그때 배워가는게 가장 효과적이고 뼈속 깊이 새길 수 있는 유용한 학습의 시간이다.이과 저과 많은 과와 접촉해야 하는 종양내과 의사로서 이런 기회를 갖는게 아주 유용하다.그 모든 걸 내가 다 찾아보고 책임있는 대안을..

눈물로 호소하여 삭감을 피한다

병을 처음 진단받으면누구나 말한다.돈은 문제가 아니라고.돈은 얼마든지 들어도 좋으니 최고의 치료, 최고의 검사를 하게 해달라고. 그러나 언제나 돈은 문제가 된다. 아주 부유한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오랜 투병기간,잦은 검사와 입퇴원의 반복, 교통비, 가족들의 부양과 가족에 따른 간접비...끊임없이, 소소히 돈이 많이 든다.그래서 암환자나 희귀질환자들의 진료비 감면 혜택의 범위가 넓고 보장율이 높은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나 개인적으로는 암환자가 진료비의 5%만을 부담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편인데, 그렇게 개인 지불 비용을 줄이는 것 보다는 자기가 부담할 돈을 20% 정도를 더 늘리더라도, 더 많은 신약과 좋은 약의 보험 적용 범위를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의학적으로 우월한 ..

내 글을 읽지 않는 환자

약제 반응이 아주 좋은 것은 아니지만병이 나빠지지 않고 꽤 오랜 시간 잘 유지되고 있다.환자는 잘 견디고 있다.첫번째 쓴 약으로 병이 조절되고 있기 때문에 약제변경을 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요즘은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별로 없는 듯 하다.뼈로 전이된 부분의 통증이 심했는데그것도 잘 조절되서 한두시간 가벼운 산행을 해도 통증이 없으니 몸도 가볍고 좋다고 했다.영상의학과와 함께 진행한 임상연구 치료에서 도움을 톡톡히 받았다. 환자는 유방암 재발 이후 강원도 산골마을에 작은 집을 사서 거기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직장 생활로 바쁜 남편이 강원도 집에 자주 오지 못해도 자기는 그 집이 좋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번 겨울 너무 추워서 서울 집으로 나와 있는다고 했다. 그래요, 날도 추..

한 동기의 혜안

출신 대학, 출신 수련병원에서 계속 일하는 것에는 여러 장단점이 있지만내가 그중 장점으로 꼽는 것은동기다. (그러면 안되지만)절차를 뛰어넘어 일을 진행할 필요가 있을 때가 있다.특히 환자가 관련되면 정식 순서를 기다리기 어려운 상황이 가끔 있다.전화를 건다. 누구야, 미안하다. 이렇게 하면 안되는줄 아는데, 근데 이번 한번만 해주라. 상황이 좀 안 좋아. 급하다. 환자한테 이런 사정이 있어서 그래. 내가 밥 한번 살께. 밥은 무슨 밥. 내가 할 줄 아는게 이것밖에 없는데 뭐. 부담갖지 마, 누나. 환자 번호가 뭐야? 그렇게 전화 한방이면 해결해주는 동기.다른 환자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도 급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동기들 빽을 믿고 환자 검사시키고 치료 스케줄을 짠다. 급한 일이 생기면 바로 전..

자식을 떠나보낸 그들에게

환자가 돌아가신 후몇일 시간이 지나문자메시지나메일을 보내시는 분들이 있다. 환자 상태가 안 좋으면 내 핸드폰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게 안 좋은 상태로 고생하다 돌아가시는 환자의 가족들은 내 전화번호를 알고 계신다. 아마도 환자 물건 정리를 하다가짐정리를 하다가 내 생각이 나는가 보다. 40대 의사 아들을 먼저 보낸 어떤 어머니는 그러셨다.투병기간이 길었던 그,아들의 건강과 삶에 대해 이야기를 가장 많이 나눈 사람이 나였다고.생의 마지막, 위험한 순간에 찾은 사람도 나였다고.아들을 생각하면꼭 내 생각이 같이 난다고 하셨다.한번 만나고 싶다고 하셨지만나는 만나지 말자고 하였다. 오늘은 몇일전 딸을 떠나 보낸 어떤 어머니가그리고 어제 딸을 떠나 보낸 다른 어떤 아버지가 문자를 주셨다.두 환자 ..

의사도 아파봐야

난 어렸을 때부터 알러지로 고생을 많이 했다. 그리고 지금도 환절기만 되면 여전히 알러지는 기승을 부린다. 환절기가 되면 눈물, 콧물, 재채기로 정신이 없다. 심할 때는 숨만 쉬어도 맑은 콧물을 뚝뚝 떨어져서 휴지로 콧구멍을 막아야 한다. 눈이 가렵고 찐득찐득한 눈물이 나와 그걸 닦다보면 1년에 두세번은 다래끼가 난다. 지금도 그렇다. 고등학교 때는 재채기 많이 하고 코를 하도 많이 풀어서 독서실에서 쫒겨난 적도 있었다. 집먼지 진드기는 기본이고, 금속 알러지도 심해서 바지 단추가 닿는 배꼽 근처는 피부가 꺼멓고 귀걸이도 잘못하면 금방 귀에서 진물이 난다. 햇볓 알러지 때문에 초여름 햇살이 강해지는 계절이 시작되면 햇빛에 노출된 팔뚝 피부가 우둘두둘 다 일어난다. 어렸을 때는 천식이 심해서 1년에 1달 ..

온 병원에 흩어져 있는 나의 환자들

지난 몇달간 신환이 없었다. 그래서 요즘 내가 진료하는 환자들은다들 나랑 인연이 오래되서 척하면 척인 사람들이다.싸울만큼 싸우기도 했고, 원망도 하고 화해도 하고 그러기를 몇번 한 사람도 있다.서로에게 삐진 적도 있지만 병이 좋아지면 우린 금방 화해할 수 있었다.서로에게 익숙해 질 때까지 시간이 걸렸고 우리는 그 힘든 시간을 잘 견디고 지금의 관계가 되었다. (아마 나를 견디지 못한 환자들은 다른 선생님을 찾아 떠났으리라) 그래서 내가 검사결과를 꼼꼼히 알려주지 않아도, 약 처방에 빵꾸가 나도, 대기 시간이 길어져도, 원하는 날짜에 검사를 할 수 없어도, 이제 섣불리 화를 내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그냥 나를 이해해 주는 것 같다. 선생님 정신 없으니까 내가 참아야지. 별로 서운해 하지도 않고 나에게 따지..

비합리적인 것 같지만

나의 이모부는 그냥 회사원이고, 평사원으로 시작해서 적당히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속도로 승진하여 지금은 간부로 일하시고, 정년할 때까지 회사에 다닐 예정이시다. 아들 둘을 둔 한국의 50대 가장. 이모부는 온갖 가족모임을 준비하시는데 모이는 시간, 장소, 돈, 이동수단, 시간표, 일정, 식사 등 모든 시간표와 관련 업무를 엑셀로 표를 만들어 가족별로 분담시키고 목적지 지도와 사진 등을 첨부한 문서를 준비하여 미리 나누어주신다. 대규모 가족여행을 가면 사전답사, 여행 당일 안내, 일정 체크, 돈관리, 안전사고 예방까지 당신이 다 하신다. 가족의 보물이다. 이모부는 말씀을 재미있고 조리있게 잘 하시는데 평소 말씀을 많이 하시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가끔 누군가에게 짧은 코멘트를 하신다. 예를 들면 내 동생이..

[주의] 이상한 댓글이 달리고 있습니다

3일 전부터 무작위로 예전에 제가 썼던 오래된 글에 댓글들이 달리고 있는데 제가 아무리 필터링을 하면서 관련 URL을 차단해도 계속 댓글이 달리고 있습니다. (오른쪽 Recent Comment 이에요) 제가 좀 해보다가 포기하고 티스토리에 신고를 했지만 큰 기대는 안하고 있구요. 동생한테 좀 봐달라고 했습니다. 해결될 때까지 양해해주세요. 혹시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아시나요? 전 처음이라 당황스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