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 볼 때마다 쌓이는 메모지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올해부터는 '문제해결수첩'을 쓰기로 했다.
가운에 항시 수첩을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
외래보다가 뭔가 찜찜한 환자들의 ID랑 이름을 적는다.
밤이 되면 그 수첩을 펼쳐서
다시 EMR을 리뷰하거나
관련 저널을 찾아보거나
다른 과 선생님들께 메일로 질문을 보내 문제해결을 위한 SOS를 청한다.
그 중 가장 짭짤한 것이 선생님들께 메일을 보내는 것인데
선생님의 가르침도 많고 관련 검사나 외래 일정도 빨리 잡아주시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환자와 관련하여 그때 그때 배워가는게 가장 효과적이고 뼈속 깊이 새길 수 있는 유용한 학습의 시간이다.
이과 저과 많은 과와 접촉해야 하는 종양내과 의사로서
이런 기회를 갖는게 아주 유용하다.
그 모든 걸 내가 다 찾아보고 책임있는 대안을 내기까지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문제해결수첩에 기록되는 환자수가 점점 많아지면서
매일 기록할 수 있는 공란을 넘어가고 있다.
밤이 되어도 그 수첩을 미쳐 열어보지 못하고 하루가 지나가거나
열어볼 의욕이 없어서 그냥 넘어가는 날이 점점 많아지는 거 같다.
방사선 선생님과 상의해서 환자에게 상의 결과를 알려주기로 했는데
3주가 넘도록 환자에게 연락을 안해주었다.
그냥 외래 협진으로 환자를 보내면 되는데
환자 집이 지방이고 초등학생 2명의 엄마이고 협진보러 따로 하루 시간내서 서울 왔다가 방사선치료 하기 어렵겠다 그런 말만 듣고 다시 내려가게 하기에 환자 형편이 안 좋아서 미리 어레인지를 좀 해주는게 좋을거 같았다.
그런데 그 환자 케이스를 문의해서
전화로 결과를 알려주기로 했는데 그걸 놓친거 같다.
환자에게 미안했다. 내가 요즘 정신이 없는거 같다.
환자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솔직하게.
환자 상태가 급하게 아니고 나를 잘 이해해줘서 망정이지... 정신 차려야 겠다.
수첩에 환자 명단만 가득 차있으면 뭐하나, 문제 해결을 못하고 있는데 쯧쯧...
오늘은 반성모드다.
일하는 거
내 공부하는 거
논문쓰는 거
조화를 이루기가 참 어렵다.
그 무엇하나 신나서 하는 것도 아니고
그 무엇하나 깔끔하게 잘 하는 것도 아니고
그 무엇하나 성실하게 잘 하지도 못하는거 같다.
이건 비단 사주나 운명의 문제가 아닌것 같다.
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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