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주치의 변경을 앞두고

지난 2년간 미국으로 연수를 가셨던 손주혁 선생님이 돌아오셨습니다. 당시 혼자 유방암 진료를 하시던 손 선생님께서 연수가기 6개월 전부터 막 임용된 저에게 조금씩 환자를 인계해 주셨습니다. 저희 병원은 조기 유방암 환자는 외과에서 추적관찰을 하기 때문에 제가 인계를 받아 진료를 계속 해야 했던 손 선생님 환자들은 모두 전이성 유방암 환자들이었습니다. 나름으로 애써서 진료했지만 돌아가신 분들도 있고 2년전 손주혁 선생님이 정한 치료방법을 변경하지 않은 채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잘 계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손주혁 선생님은 이런 분들을 다시 만나게 되면 정말 반가와 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나이유가 어찌 되었건 환자들은 주치의가 바뀌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정이 든 것도 있고지난 2년 이상의 시간..

상상할 수 없는 내일, 그냥 오늘을 살자

징하게 습하고 무더웠던 여름.지칠 줄 모르고 기승을 부리던 더위가 물러가나보다.영영 올것 같지 않았던 가을도 오려나 보다.바람이 시원해졌다. 힘들고 지치는 이 순간이 영원히 계속될것 같아 절망하지만시간은 흐르고상황도 변하고어느새 내 마음도 변한다.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이 절대적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겠다. 장성한 자식들은 다들 성공해서 미국에서, 호주에서, 유럽에서 잘 살고 있는데한국에 홀로 남은 부부.환자는 세번째로 난소암이 재발했다.그리고 같은 시기에 70 넘은 남편이 치매를 진단받았다.원래 항암제 독성이 심하게 나타나는 편이었다. 이번에도 항암치료를 시작하고 보니 남편 시중 들기가 힘들어졌다.자식들에게 국제 전화를 걸어 이런 얘기를 하고 싶지 않다.환자는 남편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글을 계속 써야 할까...

한동안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진료 현실에서는 제한된 시간 때문에환자들과 진심으로 소통하기 어려우니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환자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2011년 3월 2일 제 이름으로 외래를 개설하고 입원환자를 진료하기 시작하면서가능하면 매일 글을 올리려고 노력했습니다.글을 쓰기 위해서는매일의 나를 돌아보아야 했습니다. 진료를 마감하고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은 저에게 기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시간을 경험하면서 제가 깨달은 것은 내가 의사로 일하는 그 어떤 한 순간에도환자들은 나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나를 찾는 그 어떤 환자도자기 마음 속에 우주를 품고 있으나 그것을 드러내지 못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병과 싸우며 최선을 다하고 ..

종양내과 코드 블루

입원한 환자에서 응급상황이 발생하면병원 전체적으로 코드 블루 (Code Blue)가 방송된다. "** 병동 종양내과 코드블루" 아까까지 내 환자 중에 **병동에 입원한 환자는 없었으니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이구,종양내과 환자한테코드블루 상황이 생기면 안되는데... 쯧쯧. 4기 암환자는 병이 치료되지 않으면조금씩 컨디션이 나빠지지만그래도 그럭저럭 일상 생활을 할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아무리 병이 위중하다고 의사가 말해도 환자나 가족은 내심 지금이 아주 심각한 상황이라는 걸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아마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갑자기' 나빠졌다고 생각한다. 4기 암환자라 해도병의 정도가 별로 심하지 않거나 전이된 장기가 여러개가 아니고 항암제에 반응을..

긴 병 끝에는 가슴에 멍이

병이 길어져병원 출입이 잦아지다 보면점점 눈에 가시같은 일이 많이 발견됩니다. 환자가 컨디션이 좋다면 병원 출입이 잦을 이유도 없겠죠. 환자 몸이 안 좋으니 병원에 왔는데뭔가 일이 제대로 잘 진행되는 거 같지 않고 의료진들의 검사와 처방, 처치 등에서 손발도 잘 맞지 않는거 같고믿음이 흔들리고 자꾸 예민해집니다.처음에는 잘 몰랐는데불편하고 부당하고 눈에 거슬리는 일들이 더 잘 보이게 됩니다.병원을 자주 다니다 보면 그만큼 병원 시스템에 대해서 잘 알게 되니까 오류나 에러도 더 잘 보입니다. 제가 아주 마음을 많이 쓴 환자가 있었는데요죽을 고비를 몇번이나 넘겼는지 모릅니다.이과 저과 소속도 여러번 바뀌웠어요.그리고 환자는 많이 좋아졌습니다.그러나 궁극적으로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전 앞으로도..

보호자가 되어

엄마가 엊그제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고 답답한 증상이 생겼다고 한다.수년 전에도 그런 적이 있어 관상동맥조영술을 비롯하여 심장검사를 하신 적이 있었는데별 문제 없으셨다.역류성 식도염 증상과 감별이 잘 안되어 가끔 위장관 약을 드려보기도 했다.증상이 심하지 않으니 흐지 부지 넘어갔다. 몇일 전부터잊고 있던 증상이 다시 나타났는데 이번에는 더 강도가 심하다.엄마는 왠만하면 나에게 전화 잘 안하시는데 오늘은 힘들어서 병원에 오고 싶으시다고 한다. 다행히 외래 진료가 없어 엄마를 모시고 진료를 받으러 다녔다.가운을 벗고 보호자가 되어 이과 저과를 예약하고 검사하고 약 받고그렇게 병원을 2-3시간 돌아다니다 보니 회진도는 거 보다 훨씬 다리도 아프고 기운이 빠진다. 엄마는 갑자기 아프니까 작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

저를 포기하지 않다니...

내가 무슨 말을 하면그녀는 대개 그 내용과 별로 연관이 없는 질문로 응답하였다. 이번에 병이 나빠졌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고 등등의 심각한 얘기를 다 하고 나면변비약 없으니까 약 주세요뭐 그런 식이었다. 할머니도 아니다. 나랑 나이도 비슷하다.뭔가 의사소통이 잘 안되는 느낌이었다.내가 병이 나빠졌다고 해도 남의 일처럼 '그럼 어떻게 하실건가요?그렇게 물었다. 수술 전 항암치료 하고 수술했는데수술 부위에서 금방 재발하였다.순식간에 목 근처 림프절 부위로 병이 진행되어 방사선 치료를 했지만 또 금방 재발하였다. 주요 장기는 침범하지 않은채수술한 쪽 유방 근처의 피부, 겨드랑이와 목 림프절, 어깨 부위의 피부 이 정도로 전이가 진행되었다.피부 병변이 조금씩 조금씩 진행되어 면적이 넓어져 간다. 마치 피..

진로를 고민하는 레지던트와 이야기를 나누며

똑부러진 3년차 레지던트말없이 별 내색없이 묵묵히 똑똑하게 일 잘 한다. 상의할 일이 있어서 오늘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가이제 3년차인데 내과 중 어떤 파트를 하고 싶냐고 물어보았다.내분비나 종양학과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그의 고민의 궤적을 들어본다.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전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같이 지원하는 동기들의 숫자먼저 그 파트를 선택한 선배들의 진로과 분위기와 교수님들 그런 상황적인 요인들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요인들을 고려한다고 해서 요령쟁이, 잔머리 굴리기 그렇게 비난할 수 없다. 실재 여자 레지던트들이 밀리는 파트도 있고최근 몇년간 취업 성적이 별로 좋지 않은 파트도 있다.대학에 남거나 개업을 하는 것이 모두 가능한 과도 있지만 감염내과나 종양내과처럼 개업을 할 수 없는..

대상 포진 예방접종

대상포진 예방접종을 문의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설명드릴려구요 대상포진은 우리 몸에 있는 바이러스 (varicella zoster visus) 가 면역력이 떨어진 틈을 타 기승을 부리며 찾아오는 병입니다. 대개 60세 이상, 나이가 들수록 발생율이 높아집니다. 어렸을 때 수두(비슷한 계열의 바이러스로 어렸을 때 걸리는 병이죠) 를 앓았어도 또 다시 찾아올 수 있습니다. 수두는 물집이 생기면서 가려움증이 동반되고 신체 어디서나 생길 수 있는 것에 비해대상포진은 신경이 분포하는 자리를 따라서 통증과 함께 동반되는 경우가 흔합니다.예를 들면 몸통 한쪽, 얼굴 한쪽에서 어떤 신경이 분포하는 자리를 따라 통증이 시작되다 보니 처음에는 피부에는 아무 이상이 없고 그저 몸살이 난 줄 알고 파스를 붙이고 진통제를 먹어보지..

자원 봉사를 시작하는 슬기에게

고등학생이 된 슬기. 요즘은 대학가는 방법이 너무나 다양해서요령있게 입시 전략을 짜는 일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나는 사실 그런 걸 잘 모르고 특별히 나만의 대안도 없고 솔직히 그냥 내버려 두고 있는 편이다.오히려 우리 엄마만 안달이다. 슬기 말에 의하면 사람들이 요령이 있다고 말하지만 자기가 보기에 그게 다 그거라고 한다.그냥 하던대로 하면 된다고 한다.중요과목 열심히 하고평소에 국영수 하고슬기는 아직 문과갈지 이과갈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그걸 결정하는게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예전에는 소위 스펙을 쌓기 위해 토익, 토플을 보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 그런 건 소용이 없다고 한다. 자원봉사 점수도 스펙 중의 하나로 이용된다.그래서 아주 어이없는 프로그램들이 자원봉사로 둔갑하여대충 시간을 때운 후 자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