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내 글을 읽지 않는 환자

슬기엄마 2013. 3. 27. 22:46


약제 반응이 아주 좋은 것은 아니지만

병이 나빠지지 않고 꽤 오랜 시간 잘 유지되고 있다.

환자는 잘 견디고 있다.

첫번째 쓴 약으로 병이 조절되고 있기 때문에 약제변경을 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요즘은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별로 없는 듯 하다.

뼈로 전이된 부분의 통증이 심했는데

그것도 잘 조절되서 한두시간 가벼운 산행을 해도 통증이 없으니 몸도 가볍고 좋다고 했다.

영상의학과와 함께 진행한 임상연구 치료에서 도움을 톡톡히 받았다. 


환자는 유방암 재발 이후 

강원도 산골마을에 작은 집을 사서 거기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직장 생활로 바쁜 남편이 강원도 집에 자주 오지 못해도 자기는 그 집이 좋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번 겨울 너무 추워서 서울 집으로 나와 있는다고 했다.


그래요, 날도 추운데 인적이 드문 마을에서 적적하게 있으려면 기분도 다운되고 좋지 않을거 같아요.

우리는 도시녀잖아요? 하하하


나는 그렇게 어색한 웃음으로 그녀를 위로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서울에서 지낸 지난 몇 달동안 깊은 잠을 이루기 어렵다고 했다.

잠을 자는 내내 꿈을 꾼다고 한다. 꿈속에서는 자기가 알고 지냈던 분들 중에 돌아가신 분들을 만난다고 한다.

딱 거기까지만 말한다.


그런 꿈을 꾸면 마음이 너무 힘들잖아요.

잠을 자면서 내내 꿈을 꾼다는 것은 그만큼 숙면을 취하는 시간이 짧다는 뜻이에요.

제가 처방하기 어려운 부분인것 같아요.

정신과 선생님을 한번 만나보면 어떨까요?


그녀는 조금 더 지내보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눈물을 뚝.

좋지 않은 싸인이다. 환자가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인다는 건.


시골로 다시 돌아갔는데

조금 나아진 것 같아요.

서울에서 지내면서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며 사는게 너무 답답해요. 더 힘든 것 같아요.

외롭고 적적한 것 같아도 산속마을에서 혼자 지내는게 훨씬 마음도 편하고 좋아요.

잠도 조금 더 잘 자는 것 같아요.


몇일만 잠을 제대로 못자도 사람 신경은 매우 예민해지기 마련이니 

지금보다 더 힘들면 연락하세요.

블로그에 들어와서 비밀 댓글을 달아주세요. 제가 연락드릴께요. 


저 선생님 블로그 안 들어가요.


그러세요? ....


제가 외면하고 싶은, 보고싶지 않은, 그런 슬픈 사연들이 많아서 읽고 싶지 않아요.

그런 일들이 저에게 생기면 어떻게 하나 그런 걱정과 불안함이 생겨서요.


네. 

그럼 들어오지 마세요. 

글 읽지 마세요.

그냥 외래로 전화주세요. 


매일 나의 일상을 기록하는 의미로

일기처럼 쓰는 글인데도

환자에게는 예사롭게 다가오지 않는가 보다.

의사라는 지위에서 쓰는 글이니

환자라는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

내 주치의 선생님이 나를 향해 하는 말이다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

조심해야겠구나.


가만 생각해 본다.

산다는게 꼭 슬픈 일만 있는 것은 아닌데

내 마음에는 왜 그렇게 슬픈 일들만 남아있는걸까.

즐거움과 행복이 가벼운 감정이라서 기억이 휘발되어 버리는 걸까? 

그런 건 아닐텐데...


요즘 내 운명의 시계가 그렇게 맞추어져  있는걸까?

자꾸 운명을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