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레지던트일기

나는 이럴 때 울고 싶다

슬기엄마 2011. 3. 1. 18:03

나는 이럴 때 울고 싶다

 

오후 5 40. 응급실, 내시경방 간호사, 직원들은 퇴근 준비를 마칠 시간인데, ‘목에 조개껍질이 걸렸어요를 주소로 내원한 환자가 응급실 EMR 명단에 떴다.
 
방금 전에 찍은 neck lateral view에서 esophagus에 걸려있는 조개껍질, 2cm가 넘는다. 응급의학과에서 연락이 오기도 전에 나는 이미 환자를 보러 간다
.

그건 내가 부지런해서가 아니라 시간상 정규시간 전후로 내시경방 당직 chief도 바뀌고 notify하는 staff 선생님도 달라지고 여러 모로 당직 이후로 넘어가면 시간이 delay되기 쉬울 것 같아 나는 lab도 나오기 전에 환자를 보고 교수님께 연락을 드렸다
.

사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는 진정한 응급도 많지만, 수많은 과들을 적재적소에 연결하고 언제,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notify를 잘 하는가가 일을 수월하게 하는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상당한 센스가 -혹은 눈치가- 필요하다
.

이 환자가 온 시간은 5 40분이지만, 사진찍고 응급의학과에서 환자 보고 lab 나오고 응급실 내과 담당인 나에게까지 연락이 오려면 1시간 이상 시간이 소요될 것이 뻔하고, 그렇게 되면 당직시간에 응급내시경을 해야만 한다. 이건 여러 모로 복잡한 일이다. 따라서 나는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

X-ray
에서 보이는 조개껍질은 매우 날카롭고 크기가 커서 시간이 지날수록 감염이나 주위 조직으로 염증이 확산될 확률도 커질 듯 보였고, 위치가 식도이니만큼 꺼내다가 식도벽이 찢어지거나 종격동염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았다. 환자는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나 정작 내시경적 시술을 하는 사람에게는 꽤 부담이 될만한 상황이었다. 심할 경우 식도절제술을 해야할 수도 있다고 환자에게 설명한 후 나는 부랴부랴 소화기내과 선생님들께 연락을 취했다
.

물론 별 일 없이 순조롭게 조개껍질을 꺼냈고 환자는 불편감없이 내시경을 마쳤으며 내가 발빠르게 뛴 덕분에 그 환자는 시간지체없이 문제를 잘 해결했다고 생각하여 마음이 뿌듯했다. 비록 혈압이나 맥박 등의 vital sign이 흔들리는 환자는 아니었지만, 빨리 해결해 주는 것이 필요한 환자였으니 말이다. 내시경을 마친 환자는 당장 귀가하고 싶어했지만 chest pain, fever 등의 sign이 나타나지는 않는지, pneumomediastinum, mediastinitis 등의 합병증은 발생하지 않는지 경과관찰이 필요했기 때문에 하룻밤은 응급실에서 지켜보기로 했다
.

순조롭게 내시경을 마쳤기 때문에 별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혹 문제가 생기면 크게 생길 case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퇴원은 다음날로 미루었던 것이다
.

너네 일처리는 원래 이렇게 늦냐?


다음날인 토요일 오전, 담당 staff 선생님은 병동의 입원환자가 30명이 넘었고 토요일 오전 진료가 12 30분까지 예약되어 있는 상태였다. 병동 회진을 돈 다음 시간이 부족하셨던지 바로 외래로 가셨고, 외래 환자도 많아서 1 30분까지 외래 진료를 보신 후 부랴부랴 응급실로 내려오셨다.

어제 그 환자는 선생님을 얼굴을 보자마자 잘 치료해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아니, 환자를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면 어떻게 해요?’라고 따지기 시작한다
.

나는 물론 선생님도 매우 당황스러워하셨다. 나는 이미 오전 10시에 환자에게 퇴원이 예정보다 늦어질 수 있고 시술을 해 주신 선생님 얼굴 뵙고 별 문제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주의사항을 듣고 가시는 것이 좋겠다며 기다려 줄 것을 설명한 바 있었다. 하지만 환자는 기다리다 지쳤는지 다짜고짜 따지기부터 하는 것이다
.

그 선생님과 응급실의 다른 환자-그날따라 왜 그렇게 중환이 많았는지- 회진을 도는 동안 내내 전화가 울렸고, 회진 후 나는 겨우 전화를 받았다. 간호사가 보호자 전화라며 계속 전화하고 있으니 받아달라고 한다. 아까 그 환자의 딸이다. 전날 본 기억이 난다. 나에게 20분이 넘게 역정을 낸다. 세브란스병원은 원래 일처리가 그렇게 늦냐, 도대체 그 교수라는 사람은 뭘 하는 사람이길래 1시가 넘어서 회진을 도는 거냐, 환자를 이렇게 기다리게 하는게 말이 되냐 등등의 불만을 계속 쏟아낸다. 내가 설명을 할 시간도 없이 퇴원이 늦어진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였고, 나중에는 나에 대한 인신공격적인 말까지도 쏟아져 나왔다. 내가 아까 환자에게 이미 다 했던 설명을 다시 한번 하면서 환자에게 양해를 구한 바 있다는 말을 하자, 자기는 처음 듣는 말이라며 나에게 오히려 화를 낸다
.

나는 너무 속상하고 어이가 없어 말을 하면 눈물이 나올까봐 아무 말도 못했다. 우리 병원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그 사람보다 내가 더 잘 아는데, 그리고 그 보호자의 지적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며 환자나 보호자 입장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병원의 시스템, 의사들의 일하는 방식 때문에 오해할 수도 있고 화가 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만, 나는 너무나 속이 상했다. 그 사람의 문제가 빨리 해결될 수 있게 발로 뛰고 연락한 사람은 바로 나고, 그 사람의 문제가 신속하게 처리되기 위해서 다른 누군가는 또 몇십 분을 기다렸어야 했는데, 정작 환자와 보호자가 화를 내며 달려드니 나는 오만정이 다 떨어진다
.

당신, 의사로서 자질이 없다

항암치료를 받으며 힘들어하는 환자에게환자분, 기운내세요. 항암치료를 하는 과정이지만 약이 독이 되는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치료적인 효과가 더 크기 때문에 쓰는 것이니 잘 드시고 기운 내셔야 되요라는 말을 했다가, ‘지금 독이라고 했나요? 독이 될 수 있는 걸 나에게 쓰면서 기운내라구요? 당신 의사로서 자질이 있는 사람 맞나요? 당장 이 방에서 나가주세요.’라고 불벼락을 맞은 동기
.

너희 ○○외과는 수술하고 환자에게 회진도 안 오냐? □□ ××학번인데, 수술한 의사 당장 병실로 오라고 해.’, ‘오늘 저희 과 수술이 하루 종일 있었습니다. 환자분 상태에 지금 큰 이상이 없어서 순서대로 회진돌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려 주세요.’, ‘아무리 간단한 수술이라도 그렇지 수술 직후에 회진돌아야 되는거 아니야? 네가 하루 종일 수술하는 과 선택해서 일하는 거면서 밥 못먹고 수술한 게 자랑이야?’ 반말로 욕 하는 보호자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당황해하는 동기
.

갑자기 나빠진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기고 급한 대로 필요한 order와 환자 처치를 하고 병실로 돌아왔더니 배가 아파 죽겠는데 의사란 사람이 두 시간이 지나도록 와 보지도 않고 뭐 하는 거냐며, 당신 자식이 이렇게 아프면 가만히 두겠냐며 펄펄 뛰는 어머니. 다른 의사에게라도 연락을 취해서 PRN 진통제를 줬으면 이렇게까지 보호자가 화를 내지는 않았을 텐데, call 한 번을 놓친 나에게 더 이상 연락없이 환자를 아프게 내버려 둔 병동 간호사도 원망스럽지만, 24시간 내내 한 환자 곁에 keep 하면서 일할 수 없는, 그 넓은 병원 이곳 저곳을 뛰어다니면 일하는 나에게 이렇게까지 화를 낼까? 내가 평소에 그 환자에게 뭘 그렇게 잘못했었나 자책하는 동기
.

의사들 중에도 사회성 떨어지는 사람 많지만, 사회성이 떨어지고 상식적으로 말 안 통하는 환자나 보호자들도 꽤 있다. 나는 정말 그 환자 때문에 애를 많이 썼는데, 아주 어이없는 문제를 꼬투리 삼아서 나에게 화를 낸다
.

내가 울고 싶어질 때는 윗년차나 staff 선생님에게 혼나거나 질책을 당했을 때가 아니라 이렇게 환자가 나에게 보복할 때이다. 자존심이 상해도, 불합리하게 혼이 나도, 어처구니없이 깨져도, 내 스케줄이 망가지고 기분이 너무너무 나빠도, 환자만 괜찮으면 다 참을 수 있었는데, 이렇게 반격을 당할 때면 아주아주 일할 맛이 떨어진다
.

누구나 병원에서의 불쾌한 경험들을 이야기 해보라고 하면 끝이 없다. 의사는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한다. 그러나 의료가 무조건적인 서비스고 환자는 고객이며 의사가 서비스맨이라는 생각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고객의 권리의식은 당연히 존중되어야 하지만, 정말 우아하고 교양있는 환자는 무조건적인 자기 주장이나 자기중심적 요구를 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렇게 내 힘을 빼는 환자들이 가끔 있다. 나는 그럴 때 가끔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