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레지던트일기

3월에는 대학병원 가지 마라?

슬기엄마 2011. 3. 1. 18:10

3월에는 대학병원 가지 마라?

 내과 3년차 이수현입니다
슬기는 초등학교 4학년, 고학년이 되었고, 나는 내과 3년차, 고년차가 되었다. 우리는 둘 다 뭔가 으쓱해진 기분으로 3 1일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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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전화를 받을 때내과 3년차 이수현입니다라고 말하며 내심 뿌듯함을 느낀다. 왠지 높은 사람이 된 것 같고, 내가 말하는 것은 예전보다 더 중요한 것 같고, 뭐 그런 겉멋을 잠시나마 느끼는 것이 크게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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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3년차가 되었으니 일 하느라 바쁜 1년차에게 핵심만을 가르쳐주고 1년차가 잘 모르는 노하우를 알려주며, 시간이 나면 커피 한잔 같이 하면서 의사로서 우리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를 논의할 수 있는 그런 관계로 잘 지내야지, 하는 마음으로 내가 처음으로 함께 호흡을 맞출 1년차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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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처음 만난 그. 우리는자기 소개를 할 여유조차 없이 환자 파악을 하고 아직 제대로 파악도 안 된 환자들이 급 진료상담을 요청하면 그에 응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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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뒤죽박죽 시간이 엉키자 서로에게 익숙할 시간도 없이, 서로의 스타일을 확인할 틈도 없이, 당장 눈앞에 떨어진 일을 처리하느라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일 중심의 관계, 그렇게 썰렁한 관계를 형성할 수 밖에 없었다.

개구리, 올챙이와 회진 돌다

1년차 때 겪었던 painful memory. 내가 잘못한 일에 대해 스스로도 이미 괴로워하고 있는데, 그 일을 수없이 들춰내며 숨돌릴 틈도 없이 몰아쳤던 윗년차들의 가시돋친 질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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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차 때는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펑크가 나고 일도 제대로 안 됐다. 검사결과를 제때 얻어내기 위해서는 병원 각 조직의 행정적인 업무절차까지 파악해야 하는데,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환자마저 나에게는 정보를 숨긴 채 윗년차가 물어보면 술술 이야기를 풀어내는 배신을 했었다. 나는 한다고 했는데, 왜 중요한 일은 기억을 못하는 것일까. 왜 가장 중요한 일은 펑크가 나는 것일까. 여기저기서 하도 야단을 맞아서 누구한테 뭣 때문에 야단을 맞았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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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을 나의 1년차는 겪지 않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굳은 다짐이 있었건만, start는 역시 시원찮다. 지금 나와 함께 일하는 1년차는 내가 겪었던 그 혹독한 시간을 거의 똑같이 맞이하고 있다. 그는 초임자의 고통을 감내하느라 허덕이고, 나는 supervisor로서의 적절한 역할을 찾지 못해 허둥댔다. 그렇게 3월의 첫 일주일은 흘러갔다.

Practice training의 부조화

1년차가 환자를 위해 가장 중요하게 실행해야 하는 것은 오더를 빨리 내고 검사 진행을 확인하며, 펑크없이 일들이 처리되기 위해 각종 검사실, 병동, 윗년차 선생님들과의 긴밀한 연락을 통해 환자에게 제때의 검사, 치료 등이 제공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뭐가 되었건 많이 해본 사람이 능숙하고 실수가 없으며 환자의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다.
Fever
가 반복되는 환자. Catheter change가 필요했고 혈관이 약하고 가늘어 지금 갖고 있는 femoral line을 제거하고 다른 쪽으로 central line을 잡아두는 것이 필요한 상황. 1년차는 밤 12시에 환자를 찾았고 자던 환자를 깨워 반대쪽 femoral line insertion을 시도하며 낑낑 대다가 1시쯤 포기하고 말았나 보다. 아침에 가보니 보호자가 서운함과 속상함으로 눈물을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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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위해 적절한 practice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명제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올챙이적 시절이 있지 않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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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차는 일도 잘 모르고, 병원의 시스템을 모르고, 다른 과 일하는 패턴도 모르고, 예전에는 공부 좀 한다고 생각했던 하드에서는 지식이 출력되지 않고, 피곤에 쩔어 RAM도 기능이 떨어진다. 그가 좀 더 익숙해지도록 나도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알고 그에게 시간을 허락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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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다음날 내가 직접 central line insertion을 하였다. 보호자가 나에게 해달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보호자의 눈물 앞에서 1년차가 배워야 할 덕목을 강조하며 스스로의 힘으로 반드시 해내라고 강요하며 환자의 약한 혈관 이곳 저곳을 찔러보게 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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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식으로 일을 하다보니 정작 나의 1년차는 뭔가를 배우지도 못하고 원리도 깨닫지 못한 채 내가 바쁘게 서두르며 일하는 과정을 그저 지켜보고 있다. 그런 나를 거북해하는 시선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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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개입하지 말고 그에게 전적인 책임을 맡겨 주고, 만약 일이 안되면 혼 나는 것도 그의 몫이므로 그냥 지켜볼 것인가! 1년차는 환자들의 모든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해야 하는 책임감 강한 주체로 성장해야 한다고 다그치며 상황을 observation 할 것인가! 아니면 하루가 급한 일은 내가 나서서라도 해결하면서 일단 업무를 진행하고 진료를 우선으로 할 것인가! 정말 아픈 사람은 3월의 대학병원을 피하라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

반복되는 고행의 길

지난 주말 동안 1년차 수련회가 있어 이틀간 나는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우리는 사실 지난 1주일간 서로 적응하지 못하고 역할을 제대로 분담하지 못하며 몸과 마음을 소모하였다. 아무래도 내가 고년차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각도에서 병원과 조직, 사람들의 관계를 바라볼 필요가 있나보다.
의사로서 사는 동안 매우 다양한 지위의 의사들, 간호사 및 기타 인력들과의 수많은 접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뭔가를 성취하고 일을 추진하려면 카리스마가 필요하고 리더십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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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는 나의 역할 모델, 리더십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1년차 일을 하면서 허덕이는 수준인 것 같다. 나만의 카리스마! 서로가 부족한 탓에 그도 힘들고 나도 힘든 한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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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painful memory로 가득찬 1년차를 보냈던 동기가 나를 격려한다. 시간이 지나면 모두 좋아질 것이라고…. 과연 그럴까? 그래야 할 텐데…. 그렇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