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휴가의 필요성

슬기엄마 2013. 7. 27. 19:41


지난주 휴가였다.

휴가기간을 이용해서 일주일간 학회를 다녀왔다.

학회를 핑게삼아 

공부도 하고 

쉬기도 하고

산에 가서 걷기도 하고 

잘 놀다 왔다.


물론 그 휴가를 가기전 1주일과 다녀온 1주일은 난리였다.

휴가 전주와 다음주로 환자 외래를 조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오전 외래든 오후 외래든 종일 외래든

외래가 있는 월화수목 4일간

매일 100명을 전후하여 환자를 봐야 했다.

그 많은 환자들이 모두 외래에서 항암치료를 받는 사람들이다.

무수한 항암제 처방, 설명, 교육...

제 시간에 진료를 마치기 위해서는

전날 의무기록도 다 써 놓고 왠만한 오더도 내 놓고 사진 리뷰도 다 해놔야 한다.

그래도

예상치 않은 환자들이 있기 마련.

당일 접수도 몇 명씩 끼어 있기 마련.

매일 신환이 7-10명 정도 있으니

아무리 준비해도 외래시간은 1시간 이상씩 지연되기 마련이었고

오후 6시가 넘어도 외래가 끝나지 않는 날도 많았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휴가를 다녀와야 했을까 싶은 후회도 있었다.

올해는 연수로 자리를 비우신 윗 선생님과 동료 중 출산 휴가를 간 선생님이 있었으니

특별히 상황이 여의롭지 않았기 때문이겠지만서도...



그런데

그렇게 전쟁같은 1주일 진료를 마치고 난 지금에 와서 문득 드는 생각은

휴가를 가서 몸과 마음을 쉬고 나니

비록 다시 시작된 일상에 피곤하고 지치기는 해도

정서적으로 화가 나거나 분노가 치솟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오늘은 이상하게 환자들에게 전화가 많이 왔다.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들 일부에게 내 전화번호를 알려주곤 한다. 환자 상태는 나쁜데 어쩔줄 모르겠고 당황스럽고 도움을 청해야 하는 응급상황이 올 가능성이 높은 환자들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다행히 그런 고비를 넘기고 이제 괜찮아 지셨는데도 전화를 해서 환자의 상태를 이것저것 자꾸 상의하시는 분도 있고  

내가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은 분인데 내 번호를 알아내서 급하지도 않을 것 같은 보험용 진단서를 빨리 끊어야 하니 빨리 해줄 수 없냐는 전화를 하신 분도 있고 

무슨 약을 먹고 토했는데 어떻게 하는게 좋겠냐는 전화를 하신 분도 있다.


전화를 받고 보니 

꼭 나에게 연락을 할만한 일들은 아니었고 급한 일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당장 주치의에게 전화를 할 수 있으니 안심도 되고 믿을 수 있으니까 전호를 하셨겠지.

토요일인데 너무한거 아닌가 싶었다.


그래도 아직 화가 나지 않는 걸 보면

휴가는

다녀와야 하는 것인가 보다. 


휴가 동안

뭔가 아이디어도 떠 오르는 것 같고 

내 신상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고 

새로운 계획도 세우게 된다.


놀아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고

현실의 지지부진함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직 휴가를 다녀오지 못한 분들이여,

무리가 되더라도

잠시 떠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