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러브 레터 아니어도 반가운 편지

슬기엄마 2013. 7. 8. 23:36


병원에 정을 못 붙이고

쓸쓸한 마음으로 병동을 헤매던 전공의 1년차 말.

감염내과를 돌던 나를 '사랑'으로 거두어주신 선생님이 계셨다.

겨울의 길목에 접어들던 당시

일요일 회진 때면 따뜻하고도 고급스러운 카페라떼 커피를 사가지고 병동으로 오셨다.

일요일까지 긴장하며 회진준비 하지 말라고

교수님들 안계시니 우리끼리 마음 편히 돌자고,

자기 오기 전에 미리 프리회진 안 돌아도 된다고 하셨다.

선생님이랑 같이 EMR 보면서 여유있게 환자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도 많이 하고

항생제에 대해서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문제해결을 못해 낑낑거릴 때 윗사람이라고 너무 어려워하지 않고

그냥 전화할 수 있었다.

선생님은 늘 친절히 가르쳐주셨고, 또 내가 환자 파악이 안되서 보고를 잘 못하면

환자를 보러 병동에 와 주시기도 했다.

밤 늦은 시간에도.

내가 오더를 빼먹고 안 낸게 있으면

밤 12시가 넘어서 슬그머니 chest PA 처방을 나 대신 내주시기도 했다.

다음날 내가 쩔쩔매면

그럴 수도 있죠 뭐. 1년차때는 너무 바쁘잖아요.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나를 위로해주셨다.

나는 그때 

윗사람은 아랫사람한테 어떻게 해야하는 거구나 그런 걸 배웠다.



지금 감염내과 교수님이 된 선생님께

오늘 오랫만에 메일을 보냈다.

환자는 B형 간염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없어서 백신 접종을 시작하신 상태인데

유방암 진단받고 항암치료를 하느라 백신 접종의 시기를 놓치신 분이 있어서

마지막 한번 남은 백신은 언제 맞는게 좋을지 문의를 드리게 되었다.

집도 멀고 연세도 많으셔서 감염내과 협진으로 외래를 따로 보시라고 하기에 너무 번거로운 상황이었다.


메일을 보내니

순식간에 답장이 왔다. 



보통 B 간염 백신의 경우 0, 1, 6개월에 하게 됩니다.

백신 접종의 원칙에간격을 늘려서 맞는 괜찮다라는 것이 있어요.

그리고 이분의 경우 고려해야 백신 접종의 원칙은항암치료중인 분은 항암치료가 모두 끝난 3개월 뒤에 해라.’ 입니다.


두가지 원칙을 고려해 보면 마지막 항암치료 종료 3개월후인 10 말경에 3 접종을 하는 것이 좋을 같습니다.


물론 B형간염의 경우 사백신으로 7 29 맞아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효과가 10-20%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분의 경우 10 말경에 3 접종을 하는 것이 좋을 같습니다.

언제든지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연락주세요.



친절하신 선생님,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으시다.

자꾸 연락드리고 싶어진다. 

내가 전공의 때 선생님한테 무식한 질문많이 하고 많이 배우며 마음의 위로를 얻었던 것처럼

오늘도 그런 느낌이 든다.


삶의 원칙을 잘 세워서 혼자 힘으로 딱부러지게 인생을 잘 사는 사람도 있지만

나같은 사람은

모범이 되는 선생님들을 보고 따라하면서 많이 배웠던 것 같다.


후배 전공의들에게는 맛있는 커피도 사주고

일요일 회진은 너무 닥달하면서 돌지 말고

모르는 거 자유롭게 물어볼 수 있게 늘 웃으며 대해 주시던거.

나도 그거 따라하고 싶다.

따라해서라도 좋은 건 배우고 싶다. 

우리 병원 내과 트레이닝에서 배운 아름다운 전통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우리 전공의한테 그런 선생님이 되어야 할텐데...

미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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